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행위원 사퇴는 잘 한 일이다. 사실은 기획운영팀장을 맡으며 별 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유시민과 거리를 두고 다른 사람들은 글질로 충동하고 자기들끼리 놀자는 것은 아니가?
정말 얍삽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이런 사람이 시민광장의 상근직 기획운영팀장 했다는 자체가 코메디가 아닐 수 없다.
뱅뱅이 돌아서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는 허접한 글은 이제 그만 써야 한다.
젊은 사람이라서 기특하게 봤지만 이런 식으로 시민광장을 농단하면 안 된다.
이글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김반장을 옹호했던 사람들과 집행부는 다 붙어 봐라!
단 오프에서 꼭 만날 생각을 하고 논객으로서 예의와 자존심을 지키기 바라며 글 잘못 쓰면 온라인에서 수명이 끝날 각오를 해야 한다. 나도 각오가 되어있다.
두 아들 아빠의 이 글에 추천을 한 회원수가 50명이 넘었다. 추천을 했다는 것은 동의를 한다는 얘기다. 추천수가 20이 넘으면 독수공방에 가지 않는데도 계속 추천이 붙었다는 것은 예전처럼 독수공방에서 건져내려고 추천 누르는 것도 아니고 이 글에 동의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모두 분홍닉이라는 뜻이다.
내 닉네임 "김반장"은 "홍반장"이라는 영화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거기 보면 나온다. 변변한 직업은 없지만 마을에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 못질이든 청소든 이삿짐 나르기든 동네에 무슨 일이든 일당 3만원 주면 뚝딱 다 해주는 홍반장. 그런 홍반장이 멋있게 보였다. 그래서 2004년에 아이디를 "김반장"으로 바꿨다. 생활정치 영역에서 "홍반장"같은 존재가 되겠다는 의지를 담아서.
아마 내 아이디를 바꾼 그때가 내가 이 바닥에 정을 붙이고 활동하기로 마음먹었던 그때였을 거다. 그 전엔 이 바닥에 엮이는 게 싫어서 할 일만 하고 뒷풀이는 아예 쳐다도 안봤다. 97년 선거 때도 그랬고, 안티조선 운동할 때도 그랬고, 노사모 때도 그랬다. 사람들이랑 엮이면 빠져나가고 싶어도 그놈의 정 때문에 못빠져 나갈 것 같애서였다.
개혁당 활동하다 노짱이 당선되고 이젠 다 됐겠지 하고 1년 넘게 생활정치 쪽 완전히 등지고 살았더니 탄핵이 터졌다. 준비하던 행정고시 때려치우고 한달동안 거리에 있었다. 지금은 더러운 이름이 된 국참 따라서 정형근 지역구에 내려가서 몸빵도 했다. 탄핵 당할 때 그 심정이 너무 아프고 서럽고 분해서 그때 이 바닥에 정붙이고 살기로 맘먹었다. 지금 이 드러운 기분 당하는 이유는 내가, 나같은 많은 이들이 1년 넘게 노짱을 홀로 버려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몸빵이 필요하다 싶을 땐 몸빵을 했고, 글빵이 필요하다 싶을 땐 글빵을 했다. 사람들이 아직 국참의 실체에 대해 모를 때, 그쪽에서 친해졌던 사람들 모두와 적이 되는 걸 감수하고 서프라이즈에 그들의 실체를 고발했다. 그때 나한테 상처입었던 또래애들이 많았다. 2004년말까지도 미키루크는 내가 그들을 깠던 김반장이라는걸 모르고 여기저기서 날 볼 때마다 반갑게 인사를 해대서 당혹스러웠다.
그후 참정연과 우리당에서 대학생사업 중심으로 활동을 했다. 다음 대선에서는 반드시 유시민 의원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고 될 수 있다는 믿음때문에 2006년부터 내 나름대로 대선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슬픔과 노여움>을 준비한 게 그때부터다. 참여정부와 노무현에 대한 재평가 없이 유시민의 승리는 없다고 믿었기에 보다 많은 이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그림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2년 동안 청년.학생 사업한 경험이 있었기에 시민광장에서는 유벗을 창립했고, 사회자가 필요하다고 할 땐 사회를 봤고, 의원님 출마하실 때 뺀드가 있으면 좋겠다고 해서 뺀드를 만들었다. 캠프 꾸려지고 나서는 한 사람이라도 더 상근자가 많은 게 좋다고 해서 사이버팀으로 들어가서 상근하다가 9월 15일이 되기 며칠 전, 패색이 짙어짐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급성 위십이지장궤양에 걸려 병원에 입원한 그날 의원님의 후보사퇴 소식을 핸드폰 인터넷뉴스로 봐야만 했다.
퇴원하고 난 후 경선캠프 팀원들 워크샵이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씩 모두 나와서 한 마디씩 하라길래 앞에 나가서 이 얘기를 했다.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팬클럽과 정치조직은 따로 가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팬클럽은 좀 더 발랄하고 가볍게 네티즌 중심으로 가고 정치조직은 경험 많은 선수들 중심으로 빡시게 선거준비 중심으로 가야 시너지효과가 날 수 있고 지난 경선 때 나타났던 팬 성향의 써포터들과 과거 참정연회원들 중심의 멤바들 사이의 크고 작은 마찰을 예방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얼마 후에 시민광장 규약개정 워크샵이 있었다. 그때 왔던 분들이라면 기억하시겠지만 난 그때 당시 규약개정안에 여러가지 문제가 많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현장에서 끝까지 추가토론을 요구했고 그게 대다수 회원들의 반대에 의해 무산된 후에도 자유발언을 통해 잘못된 규약이 조직을 망칠 수도 있는만큼 앞으로라도 규약 관련한 논의 때는 좀 번거롭고 지치더라도 세심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입바른 소리를 했다. 아마 그때 내 모습 보고 싸가지없고 건방지다고 반감가지신 분들 많았을 것이다.
