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광장, 소비자가 주권자가 되는 민주주의 시민광장을 기다리면서
- 김반장님의 '시민광장 1주년 기념, 6.10 항쟁 조직적 참가'의 글을 읽고 -
우리나라 헌법전문은 '대한민국은 3.1운동과 4.19혁명을 계승한다'로 시작합니다. 대한민국에 제7공화국이 열리는 날이 오면 그 시작에 '5.18항쟁과 6월항쟁 계승'도 함께 기록될 것으로 믿습니다.
5월 2일 첫 집회를 시작으로 이제 만 한 달이 된 촛불문화제. 10대들의 생존선언으로 시작했던 그 집회가 어느새 범국민 범세대적인 불복종항쟁으로 되었습니다. 모두의 느낌이 그러하시겠지만, 처음 이 촛불의 물결을 보며 가졌던 본능적 예감이 이렇게 빠르게 현실로 닥칠 줄은 몰랐습니다.
386에서 10대로, 세대를 훌쩍 뛰어넘어 나타난 '참여'의 물결에 대하여 처음에는 참 다양한 원인분석이 있었지요. 논술세대의 힘이라는 등 여러 말이 이어지다가, 한겨레였던가요.. 알고보니 그들이 386의 아들 딸들이더라..가 가장 설득력있는 진단으로 받아들여졌죠.
거대한 시민주권의 실천으로 보입니다. 3.1운동에서 6월항쟁까지 차곡차곡 쌓아올린 성숙된 시민역량의 표출로 보입니다. 애국가, 아리랑, 아침이슬, 님을 위한 행진곡, 헌법 제1조가 한꺼번에 울려퍼집니다. 유시민과 동 시대에 지긋지긋하게 불러야했던 '전두환은 물러가라 훌라훌라'가 2008년 오늘 '이명박은 물러가라 훌라훌라'로 불리울 줄은 또 그 누가 짐작이나 했겠습니까.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마주보는 촛불소녀의 눈동자는 유관순을 닮아있고, 386들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청와대 진격은 '이승만은 하야하라'를 외치며 경무대로 달려가던 4월의 젊은 피를 빼어 닮았으며, 곤봉으로 터지고 방패로 찍힌 채 아스팔트 위를 쓰러진 볏단처럼 끌려가는 그들의 모습은 5월 광주의 모습과 소름끼치게 닮아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21년 전 6월항쟁과 오늘을 비교합니다. 87년 전두환의 '호헌선언'이 결국 6월항쟁으로 이어졌다면 2008년 이명박의 '고시강행'이 그예 또 또 한번 21년만의 6월항쟁으로 이어질 것만 같기에 그렇겠지요. 다가올 6월 10일을 또 한번 두려운 직감으로 기다리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많이 다릅니다. 그것도 뚜렷하게 다르죠.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쳤던 반독재 민주화의 이념구호는 '고시철회 협상무효'를 외치는 건강주권 사수의 생존구호로 바뀌어 있습니다. 노짱께서 2년 전부터 그토록 말씀하셨던 '소비자가 주권자가 되는 민주주의', 그 소비자 권력을 우뚝 서게 할 시민주권시대의 도래를 온 몸으로 느낍니다.
무엇보다도 대학생과 지식인이 주도했고 넥타이부대가 참여하며 화룡점정했던 21년 전 6월항쟁과 아주 크게 다릅니다. 21년 전 6월 10일, 이한열 열사 장례식장의 연단에는 '전태일 열사여, 이한열 열사여'를 외치던 문익환 목사의 사자후가 있었고, 태극기를 앞세우고 행진하는 대오의 선두에는 (그때만 해도 멀쩡해 보였던) 김영삼과, 김대중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지금 그 자리에는 예비군 부대와 유모차 부대가 있습니다. 조금도 '조직적'이지 않습니다. '주동자'가 없습니다. 이명박이 그토록 궁금해하는 '배후세력'이 정말로 없습니다. 21년 전 386 지도부가 만들던 '오더'도 없고 '격문'도 없습니다. 이름 없는 네티즌들이 저마다 올리는 아고라의 제안문이 '오더'의 전부이고, 이것을 인터넷에서 보고 공감한 주권시민들이 허름한 예비군복을 입고 유모차를 끌고 꾸역꾸역 모여들어 대오의 선두를 차지할 따름입니다.
