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의 정부를 수구 기득권에서 좌파 운운하는 것은 상투적인 흑색선전이기 때문에 언급할 필요가 없다.
사실 편향된 언론 환경을 이용하여 왜곡된 국민 정서를 만들어내고 이를 이용하여 자신들이 정권을 잡는 과정을 보면 어이가 없지만, 그들은 반대 세력이고 이것은 전쟁이기 때문이다. 아닌가? 전쟁이 아닌가?
물론 그들도 나도 하나의 나라에 살고 있고 하나의 민족 구성원이라는 전제에서 보면 적과 아군으로 나눌 수는 없기에 전쟁이라는 용어의 선택은 딱히 마땅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럼 북한은?
그래서 우리는 이런 것을 두고 내전이라고도 하던가?
진보니 보수니 하는 말 이젠 신물이 난다.
진보가 “에헴”하면서 상투 틀어 올리고, 수구가 보수입네 하면서 온갖 실험적인 정책과 굉장히 진보적이라 할 인류 공동체적 입장에서 세계 속으로 국가를 내모는 것을 보면 누가 진보인지 누가 보수인지 헷갈리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도 국민은 지레짐작만이 아닌 어떤 느낌과 주관적 기준으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참으로 귀신같이 알아내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사회의 분위기는 다시 역동성이 사라져가는 느낌이다.
원래 전체주의적인 국가에서 개인의 역동성과 창의성은 권장 사항이 아니다.
어제, 아니 오늘 새벽 유럽 28,000Km를 휠체어로 종횡 한 최창현 씨가 조계사에 왔다.
조계종의 이 대통령 사과 수용에 항의하면서 조계사 대웅전을 108바퀴를 돌고 난 후 현장에 있던 ‘누리꾼 TV’와 인터뷰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중 이런 말이 나온다!
“우리나라는 허리가 잘린 장애 국가이다.”
세상살이에서 이분법적인 사고는 언제나 해결할 수 없는 갈등을 제공하는 것이다. 둘로 나누고 나뉜 것을 또 둘로 나누고, 나누고 나누고……
오늘날 지구 위에서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거대한 압력과 모순에서 자유로운 나라는 없을 것이다.
경제와 정치는 언제나 칼의 양면이고 맞물려 있기 때문에 우리 같은 장애 국가에게는 더욱 자유롭지 못한 현실임은 모두가 알고 있지 않을까?
경제는 물론, 법이고 인권이고 간에 인간사에는 언제나 폭력과 힘이 결국 역사책을 장식해 왔기 때문이다.
적어도 정치를 하거나 정치에 관심이 있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정권을 잡았을 때의 가정을 해봐야 한다.
이건 수권정당을 꿈꾸는 정당의 기본자세여야 하고 정권을 잡아 자신의 가치를 보수적으로든 진보적으로든 펼치고 싶어하는 정치인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덕목이고 교과서적인 개념이다.
펼치는 정책 하나를 두고 이것이 진보적 가치인지 보수적 가치인지 확연히 구분하는 방법으로 정치적 행보를 정하고 살 수 있는 나라는 어디인가?
미국? 아니면 무엇이냐 거시기, 소비에트 연방? 로마?
성숙한 민주주의 시민이라면 누구이든 개인의 가치관과 철학을 존중한다.
그러나 자신의 이념과 방법만이 이 세상을 구할 절대적 가치라고 주장하는 것은 언제나 모두의 자유지만, 이들에게 정치를 맡길 수는 없다.
나의 가치와 당신의 가치가 상대적이듯이 사람들의 가치관이란 언제나 다양하기 때문이다.
현실은 언제나 냉혹하고 가야 할 길은 멀고도 험하지만, 당신도 나도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또, 인류의 구성원으로서 행복하게 살고 싶은 꿈이 있다.
FTA가 경제 문제이기만 하고 이라크에 대한 파병이 인류 보편적인 도덕의 문제만으로 규정되는 사고 체계에 우리 국민은 머물고 있지 않지만, 이익과 철학을 널뛰기하는 현실 속에서 그나마 FTA 반대의 목소리와 파병 반대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소중한 우리의 역동성이었다.
그러나 FTA, 파병 등을 리트머스로 전체를 일반화하고, 정당과 의회의 장에서까지 운동의 방향으로만 진행하려는 역동성이란 결국 정치를 말아먹고 우리의 미래 가치를 몇몇이 가로채는 도둑질에 불과하다.
하물며, 이 판국에?
이분법적 사고는 진보의 갈 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