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48호를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더 큰 문제는 오른손은 좋은 것, 왼손은 나쁜 것이라는 인식이 우리 문화의 기저에 뿌리 깊이 깔렸다는 것이다. 우리말에서 오른손은 ‘옳은 손’에서 유래한 것으로 ‘바른손’으로도 불린다. 반면 왼손이나 왼쪽은 부정적 의미로 쓰인다. “왼고개를 젓다”라는 표현은 부정한다는 뜻이며, 한직으로 쫓겨난다는 뜻인 ‘좌천’도 한자를 풀어보면 “왼쪽으로 옮기다”가 된다. 무심코 왼손으로 술잔을 따르다가 어른에게 버릇없다고 혼나기 일쑤다. .......(중략)....... 필자는 이것이 ‘다수와 소수’의 문제를 ‘바름과 틀림’ ‘우월함과 열등함’ ‘예의바름과 버릇없음’의 문제로 치환해버리는, 인간 사회의 전형적인 현상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낯설고 다른 것에 대한 거부감이나 불편함이 ‘단지 다를 뿐’인 소수를 버릇없고, 열등하고, 틀린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성적 소수자·문화적 소수자·종교적 소수자·인종적 소수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원문보기 : 이 땅의 왼손잡이를 위하여)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지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을 해 보았고 그 근원이 잘못된 편견에 기인한다는 것을 다시한번 자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이말이 기존에 몰랐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뇌리에 깊숙히 자리잡고 이제는 나와 혼연일체가 되어버린 그릇된 가치관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꼈을때, 지식인임을 자임했던, 유연한 진보주의자를 자임했던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였음을 다시한번 느끼게 된다.
흔히 편견과 선입견이 고착되는 과정은 사회화 학습을 통해 나타난다. 특히 집단 편견의 경우 그 사회의 역사적 배경을 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그 사회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에서도 자유스러울 수 없다. 우리는 늘 말로만 변화를 강조하고, 새로운 페러다임을 주장하면서, 실제로 자기 자신의 변화 가능성에 대해서는 문을 닫고 있지는 않은가 한번 생각해 보야야 겠다. 보수세력을 변화불가능한 수구로 비판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 자체를 배제하는 것이 어쩌면 진보주의자들의 자기 모순이라는 생각도 든다.
작은 것 부터 고쳐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오른손은 말 그대로 오른손이지 "옳은손"이나 "바른손"은 아니다. 우리의 머리속에 존재하는 이러한 편견부터 버릴 수 있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이로서 제가 시민광장회원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 3부작(?) 마칩니다. 제가 세 글을 썼던 이유는 시민광장에서 좀더 활발하지만 건강한, 유쾌하지만 불꽃튀기는 토론이 정착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램이었습니다. 첫글인 2% 부족한 시민광장에서는 관용과 배려의 마음가짐을, 두번째 글인 노블리스 오블리제에서는 공유와 나눔이라는 행동를, 이번 글에서는 이 두가지를 가능하게 만드는 관념과 페러다임에 대해 쓰고자 했습니다. 물론 글의 서술 순서가 섞인 부분은 있지만 이러한 점에서 다른 글과 함께 보아주셨으면 합니다.
기존에 우리에게 가득한 편견이라는 왜곡된 페러다음을 깬다면 세상을 한쪽눈이 아닌 온전한 양눈으로 볼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관용과 배려라는 여유가 생겨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여유를 통해 가치와 지식의 공유가 행동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원론적인 이야기 입니다. 하지만 해법이 없을때에는 원론으로 돌아가서 생각을 하는 것도 좋은 해결책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민광장이 건전하고 활발한 토론의 장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