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 그 어떤 일도 사실 따지고 보면 정치와 관련 없는 것이 없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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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6일, 민주당 전당대회가 끝난 후 늦은 밤에 시청 앞으로 와보니 경찰이 해괴한 일을 벌였더군요? 시청 앞 광장을 에워싸고 원천봉쇄라는 미명하에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있어서는 안될 통행의 자유마저 침해했다는 시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또 조계사까지 걸어서 갔다 오자니 ‘이게 참 뭔 지랄이냐’ 라는 푸념이 거침없이 나오더군요!
대개의 대한민국 남자들은 군대를 다녀오고 예비군 훈련 또한 받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예비군복을 입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행동 양식이 변하는 것을 다들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이렇게 복장이란 사람의 심리를 일정 정도 구속하거나 반대로 이로부터의 일탈 욕구로 평소와 다른 행동 양식을 보인다고 합니다.
우리 대한민국 사회에서 군대는 사실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의무적으로 복무해야 하고, 수년 여의 기간을 국가를 위해 개인의 시간을 희생하고 봉사해야 한다는 것은 국제적 기준으로 비교해 보았을 때는 개인적 손해일 수 있고 자칫하면 국가 경쟁력의 손실로도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많이 변했고 좋아졌다고 하지만 제복을 착용한 개인으로서의 의식 행태 변화 등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군에서의 복무는 물론 군 생활을 마친 후의 사회 적응과 학교 등으로의 복귀 과정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사회생활의 연장이라는 전제에서 교육기관의 역할을 군이 해 주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이번 촛불집회의 현장에서 전경 개개인들의 행동에서 불쾌감을 느낀 적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습니다
.
어느 날인가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 무언가를 촬영하는데 옆을 지나가던 전경들이 자기들끼리의 대화 형식으로 이런 말을 하더군요? “야! 벼룩시장이 신문이냐?” 등의 야유 성 대화였습니다.
이 것뿐이겠습니까? 시위 중에 KBS, MBC 등의 알만한 언론사의 기자들에게는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고분고분합니다. 자기들이 알만한 일간지 기자에게도 신분을 알고 나면 다르지 않을 듯 합니다만, 인터넷언론 등의 기자들에게는 태도가 전혀 다르다는 말입니다.
참,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이게 그 꼴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자기들이 모르면 세상도 다 모른다는 사고이니 말입니다!
“저 놈들이 제대하면 인터넷 언론 기자는 해 먹겠냐? 저 대가리로…… 쯧쯧!”
이런 생각도 들지만 섬찟한 것은 ‘저 아이들이 왜 저럴까?’ 하는 생각에 머물 때입니다.
우리의 소중한 보배인 젊은 전경들에게 그들의 지휘관이 무엇을 이야기하고 어떤 것을 의식에 심었겠느냐는 말입니다.
권력지향 해바라기, 권위주의적 사고방식, 뭐 이런 것들에 휩싸인 저들의 지휘관이 이 아이들의 의식을 병들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면 섬찟해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또한 제복은 일종의 익명성을 확보해 주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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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중인 시민과 불필요한 폭언과, 마찰을 일으킨 당사자를 뒤로 빼돌리곤 하는 모습을 도대체 얼마나 보았는지 모를 정도이지만, 더 아이러니한 것은 이 젊은 청춘들이 그런 행위를 스스럼없이 과연 받아들인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다 보면 어이가 없기도 합니다.
폭력을 유도하기 위한 고도의 전술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인격체로서 개개인이 이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많은 수의 사람 중에는 사이코패스도 있게 마련이듯이, 이런 전경들 개중에는 개인적으로 폭력적 성향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도 있기 마련입니다.
솔직히 경험적으로 보면 전경들보다 태도나 언사 면에서는 직업 경찰들이 오히려 시위중인 시민에게는 더욱 위압적 행태를 보였다고 생각하지만 이들은 나름대로 밥벌이이기 때문에 어떤 선을 넘지 않습니다. 이런 것이 바로 사회적 룰이 적용되고 있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젊은 나이인 전경들에게 순간적 분노는 폭력적 대응을 유발할 여지가 큰 것입니다. 밀리고 밀고, 힘들고 지치다 보면 시위중인 시민이 마침내 적이라는 개념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개의 어떤 행동들은 경찰들끼리의 집단 속에서 동료의식이라는 미사여구로 포장될 수도 있는 것이겠지만, 도를 넘어선 행위는 개인에게는 평생의 짐이 될 수 있는 심리적 외상을 안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 말세가 와도 유분수지 입으로 사람 손가락을 자른다는 게 상상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과연 그 젊은 전경에게 이 기억은 전쟁에서의 전공 개념으로 남을까요?
