|
베토벤 바이러스의 핵심은 <모순>에 있습니다
그 모순은 한 인간 안에 있는 모순이죠.
즉 강마에의 경우는 위악적인 면이 있는 인간이고, 작건의 경우는 위선적인 면이 있는 인간입니다.
강마에의 경우는 악하지만은 않지만 악하려고 들고, 작건의 경우는 선하지 만은 않지만 선하려고 듭니다.
즉 두 강건우는 한 인간 안에 있는 위선성과 위악성의 대극을 대변하는 인물로 사실은 두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안에 있는 두 자아라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작건보다 강마에 에게 열광할까요?
보통 일반적인 사람들은 작건처럼 행동하려 듭니다. 선하지 않지만 선하려 드는 것이죠.감히 강마에처럼 행동하기 어렵습니다. 평판과 사회적 위신 때문에.
그런데 강마에는 그렇지 않죠. 강마에가 기본적으로 악하지 않지만 악하려 들 때, 그는 세상에 독설을 퍼 붓죠. 이 오케스트라는 내 오케스트라라는 소유욕, 이런 사과는 진심이 아니라는 솔직함, 이외에도 자신이 느끼는 경쟁 상대에 대한 질투나 실망감등을 거침없이 내뱉는 것이죠.
웃긴 건 그가 자신의 사랑이나 연민같은 긍정적인 선한 감정은 한 없이 두려워 하고 감춘다는 것입니다.
강마에는 사람들이 감추고 있는 그림자 자아 (쉐도우)에 해당하고, 그 그림자 자아가 의식까지 기어 올라와 보란 듯이 우리 시청자들의 감정을 지휘하고 있는 것이죠.
이러한 직설은 시청자들에게 송곳 같은 카타르시스와 통쾌함을 주는 동시에, 그가 저렇게 말하는 게 완벽한 악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안도감을 동시에 주는 것이죠.
김명민의 뛰어난 연기와 함께, 사람들은 진정 자신의 심리 상태와 정반대로 가면서도 완벽한 프로페셔널한 세계를 구축하는 강마에게 경외감과 압도감을 느낍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사람들, 특히 두루미와 김갑용은 극중에서 어떤 역할을 할까요? 나머지 사람들도 모순적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두루미는 두 강건우의 마음을 진실로 꿰뚫고 있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두루미는 귀가 멀었지만 가장 잘 듣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트럼펫 주자인 김갑용은 치매지만 가장 현명한 사람이죠.
김갑용은 지휘자도 때론 인생에게 지휘 받아야하는 존재라는 것을 강마에 에게 일깨웁니다.
즉 드라마 속의 모든 인물들은 이러한 모순과 양면성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두루미와 김갑용 두 사람은 강마에의 페르조나, 즉 겉으로 드러내는 가면으로서의 성격에만 반응하지 않고, 두루미는 강마에에게 사랑의 설레임을, 김갑용은 강마에에게 인생의 용기에 대해 일깨웁니다.
이제 이 모든 인간적 영향과 감정적 지진은 강마에 그가 이제까지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던 음악의 세계, 완벽한 세계라고 믿었던 꽉 막힌 내면의 벽을 송두리째 갈라 버리는 것이죠.
( 흔들리는 그를 보는 시청자들 역시 양면적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저렇지 하지 말았으면.. 더욱더 통쾌한 독설과 당당함으로 무장하기 바라는 마음, 반면 그가 자기 세계를 열고 한 인간으로서 더욱 성숙하기를 바라는 마음. 시청자 게시판에 그대로 드러나고 있죠. 요즘 ^^)
저는 이 드라마가 꿈을 찬양하는 드라마인 동시에 인간의 모순성을 일깨우는 드라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심리학을 전공하는 제가 볼 때 베토벤 바이러스의 결말은 이 드라마의 대 주제인 ‘모순’을 넘어, 인간이 서로에게 얼마나 심리적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음악을 통해 사랑을 통해 얼마나 서로의 벽을 허물고 교감할 수 있는지, 그 ‘전염’에 대해 이야기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왜 제목이 ‘전염’의 의미가 들어 가 있는 ‘베토벤 바이러스’ 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