이명박의 당선과 내년 총선에서의 괴멸이 너무나 명백하게 예상되던 때라 더 이상 활동의욕이 없었다. 내 생각으로 봤을 때 문제점이 많아 보였던 규약개정안이 통과됨에 따라 시민광장의 미래도 암울해 보였다.그래서 활동중지 글을 남기고 두세달여동안 잠수를 탔다.
그러던 차에 2기 집행부 선거가 시작됐다. 박무님께서 출마하신다는 말을 전해듣고 그 말을 전해준 분에게 가급적 러닝메이트는 시민광장 내에서 인지도가 있는 사람으로 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결국 박무님 러닝메이트로 야인님이 나왔다.
박무님과는 2005년 참정연에서부터 만나서 2006년에는 2기 참정연 창립준비위원으로 함께 활동도 했었다. 야인님은 2007년 5월에 참평포럼에서 처음 뵙고 서울지역 집행위원장과 운영위원으로 함께 활동했다.
그에 반해 당시 집행위원장이었던 새벽편지님, 대표였던 별천사님은 시민광장 창립되던 6월에 첨 뵈었었고 토지공개념님과 겨란한판님이랑은 7월쯤에나 서로 통성명을 하고 인사를 나눴다.
두 팀을 놓고 봤을 때 장단점이 뚜렸했다. 박무님과 야인님은 오랜 정당정치 경험으로 인해 연륜과 오프라인 조직활동에 능하신 분들이었지만 시민광장 회원들, 특히 작년 경선을 통해 새로 들어온 회원들에게는 생소한 이름들이었다. 그에 반해 토지공개념님과 겨란한판님은 정당정치 경험과 오프라인 조직활동 능력은 부족하지만 팬클럽이라는 시민광장의 정체성에 걸맞는 풋풋함과 일반네티즌들의 정서와 교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보였다.
허나 인간적으로 박무님과 야인님과 더 오랜 세월 같이 활동했고, 친했고, 내 판단으로는 시민광장이 좀 더 체계적이고 조직화된 모임으로 변모했으면 하는 바램으로 내 한 표는 박무님과 야인님에게 행사하고 필요하면 선거운동도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돌발상황이 생겼다. 야인님이 미국출장 건으로 인터넷에 접속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애초에 박무님 러닝메이트로는 시민광장 내에서 인지도가 있는 인물이 되길 바랬던 내 바램이 깨진 것에 덧붙여져 선거 때 집행위원장 후보가 부재중인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 발생을 해버렸다. 난 이 부분은 분명히 박무님이 잘못 판단하신 거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그래서 선거운동을 할 명분을 나로서는 잃어버렸다. 난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선거전이 격화되고 선거가 끝나면 양측의 앙금이 남을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리고 그로 인해 어느 쪽이 집행부 선거에서 승리하든 리더십이 취약할 것이고 지난 경선을 통해 소모된 역량과 앞으로의 정세들로 인해 집행력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어느 쪽이 이기든 집행부를 도와서 일을 하기로 결정을 했다. 박무님과 야인님이 이기면 상대적으로 취약할 사이버 쪽을 도와드리고, 토지님과 겨란님이 이기면 상대적으로 취약할 경험과 기획 쪽을 도와드리기로 말이다. 선거운동을 안 한 것은 물론, 투표도 기권을 했다. 내가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을 때 시민광장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를 보고싶은 마음도 컸다.
결과적으로 토지님과 겨란님이 이겼지만 내가 다시 활동을 시작하는 데에는 여전히 시간이 더 필요했다. 1월이 거의 다 갔을 무렵, 일희일비님이 그만두셔서 공석으로 있던 상근직을 맡게 되었다.
그뒤에 있었던 일들은 이 글 첫머리에 두 아들 아빠가 쓴 내용으로 시민광장 내에서 정의내려진 것 같다. 나는 기획운영팀장으로 한 일도 없고, 유시민과 거리를 두고 자기들끼리 놀고자 시민광장개조론을 내세우는, 정말 얍삽하고 기획운영팀장을 했다는 사실이 코메디로 비춰지는, 뱅뱅 돌아서 제자리로 돌아오는 허접한 글만 써대는, 시민광장을 농단하는 사람으로 51명의 회원들에게 각인되어 있다.
나는 진심으로 후회한다.
이 바닥에 정을 주고 깊숙히 활동한 것을. 사심없이 필요해 보이는 일들을 열심히 하면 궁물이나 명성은 몰라도 욕은 안먹겠지라고 믿었던 내 안이한 생각을. 나라는 인간을 그런 식으로 회원들이 보는지도 모른 채 뭐 잘났다고 시민광장개조론이니 뭐니 하고 나불댔던 것들을.
주제파악 못하고 그동안 설쳐댄 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곳을 떠나기 전에 하고 싶은 말들은 마저 다 하고 가야겠습니다.
아무리 무능하고 인간말종인 존재에게도 하고 싶은 말을 할 권리는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