그럼에도 누구의 표현처럼 그들은 소름끼치게 위대합니다. 우리가 10년 넘게 '안티조선'을 외치면서도 상상하지도 해내지도 못했던 '동아일보 간판조명'을 꺼뜨렸으며, '집회' 하면 집시법을 먼저 떠올리며 비장해지던 우리와 달리 헌법의 기본권을 먼저 말하며 유쾌하게 닭장차투어에 동참합니다.
비폭력 비무장. 기상천외한 문구로 각자 만든 피켓 하나 초 한자루 들고 행진합니다. 진압을 만나면 돌아가고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또 다른 길을 찾으며 전진합니다. 2박 3일 동안, 화염병 쇠파이프 하나 없이 소화가스 물대포를 온 몸으로 맞으며 이명박의 집, 코 앞까지 진격합니다.
진보찌질이들이 잔뜩 또아리를 틀고 있는 '다함께' 확성녀, '대책위' 무대차와는 적당히 동거하거나 따돌리면서, 주동자 없이 이 항쟁을 이끌고있는 시민주권당이 있다면 그건 '아고라당'입니다. 실제로 세종로를 해방구로 뚫어낸 주역들이 바로 아고라, 촛불소녀, antimb들입니다.
김반장님이 제안한 '시민광장 1주년 기념, 6.10 항쟁 조직적 참가'에 대해서입니다.
그들의 위대함에 감동하고 그들의 쓰러짐에 한 없이 분노하고 안쓰러워 하면서도.. 불꺼진 도시, 인적조차 사라진 거리에서 다시 동이 터 올 때까지 싸움을 벌이는 '주동자' 없고 '조직적'이지 못한 일견 '소모전'이 김반장의 눈에 새벽의 눈에 조금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더 그들의 피해가 커졌던 것은 아닌지.. 무언가 더 큰 역할을 맡고 싶어집니다. 여기서부터 '조직적 참가'의 고민이 시작됩니다.
개별적인 참여 독려 이외에 지금까지 시민광장의 이름으로 했던 또 다른 하나는 그 현장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시민들에게 전하는 역할이었습니다. 공중전이죠. 어느 곳보다 신속하고 정교하게 소식들을 알려낼 수 있도록 애를 쓰고 있습니다. 내일 게재될 경향신문 모금광고도 그 중 하나죠. 보다 체계적이고 감동적인 모습으로 이것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은 '조직적 참여'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더하여... 시민광장 이름을 걸고 조직적으로 지상전에 참여한다는 것,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현장을 조직적으로 지휘한다? 불가능합니다. 매우 중요한 배역을 전담한다? 결정해 줄 사령관도 사령부도 없습니다. 그렇게 하려 해서도 안됩니다. 지금까지 보아온 5월 광장은 거대한 시민주권이 소용돌이 치고 있으며, 오랜 기간에 걸쳐 잠 깰 준비를 마친 소비자 권력이 역동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민주주의의 시장입니다.
새벽 생각입니다. 앞으로도 시민광장의 기본 원칙은 무조건 1/N이 맞아 보입니다. 지금껏 시민광장이 그래왔던 것처럼. 대표 이하 모두가 참여하는 하나의 촛불이 되어, 청계광장에서 시청광장에서 세종로에서 효자동에서 수많은 유티즌들이 그렇게 해왔던 것처럼.
하지만, 우리만의 방법으로 우리의 장터를 열 수는 있겠습니다. 시민광장 또한 위대한 시민주권 캠프의 하나이고, 그렇게 하여 보다 많은 유티즌들이 참여하여 보다 많은 시민들을 광장으로 불러모으고, 그들과 함께 소비자 권력의 행사가 얼마나 풍요로운 것인지를 보여줄 수 있다면 말입니다. 그 유티즌스러운 장터가 어떤 것인지... 아직은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지금부터 우리 모두의 몫이겠죠.
2008년 6월, 시청광장이, 시민광장이, 어떤 모습으로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소비자가 주권자가 되는 시대는 반드시 열린다면서, 일찌감치 시민주권시대를 낙관하신 노짱님 말씀만이 실감 만땅으로 귓전에 맴돌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