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에 담긴 분노, 웃음과 풍자로...
[광우병] 대구 촛불집회 한달.. 시민들 스스로 참여하는 '축제'로 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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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달 넘게 열리고 있는 대구 촛불문화제가 시민참여의 축제로 변하고 있다(6.7 대구백화점 앞 광장) |
깃발도, 격렬한 구호도, 선동도 없었다. 오직 손팻말과 촛불만이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며 한달 넘게 이어온 대구지역 촛불집회가 놀이와 풍자가 가미된 시민 참여의 축제로 변모하고 있다. 특히, 그동안의 집회와 시위에서 자주 보였던 물리적 충돌은 사라졌고, 분노는 웃음과 풍자로 승화됐다.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대구경북시도민대책회의'(대책회의) 주최로 7일 오후 7시 10분부터 열린 촛불 문화제에는 대학생과 청소년을 비롯한 시민 2천500여명(주최측 추산. 경찰 추산 1천700여명)이 참가했다. 이는 지난 달 3일 처음으로 촛불집회가 열린 이후 최대 참여인원이다. 이날 역시 주말을 맞아 10대 청소년과 대학생들이 대거 참여해 참가자들의 절반을 이뤘고, 가족 단위의 참여자도 더욱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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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찰의 불법채증을 규탄하는 기자회견 |
이에 앞서 '차별과빈곤에저항하는인권운동연대'와 대책회의는 대구백화점 앞 광장에서 경찰의 촛불집회 방해와 불법채증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평화적으로 진행되는 거리행진에서 영장 없이 광범위하게 이뤄지는 경찰의 사진촬영은 위법"이라면서 대구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한 2건의 불법채증에 대한 경찰 책임자 공개사과와 재발방지책을 촉구했다.
인권운동연대 서창호 활동가는 "촛불을 든 시민들을 범죄자로 취급하는 경찰의 무작위 채증활동은 명백한 초상권 침해와 인권침해"라면서 "대구에서 일어난 불법채증 사례를 모아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사무소에 진정을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시민들은 촛불 문화제가 끝난 밤 9시 20분부터 2시간여 동안 쇠고기 협상을 규탄하는 거리행진에 나섰다. 이들은 대구백화점을 출발해 한일극장~공평네거리~삼덕성당~봉산육거리~반월당에 이르는 구간의 4개 차선을 걸으며 '고시 철회'와 '협상 무효', '이명박은 물러나라', '함께해요 대구시민' 등의 구호를 외쳤다.
특히, 시민들은 선두에 선 풍물대의 가락에 맞쳐 스스로 흥을 내는 등 시위 자체를 하나의 놀이로 즐기고 있었다. 봉산육거리를 지나 반월당 인근에 다다르자 마이크를 잡은 한 시민이 "걷느라 힘드시죠. 다함께 앉아서 물도 좀 먹고, 노래도 부르면서 쉬면서 합시다"라고 말하자 참가자들은 함성으로 화답했다. 시민들은 4개 차선에 자리를 잡고 앉아 풍물공연과 즉석공연, 자유발언을 지켜보는 등 촛불집회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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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시철회, 협상무효"..촛불문화제 후 거리행진에 나선 시민들 |
격렬한 구호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시민들은 옆 사람의 어깨를 주물러 주며 "니가 있어 힘이 된다", "우리들은 소중해요" 등의 구호를 외쳤다.
지나가는 시민들도 호응을 보였다. 지켜보던 시민 박모(41)씨는 "일부에서는 이 모습을 보고 도로를 점거했다는 표현을 쓰기도 하겠지만, 도로를 점거했다기 보다는 신명나는 축제 현장에 온 느낌"이라면서 "막혀있던 가슴 속이 뻥하고 뚫리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택시기사 원모(53)씨는 "차가 막혀 불편한 시민들도 있겠지만, 오죽하면 이래 나왔겠나... 즐겁게들 노네"라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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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월당 인근 도로에 앉아 집회를 즐기는 시민들 |
과거 살벌한 구호와 투쟁가 일색이었던 집회와 시위가 시민들이 스스로 참여하는 '놀이판'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참가자들은 장관 고시 철회와 전면 재협상을 주장하는 자유발언과 즉석공연 등을 하다 밤 11시 20분경 주변을 정리하고 자진해산했다.
