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러코스터 경기의 백미를 보여주다

어떤 블로거의 표현대로 매경기 다양한 드라마를 연출하며 승승장구하던 대표팀의 기세는 대만전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대만의 선발투수를 확인한 중계진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고 아니나 다를까 미국전 이후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던 대표팀의 방망이가 불을 뿜었다. 고영민의 3점포를 포함해 7득점을 가볍게 올리고 2회초 공격에서 추가점을 가볍게 올리는걸 보면서 머리속에 떠오른 생각은 '콜드게임이 몇점이었더라'였다.
아니나 다를까. 나같은 생각을 한 네티즌들이 많았던 탓인지 콜드게임이 인기검색어 리스트에서 이미 떡하니 올라있었다. 이미 끝난 경기라고 생각하고 중계방송을 외면한채 딴짓을 하고 있었는데.. 아뿔싸 선수들까지 우리와 똑같이 맥이 풀렸을 줄이야. 콜드게임 여부를 확인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문자메시지가 연속으로 날라왔다. "한국대표팀, 대량실점", "한기주 등판", "동점 허용"
7회부터 다시 지켜본 경기는 이미 몇차례 경험한 살얼음판의 양상. 이용규의 실책성 2루타 허용으로 대역전패의 불길한 기운이 느껴졌지만 다행스럽게 한기주와 권혁의 연속 삼진으로 위기를 탈출한다. 이어진 8회초 공격에서 삼중살이 될뻔한 강민호의 중전안타로 1점을 추가했지만 병살타가 나오면서 찬물을 끼얹는다.
윤석민이 다시 등판했고 안타 하나를 허용했지만 침착하게 후속타자를 막아낸다. 9회는 어떻게 막으려나 하는 걱정이 앞섰고 정대현과 오승환의 투입을 예상했지만 윤석민을 그대로 밀고나가는 김경문 감독. 일말의 불안감이 느껴졌지만 윤석민은 삼자범퇴로 깔끔하게 천당과 지옥을 오갔던 롤러코스터 경기를 매조지한다.

허구연 위원 대표팀과 함께 롤러코스터를 타다
방송초반부터 연일 대표팀이 드라마를 쓰고 있다는 멘트를 날리던 허구연 해설위원. 대만이 2회초 추가실점을 하자 베테랑 해설가답게 한국팀의 공격력에 대한 찬사보다 대만의 실망스런 수비력을 질타한다. "안타를 내준것은 어쩔 수 없지만 느린 주자를 저렇게 쉽게 2루까지 보내주는 것은 문제가 있네요"
드라마 멘트에 대한 화답이었을까. 대표팀이 현저히 느슨해진 플레이로 루즈한 경기를 드라마로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봉중근, 한기주 주연에 야수들까지 조연으로 출연하면서 말이다. 예선탈락의 위기를 맞은 대만팀은 갑자기 강팀으로 돌변해 승부를 더욱 드라마틱한 상황으로 몰아갔다.
8회초 공격에서 선수들이 다시 힘을 내자 허의원은 선수들의 집중력이 이제야 돌아온거 같다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결국 한국팀의 1점차 승리로 경기는 막을 내린다. 이때 대형사고가 터졌다. 남자탁구단체전 경기와 남자핸드볼 경기화면이 연속으로 나타났지만 해당 중계진이 목소리는 안나오고 야구중계진의 뒷담화가 그대로 노출되버린 것이다.

더 쎈 발언이 나왔으면 더 흥미로웠겠지만 뒷담화 내용은 말그대로 허구연 해설위원의 대만전을 지켜본 심정 그대로였다. 대만 완전히 아웃, 윤석민 합류 캐다행, 또 드라마썼네(김경문감독, 한기주 주연). 아마도 보기힘든 한국팀의 롤러코스터 경기에 중계스탭들까지 잠시 혼이 나갔던 것은 아닌지..^^
올림픽 특집 미니시리즈는 끝나지 않았다.
아마도 이전 5경기에서 짜릿함에 중독된 야구팬들의 입장에서는 남은 경기에서도 계속 손맛을 즐기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대만전 같이 수준이 떨어진 드라마가 되풀이 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약체 네덜란드전을 제외한 쿠바전이나 4강전 이후의 경기는 전력상 원하지 않아도 긴장감 만빵의 스릴러가 될 가능성이 높으니 아직도 대표팀의 올림픽 특집 미니시리즈는 끝나지 않은 셈이다.

과연 이 시리즈는 완성도까지 높은 불멸의 히트작이 될 것인지 아니면 화려한 예고편으로 최강의 떡밥을 던져놓고는 뒷심부족으로 주저앉아 대량 안티만을 양산하는 졸작으로 끝날 것인지 두고볼 일이다. 주포 이승엽과 불펜 한기주가 자신들에게 주어진 캐릭터를 남은 기간동안 얼마나 살리느냐에 따라 김경문 감독의 진정한 연출력은 검증될 것이다. 부디 명작 WBC를 뛰어넘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