전쟁에서 귀 짤라 오는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사회 환경이기 때문에 이 아이에게 남의 손가락을 깨물어 자른 일은 별로 유쾌한 기억이 되지는 않을 것이고, 잘린 손가락을 찾게 해달라고 부르짖는 시민들의 요청을 명령을 핑계로 외면한 부끄러움은 당시 현장에 있었던 많은 전경 아이들에게 치욕으로 평생 남게 될 것입니다.
또, 어떤 경우는 발작적 흥분을 해서 몸을 못 가누는 전경들도 보았습니다.
상호 작용 속에서 점차 폭력적 시위로 변해가면서 서로가 적이라는 개념으로 서서히 전환되는 순간, 전경들은 홀로 시위대에게 끌려 나오거나 하는 순간은 이제 공포로 다가온 것입니다.
서로 흥분한 상태에서 그런 일이 다수 발생했지만 장담하건대 절대 안전한 상황이었고 시위중인 시민들의 의식 속에는 젊은 전경들을 다시 안전하게 전경 대열로 복귀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완연했는데도 불구하고 끌려 나온 전경은 절대 그렇게 느끼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왜 이 아이들은 자신들의 형이거나 아버지 같은 시민들을 적의 개념으로 보게 되었을까요?
이렇게 전경 개개인의 폭력적 성향으로 발생한 것이든, 전술적 목표로 시위 군중을 흥분하게 하고자 지시에 의하여 행동한 것이든, 그 어떤 것이든 사실 경찰이란 조직의 특성으로 보면 최고 지휘관이 책임지는 것이 맞습니다.
지휘관이라는 사람이 ‘공권력이라는 지위에서는 시민들로부터 폭력을 당했다고 해도 이에 대하여 똑 같이 불법적 폭력으로 대응하는 자는 엄단하겠다’ 고 했던들 이런 일들이 이렇게나 많이 벌어질 리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나 말세지 수천 명, 수만 명이 운집해 있는 공간으로 어떻게 맨 정신을 가진 인간이 물이 들어있는 생수 병과 돌, 쇠붙이, 심지어 소화기 통을 던질 수 있겠습니까?
이런 야만적 행위는 국가의 공권력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폭력일 뿐이고, 이런 행위에 대한 응당한 처단은 세월이 흐른다 하여 흐지부지 용서되어서도 안될 것입니다.
이런 경찰을 믿고 지난 몇 년 경찰 수사권 독립을 지지한 저부터 반성하고자 합니다!
그럼
, 어떻게 해야 이런 행위에 대한 응징을 할 수 있을까요
?
그 해답은 정치에 있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피로 이루어진다고 말들을 하지만, 폭력을 통한 정부 전복을 꿈꾸는 것이 아니기에 정치적 합의로 이를 가꾸어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따라서 이제 우리는 촛불의 힘을 정치적 역량으로 전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신뢰할 수 있는 연대 체제를 만들고, 내부적 합의의 룰을 정하고, 단일화된 입장을 표명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야 합니다.
의석 불균형이 심화된 의회 구조와, 중앙은 물론 지방정부와 지방 의회의 압도적 차이, 사법 권력의 비 양심, 수구 언론의 편파적 여론 조작, 여기에다 기득권 자본 및 투기 자본의 엄청난 금권 등에 맞서 권력의 속성을 잘 이해하고 시민의 파워를 야당과의 공조로 배가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지도부 또한 만들어야 합니다.
경제 위기는 더 심화될 것이고, 이념적 투쟁이 아니라 생존권 확보 차원에서의 사회 갈들이 엄청나게 증가할 수밖에 없는 시대적 상황이 지금 시시각각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이를 타파할 수 있는 몇 가지 방안 중에 하나가 대북 경협을 통한 제조업 경쟁력 강화, 물류와 금융 허브, 아시아 문화 주도 국가, IT 인프라 수출 등이었는데 이 또한 외교적 편중과 국내 갈등의 심화로 인한 국가 신뢰성 위기로 말미암아 기회가 멀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원도 없고 자본도 미약한 우리에게 남은 것이라곤 사람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창의적 발상을 더욱 자유롭게 펼치게 하는 것이 21세기 경제의 기초일 터인데 지금 이 정부는 역으로 전체주의적 사고 방식의 경제 구조로 치닫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스럽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지도자를 모시고 새벽종 울리면 일터로 나아가 별이 보일 때까지 시키는 일이나 열심히 하라는 것도 아니고, 이런 70년대식 사고로 경제 정책이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데도 불구하고 환율 정책에서부터 삽질을 하더니 이제 헤어나기 힘든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경제 위기라는 말을 지도자가 함부로 입에 담으면서 내부의 갈등을 위기의식 고취로 풀어나가려 하는 행위는 그야말로 우리 경제를 깊은 수렁에 빠지게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촛불이 줄었나 늘었나 에 온 촉각을 세우면서 어떻게 정치를 할 수 있겠습니까?