즐거운 축제 분위기는 촛불 문화제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대구백화점 앞 광장은 촛불을 든 시민들로 축제의 장이 됐다. 특히, 이날 문화제는 그동안의 문화제와 비교하면 문화공연이 더욱 많았다. '초코렛 팩토리'와 '활개', '극렬파괴기구', '경북대 우리노래반', '프로젝트 그룹 그리GO'의 공연이 잇따르자 청소년들 비롯한 시민들은 열광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여중생은 "마치 콘서트장에 온 기분"이라며 환호했다. 청소년단체인 '우리세상' 회원들이 인기 개그프로그램의 한 코너를 패러디해 쇠고기 협상을 풍자하자 시민들은 연신 웃음을 터트렸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미대사의 발언을 풍자한 말도 나왔다. 사회자가 시민들에게 물었다. "한국 소는 한우입니다. 그럼 미국 소는 뭐죠?". "미친 소". 시민들이 답했다. 잠시 뒤 사회자가 "미친 소도 미국 소지만 미국 소는 버시바우입니다"라고 말하자 시민들은 "맞다. 맞다"를 외치며 웃음을 터트렸다.
직접 집에서 만든 해학과 풍자가 넘치는 손팻말도 자주 눈에 띄었다. 특히, 학생들은 '나 시위해염. 때릴꼬얌?', '國밥 말아먹는 쥐박이', 'MB? ㅋㅋㅋㅋㅋㅋ 아 쫌웃었다. 누구집 쥐 이름이야?', '명박아~ 방빼라', '저 아직 16년밖에 못살았어요', '정신차려 조중동'을 비롯한 재기발랄한 손팻말을 들고, "장관 고시 철회"와 "전면 재협상"을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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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협은 이날 국산 밀로 만든 빵을 시민들에게 나눠줬다 |
시민들은 직접 가져온 음식을 함께 나눠 먹기도 했다. 생협에서는 국산 밀로 만든 빵과 초코렛을 준비해 와 시민들에게 나눠줬고, 서명운동을 벌이던 이들은 서명한 시민들에게 빵과 쥐포를 나눠주기도 했다.
자유발언에서도 다양한 목소리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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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유발언에 나선 가족 단위의 참가자 |
부모님과 함께 자유발언에 나선 초등학생 자매는 "학교에서 급식하는데, 쇠고기 반찬이 나오면 친구들이 '이거 미국산 아니야?'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런 쇠고기 못 먹겠습니다. 빨리 이명박 대통령 할아버지가 국민들 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한 주부는 "쇠고기 이야기는 많이 했으니 그만하고 생활의 지혜를 알려주겠다"면서 "촛농 떨어지면 손으로 지울려고 하지 말고, 집에 가서 신문지 받쳐놓고 다림질하면 되니 참조하길 바래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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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발 우리 말 좀 들어주세요" | 수성구에 사는 초등학생 여자 어린이는 "대통령 할아버지, 막무가내로 정치하지 마시고, 제발 우리 말 좀 들어주세요"라고 말하면서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직장인 한지훈(26)씨는 "촛불에 담긴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 사랑과 평화일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 마음으로 국민을 위했다면 우리는 촛불을 안 들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 했다.
이명박 정권의 정책에 대한 의견을 적는 메모지에도 많은 시민들이 글을 남겼다. '대통령 할배! 국민을 섬기신다더니.. 흑흑ㅠㅠ', '청와대에서 드세요. 그럼 먹을테니..', '미친 소와 쥐박이의 시간', '대통령 땜에 우리가 당췌 공부를 할 수 없어요', '재협상, 냉큼 하시오', '미친 소는 니나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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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날 촛불문화제에는 2천500여명(주최측 추산)의 시민이 참가해 역대 최대 규모의 인파가 몰렸다 |
한편, 대책회의는 6월항쟁 21주년 기념일인 오는 10일 대구시민 1만명이 참여하는 최대 규모의 촛불문화제를 열 계획이다. 대책회의는 "시민들의 참여가 많을 경우 장소를 대구백화점 앞 광장에서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으로 변경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글.사진 평화뉴스 남승렬 기자 pnnews@pn.or.kr / pdnams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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