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후에도 개혁적, 진보적이라고 평가받는 분들의 글과 책들 위주로 접하게 됐고 나름의 가치관을 형성하게 됐던거 같습니다.
전 재밌게 공감하며 읽었는데 여러분도 조금 긴 글이지만 한번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펌 원문)
http://www.goodpol.net/discussion/progress.board/entry/84
홍세화 비평-빠리의 택시운전사에서 서울의 택시운전사가 되길
사회디자인연구소 상임이사 김 두 수
1. 홍세화, ‘똘레랑스’(Tolerance)의 동의어
홍세화, 그는 95년 출판된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라는 책을 통해 그때까지 생소했던 ‘똘레랑스’(tolerance)라는 개념을 제기했다. 당시는 김영삼 정부였지만, 여전히 ‘민주와 독재’의 투쟁이 계속되고 있는 대한민국이었기에 상대방에 대한 관용이라는 개념은 생소했지만, 정말 신선하게 다가왔다. ‘똘레랑스’는 유럽의 종교전쟁에서 ‘신의 이름’으로 같은 인간을 죽이는 비극에서 탄생한 회개의 눈물이다. 프랑스 말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 및 다른 사람의 정치적, 종교적 의견의 자유에 대한 존중”을 뜻한다. 민주화의 이념과 가치를 주장하는 세력이 소수파로 탄압을 당하고 있을 때, 상대방의 생각, 철학을 존중하는 것이 곧 자신에 대한 존중이라는 가치관은 민주화 운동세력에게는 또 하나의 사상적 무기가 되었다.
그는 최근 똘레랑스는 “관용이라기보다 용인(容忍)이며,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고 말했다. 내가 남에게 ‘베푸는’ 것이 아닌, “다른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역사의 교훈”이 바로 똘레랑스라고 했다.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똘레랑스’의 영역이 부재함을 역설하고 있다. 그래서 ‘똘레랑스’는 더욱 깊어지고, 성숙해야 할 삶의 관점이자 태도다. 치열하고 살벌한 생존경쟁의 정글인 대한민국에 ‘관용’ ‘용인’ ‘배려’라는 아름다움 품격을 호소함으로써 홍세화는 ‘똘레랑스’와 동격이 되었다.
그는 10년 동안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빨간 신호등>을 출간했고, 그의 책은 대학 새내기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그도 많은 청중을 동원할 수 있는 유명인 대열에 합류했다. 단순한 ‘똘레랑스’를 전파하는 저자가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발언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온 것을 의미한다. 이것 또한 오늘날 홍세화의 비평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2. 홍세화, 아웃사이더(Outsider)의 시각
그는 2002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하면서 20여년의 프랑스 망명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영구귀국 했다. 현재는 정년퇴직을 했지만, 아직도 한겨레신문 기획위원을 맡고 있다. 그는 귀국하면서 스스로에게 어떻게 해서든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가졌다고 한다. 그 때의 각오가 지금까지 유효한 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가 함께 했던 잡지 이름 ‘아웃사이더’처럼, 정치적 소수당이었던 ‘민주노동당’ 평당원, ‘진보신당’의 창당 발기인, 등의 이력으로 보아 그는 여전히 소수파로서 ‘아웃사이더’로서 관점을 가지고 한국사회를 보고 있는 듯하다.
나는 98~99년 무렵, ‘국민승리21’이라는 진보정당 창당을 추진하는 조직에서 기획국장 일하고 있을 때, 처음으로 홍세화를 만났다. 기획모임의 뒤풀이 장소에 함께 했는데, 술이 몇 순배 돌았을 때, “진보정당이 만들어지면 영원한 ‘평당원’이 되겠다.”고 했다. 나는 감동도 감동이지만, 참으로 의외의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당이 되면서 2000년 총선에 대비하여 소위 ‘젊은 피’와 ‘외부 인사’ 영입을 한창 진행하고 있었을 때였다. 유명 ‘386’이라든가 명망가들이 ‘새천년민주당’ 창당에 합류한다고 언론에 오려 내리고 있었기에 그의 선언은 뜻밖으로 받아 들여졌다. 진보정당 건설이라는 과정에서 보아온 사람들의 현실적 선택과 변절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불신과 의심이 키워져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한길을 가는 신념의 사나이임을 증명했다. 최근 ‘진보신당’이 창당될 때까지 민주노동당 평당원으로 의리를 보여주었다.
홍세화의 책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에는 ‘프랑스라는 거울을 통해 본 한국 사회의 초상’,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에는 ‘사회귀족의 나라에서 아웃사이더로 산다는 것’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그는 책과 칼럼을 통해 프랑스의 시각, 이방인의 시각, 진보주의자의 시각으로 한국을 바라보는 ‘새로운 창’이었다. 그는 20여년 프랑스에서 이주노동자 생활의 경험으로 프랑스의 교육, 복지, 사회안전망, 등 사회정책을 한국의 실정과 비교 설명해왔다. 그는 프랑스에서는 당연하게 가능한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이 대한민국에서는 왜 불가능한 지를 한탄했다. 이 비평은 그의 아웃사이더적 시각(한탄)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3. 공화(Republic)주의자인가? 사민주의자인가?
본문이 길어 링크해 놓습니다.
http://www.goodpol.net/discussion/progress.board/entry/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