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설] 황석영, 껍데기 진보에게 하이킥
사회주의자 감투 쓰면 신자유주의자로
진보적인 지식인은 다들 어디서 뭐하고
가장 비겁한 지식인인 소설가가
총대 메고 나섰겠냐. 젠장…
» 껍데기 진보에게 하이킥!
연전 미국 중서부의 작은 도시에 얼마간 머물 때 소설가 황석영이 작품낭독을 위한 짧은 일정으로 같은 도시를 방문했다. 나 또한 소설가라는 라벨을 매달고 머무르던 처지였기 때문에 인도 출신인 한 시인에게서 그가 누구인지와 그의 낭독회에 참가할 가치를 묻는 질문을 받아야 했다. 나는 짧게 대답했다. ‘그는 오늘의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최고의 소설가임. 한국문학에 관심이 있다면 참석할 가치가 있을 것임.’
나는 황석영의 낭독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믿기에 소설이란 장르는 읽으라고 글로 쓰는 것이지 이빨로 까라고 마련되지 않았다. 때문에 (구어와 밀접한 시와 달리)소설낭독회란 말하자면 쁘띠부르주아들의 그로테스크한 가면무도회와 같은 것이다. 나는 또 내 조언을 구했던 인도 시인과 달리 원한다면 황석영의 모든 작품을 원어 그대로 막힘없이 줄줄 읽을 수 있는 한국인이었으니까 내가 그런 기괴한 한영 짬뽕의 ‘구라풀기’에 동참할 이유란 애당초 찾을 수 없었다. 노벨문학상 시즌을 앞둔 때이기도 했다.
오늘의 한국문학을 대표한다는 소설가 황석영이 의미심장한 정치적 발언을 내놓았다. 그를 인터뷰한 신문사가 농간을 부리지 않았다면 ‘총대를 멜 각오’까지 밝힌 이번 발언은 내가 아는 한 소설가 황석영이 가장 적극적으로 현실정치에 개입한 발언이다. 아시다시피 황석영은 그와 함께 문단의 좌우를 대표하는 이문열과 비교한다면 소설가로서의 직분에 훨씬 충실했다. 그런 그가 최근의 정계개편은 물론 민족주의(!)와 북한의 인권(!)에까지 발언의 영역을 확장하고 또 총대까지 메겠다고 했다. 그의 현실인식이 오늘의 이념적 혼란에 대한 우려에서 출발하고 있고 또 그가 밝혔던 활동의 스케일을 고려한다면 앞으로 있을 황석영의 ‘총대메기’가 이문열의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회 해프닝과 같은 치졸한 닭플레이에 머무르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나는 정치적으로 황석영의 의견에 동조할 생각은 없다. 아마도 서너달 전 ‘한국지식사회 담론지형을 흔들다’는 선정적인 제목 아래 이문열과 함께 짜집기된 중앙일보의 기획인터뷰에서 처음 등장했을 그 모호하기 짝이 없는 ‘합리적 보수(?)’란 언젠가부터 남한의 진보담론에 배어든 서유럽 취향에 뿌리를 두고 있을 뿐이다. 서유럽 각국의 스펙트럼 차이는 그만 두고라도 이른바 서구식의 양당체제(?)가 그나마 지난하고 오랜 이념투쟁의 소산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당장 코앞에 아사리판으로 벌려진 악취풍기는 정계개편의 현실적 대안이 될 수가 없으며 또 가능하지도 않다. 그러나 황석영의 발언은 여전히 시대적으로 중요하다. 그건 내용 때문이 아니다. 정말이지 이건 우선은 중요하지 않다.
이념적 혼란에 대해서 말해보자.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주체사상을 신봉하던 자들이 권력에 뛰어들더니 일언반구 없이 신자유주의적 실천의 주역이 되는 패러독스. 사회주의자로서 손색이 없던 교수가 벼슬을 얻더니 신자유주의적 반동의 길을 걷는 후안무치. 한껏 폼을 재고 구라를 풀지만 ‘주의’를 물으면 그냥 좌파라며 벡터적 기호에 숨어버리는 기회주의. 오랫동안 이런 꼴을 겪다보면 나처럼 단순하고 평범한 대중은 혼란이 아니라 정신분열에 시달리지 않는 것만도 다행으로 여기게 된다. 그런데 이 혼란의 본질이 과연 이념인가. 불행하게도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건 슬프게도 이념 이전에 탐욕과 이율배반, 기회주의 따위에 유린당하는 지식인의 양심과 도덕의 문제이다. 그 한편에서 이념은 타락한 지식인의 양심과 도덕에 줄곧 강간당해 왔을 뿐이다.
이 몰상식의 ‘식별가능’하지 않은 시대를 벗어나기 위해서 무엇이 중요한가? 제대로 된 이념의 시대를 찾기 위해 부단히 싸워야 하겠지만 그와 함께 이 빌어먹을 시대가 양심과 도덕을 찾아야 한다. 나는 이 이점에서 황석영이 그들에게 지식인의 본때를 보여주기를 열렬히 희망한다. 그건 황석영이 소설가이기 때문이다. 대저 소설가란 어느 시대이건 양심과 도덕의 실천에 있어서는 평균 이하, 저 아래 말석의 지식인이다.
말하자면 소설가란 고동의 껍질 속에 사는 집게와 같아서 항용 폼을 재다가도 자신이 불리해지거나 손해 볼 때가 되면 슬슬 눈치를 보다 소설가는 소설을 써야 한다며 껍질 속으로 기어들어가 숨어버리는 비루한 속성을 운명적으로 지닌 지식인이다.
그래서 소설을 쓰는 일을 벗어나면 고작해야 구라를 풀거나 술잔을 기울이며 빠구리를 고민하는, 그래서 여느 정치적, 인문적 ‘돌’이보다 원천적으로 훨씬 비겁하고 개차반일 수밖에 없는 지식인이기 때문이다. 직업적 정치인(지식인의 범주에 끼울 수 없다는 의견도 있지만)을 제외하고 지식인으로서 소설가의 이런 운명적 천박함과 경쟁할 수 있는 업종이란 고작해야 대학교수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 유재현/소설가
황석영이 어떤 정치적 입장을 내세우거나 내게는 당장의 관심사가 아니다. 황석영의 ‘총대메기’는 오늘 우리 사회의 진보적 지식인들의 고막을 찌르는 경종이다.
들어라 이른바 자칭 진보적 지식인 색기들아. 오죽하면 가장 비겁한 지식인인 소설가가 총대를 메겠다고 나섰겠나. 나는 내가 안주할 수 있는 금으로 만든 고동의 집도 부수어버릴 것이다. 믿건대 황석영은 그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밤중이다. 창밖으로는 황사에 떡이 된 눈이 그나마 푸짐하지도 못하고 희끗 쌓여 있다. 모니터를 본다. 내 얼굴이 비쳐진다. 그 옆으로 괄호가 열린다. 소설가. 괄호가 닫힌다. 젠장…. 꼴이 퍽이나 슬프지 않은가.
유재현/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