쇠고기 하나로 대미 관계를 사면초가로 몰아넣어 버리는 ‘결과적 반미’의 헛발질을 누가 하고 있습니까?
이제는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못 믿겠다는 국민적 불신이야말로 이 정부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 국민이 못 믿는데 외국자본이 미쳤다고 믿겠습니까
?
증시 하락은 전초전이고 부동산 문제를 연착륙 시키지 못하면 그야말로 눈 앞에 재앙이 벌어질 것입니다.
IMF 위기를 지났어도 또 다시 부동산 담보로 돈 놀이만 해오던 우리 은행들 또한 제 발등 스스로 찍고 주저앉는 것이 시간문제라는 말입니다.
이러다 미국이 FTA 비준 안 하면 그야말로 여당 발 쿠데타 염려하느라 밤잠을 못 이룰 정권을 만든 것은 바로 남이 아닌 우리 국민입니다.
저는 안 찍었’읍’니다!
그런다고 그 재앙이 저만 비켜 가겠습니까?
수입 제품 가격이 20% 이상이 오른 상태입니다.
지난 연말 대비 환율 문제로 약 12% 올랐는데, 수출하는 나라에서는 우리와는 반대로 달러 값이 떨어지다 보니 물건 값 올려야 한다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나라 입장에서 보면 원유가 올라 원가 부담이 커졌고, 수출해봐야 달러 값이 떨어져 이익이 줄어들었으니 당연히 가격을 올려 달라는 것이고 이를 거부할 방법이 없습니다.
적어도 환율 정책은 국제적으로 비슷하게나마 움직이도록 해야 하는데 친기업 프렌들리에서 작은 기업은 대상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 재벌 기업이 이제 우리 나라의 기업입니까? 도대체 그들 재벌 기업이 이제 무엇으로 우리 나라에 투자를 해야 하는지 제가 생각해 보아도 모르겠습니다.
인건비가 쌉니까? 원자재가 풍부합니까? 부동산 구입비용이 저렴합니까?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있습니까? 물류, 금융 그 어떤 것도 그리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제조업 기반의 기업이 과연 외국 주주들의 지배 하에서 무슨 재주로 한국 땅에 설비투자를 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재벌 기업들은 그야말로 제국주의적 시각에서 동남아, 남미, 아프리카, 동유럽 등의 개발 도상국에 깃발 꼽기에도 바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참말로 자다가 봉창을 두드려도 유분수지 현대 말아먹더니 대한민국마저 말아먹을 판이라는 게 요즘 저의 생각입니다.
오늘 민주당의 전당대회 결과가 그나마 예상보다 양호한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 정치 자영업자들 손에 민주당이 놀아나지는 않을 정도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제 시민과 야당은 대정부 협박 작업에 돌입해야 합니다.
표로 안되니 효과적 압박과 대안 제시로 이 험난한 상황을 슬기롭게 풀어나가야 하는데 촛불집회만 밤마다 주야장창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주제를 정부에 던지고 이를 받아라 말아라 하면서 싸워줄 주체를 세우고 야당과 시민 파워가 공조할 수 있어야 그나마 이 정부 또한 위기를 타 넘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군자의 복수는 십 년이 지나도 늦지 않다 했습니다.
우리의 수구 기득권 세력이 가장 믿고 있는 것은 우리 국민의 냄비 근성이라 불리는 속성입니다.
바로 망각이라는 것을 정말 잘 이용해 온 것이 바로 그들인 것입니다.
끈질긴 놈이 이깁니다!
우리의 생각과 바램을 명확하게 할 논의의 주체를 세우고 이를 통하여 논점을 흐리지 않고 끝내 쟁취해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긴 호흡으로 싸워나갈 때 국민이 승리할 것입니다.
위기가 곧 기회입니다!
우리 국민이 언제 조중동 폐간을 이야기 했었습니까? 소수의 희생만이 되풀이 되어 왔었습니다.
우리 국민이 언제 이렇게 정치적 각성을 했었습니까? 정당의 민주화는 남의 집 일이었던 것이 불과 몇 개월 전이었습니다.
단군 이래, 시민의 파워는 언제나 물거품이 되어 왔습니다.
무언가를 이룬 것 같았어도 결국 그 속에서 기득권은 생겨나고 부패해 버렸던 것이 역사의 교훈인 것입니다.
이 기회에 절대로 해칠 수 없는 민주주의 시스템을 우리가 바로 세울 때 조직의 탈을 쓰고 인간으로서의 양심을 버리는 기생충들이 다시는 자라나지 못할 것입니다.
이 것이야말로 가장 값진 승리이고, 가혹한 응징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