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의 책 한권을 들었습니다. 예전에 읽었던 책인데, 그냥 놓기가 어려워, 유티즌들에게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이 책은 개마고원에서 출간된 < 노무현의 색깔 >이랍니다.
<힘없는 사람들에 대한 맹세 > P.136
대선 후보 국민경선 서울시 지역 대회와 최고위원 경선이 열리던 4월 27일의 하이라이트는 노무현의 후보 수락 연설문이었다.
'어떻게 쓸 것인가'를 두고 노무현과 참모들 사이에서 논의가 진행되었다. 노무현은 '친근한 대통령' 이라는 이미지를 쓰자고 주장했으나 참모들은 가벼워 보인다는 이유로 반대를 했다. 또 '국민통합'이라는 컨셉도 참모들은 "서민들에게 안 먹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단상에 올라선 그는 자신이 친근한 대통령이 될 것이고, "불신과 분열의 시대를 넘어 통합과 개혁의 시대"를 열겠다고 사자후를 토했다.
지나놓고 보면 노무현의 '역(逆)발상'이 늘 맞더라는 게 당시 수락문을 함께 작성했던 한 참모의 말이다.
미국에서라면 수락 연설문은 정치 역사의 한 기록문쯤으로 여겨진다. 연설문은 단지 정책 비전만을 읊조리는 것이 아니라 짧은 문학작품과도 같다. 그 안에 분명한 메시지가 있어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반드시 대중 정서를 자극하는 감동이 있어야 한다.
몇 해 전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유니온 연설을 할 때 나는 존 F.케네디 공항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탑승을 알리는 방송이 나오는 순간까지 마저 다 끝나지 않은 그의 연설을 들으면서 온몸이 저릿했던 기억이 있다.
현실이야 어떻든 연설을 듣고 있는 순간 느끼게 되는 이상과 꿈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던 듯하다. 그는 마치 그 일들이 곧 실현될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듯했다.
또 그는 듣는 이들의 가슴을 파고드는 연설에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에 관해서라면 숨을 쉬는 것마저도 미워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많은 대중들로부터 사랑받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기대를 하고 들었던 노무현 수락 연설문의 핵심은 정치개혁, 원칙과 신뢰, 국민통합이었다. 무게 있고, 간단명료했으며, 전달 메시지가 뚜렷했지만 감동적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반면에 자리에 참석했던 사람들에겐 그 수락문보다 더 큰 감동을 주는 다른 연설이 있었다. 그것은 노무현이 서울 지역 경선에서 승리한 직후 발표한 당선 소감이었다.
한 언론사 정치부 기자는 그 당선 소감에 노무현의 인생 전체가 담겨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노 후보가 당선이 되니까 우리 회사 간부들이 어리둥절해 하더라고요. 밥 한 끼 같이 먹어본 사람이 없었다는 거예요. 저더러 노무현에 대한 보고서를 써올리라고 했는데 당선 소감 때 했던 말들을 가지고 보고서를 써 올렸어요."
사람과 사람의 마음은 솔직할 때에 가장 잘 통하는 것 같다. 노무현의 즉석 연설문 속에 진실이 있더라고 말하면 나만의 착각일까? 우 선생을 비롯한 나의 우파 친구들은 "넌 경도되었어" 라고 한탄할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일부분을 소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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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처음부터 돈과 조직에 있어서 열세였습니다.
저는 계보가 없어서 이기기 어렵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사람이 없어서, 조직이 없어서 어떻게 이기겠느냐고 지적을 받았습니다.
일부 언론에 의해서 3주 동안 융단 폭격을 받았습니다.
근거 없는 사실들로 모략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색깔 공격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공격으로부터
여러분들은 저를 지켜주셨습니다. (...)
저는 이번 경선 과정에서 승리를 했습니다.
그러나 제 인생 전체를 돌이켜보면 또 한 남다른 역경 속에서
고난을 겪으면서 도전해왔고 그 역경을 극복해왔습니다.
어려움을 맞서서 하나하나 극복해오는 과정에서 저는 제 주변에서
가난하고 힘없는 많은 어려운 이웃과 고통을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수없이 반복해왔습니다.
이제 앞으로 후보로서, 또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그때의 맹세를 결코
저버리지 않고 지금도 어렵고 힘겨운 여건에서 고난을 극복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계신 많은 분들에게 힘이 되어드리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는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정도를 걸어 가려고 노력했습니다.
앞으로 법을 지키고 성실히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이 정정당당하게 경쟁하고 그렇게 승리한 사람이 대우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그와 같은 반듯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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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당선 소감 속에는 두 가지 가슴을 찌르는 게 있다. 하나는 그에게 조직과 돈과 계보가 없없다는 정치적 현실이고, 다른 하나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 대한 노무현의 맹세이다.
노무현에게 돈과 조직과 계보가 없다는 것은 실제로 정치권 사람들이 그를 체크 리스트에서 제외시킬 수 있는 큰 이유들이었다. 경선이 시작될 즈음 노무현의 한 측근이 여의도의 한 목욕탕에서 역시 경선에 나선 모씨의 참모와 마주쳤을 때 나눈 그들의 대화 내용을 보자.
"넌 되지도 않을 일을 왜 하냐?"
"됩니다."
"잘해서 후보까지는 될지 몰라도 대통령은 안 된다."
"됩니다."
"지금 목욕탕에서 나가서 10미터 밖까지 걸어가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누가 노무현 찍나?"
"됩니다."
측근은 오기처럼 '된다' 고만 답했다고 하는데, 주변에서는 그만큼 노무현의 당선 가능성에 대한 불신이 컸다는 이야기였다. 노무현에게 없는 그 '세가지'는 그가 대권 주자가 된 이후에도 그의 발목을 여러 번 잡게 된다. 한편 "약속을 수없이 반복해서 했다"는 노무현의 말은 그 자신에 대한 다짐인듯 했다.
[현미경으로 본 노무현] 편에서 그가 '성질을 누르지 못하는' 것이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 대한 있는 자들의 무시와 모멸 때문이라고 했듯이, 노무현이 정치판에 '좌'로 들어가서 '우'로 포지션 이동을 하면서도 놓을수 없는 끈은 그들에 대한 동지애이다. 그건 그의 '태생적 한계' 이기도 하다.
우 선생이 주장하듯이 그에게 "한(恨)이 많다"고 하면 그건 소외된 사람들이 배려받지 못했던 시절에 대한 한일 것이다.
친근한 대통령, 서민적 대통령, 지연과 학연의 극복, 원칙과 신뢰를 이야기하고 '올바로 사는 사람이 끝내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그의 주장은 성장과정에서 노무현 스스로 겪은 역경에 대한 '해법' 이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적어도 46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2002년 4월 27일에 잠실벌에서 정치 비전을 이야기하는 노무현의 여러 '말' 중에 초특급 울트라 진실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하겠다' 일 것이다.
- 오늘도 힘든 타이핑을 끝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