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화려한 휴가>를 보았을 때, 엔딩크레딧에서 모든 사람들이 웃고 있는데 (다 죽은 사람들) 이요원 혼자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사진을 보며 무슨 의미인지 두번째 볼 때까지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세번째 보고나자 함께 봤던 분이 말씀해주시더군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표현한 장면이라고.
저는 현재의 시위방식에 100% 다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특히 무조건 청와대로 돌격 앞으로 방식과, 새벽, 심지어 다음날 점심 때까지 남아서 끝장을 보려는 분들. 심정적으로 이해는 100% 됩니다. 다만 전략, 전술적으로 동의를 못하겠다는 것이지요. 이 얘긴 나중에 따로 더 하기로 하고.
어쨌든 저는 요즘 시위에 참여하면서 제 나름대로의 참여원칙을 정했습니다.
첫번째, 연행되지 않는다.
두번째, 12시가 넘으면 귀가한다.
세번째, 폭력을 쓰지 않는다.
네번째, 최대한 관조적인,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첫번째 이유는 저의 과거 행적과 현재 위치 때문입니다. 이거야 설명 안해도 아실테고.. 유시민 의원님께서 대구운동회에서 유티즌들께 그러셨더군요. 시위할 때 앞에 서지 마십시오. 주동세력으로 몰립니다. 중간에도 서지 마십시오. 핵심세력으로 몰립니다. 뒤에도 서지 마십시오. 배후세력으로 몰립니다. 그러니 옆에 서십시오. 농담 비슷하게 하신 말씀입니다만 촌철살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두번째 이유는 심야, 특히 대중교통이 끊긴 자정 이후의 심야집회의 효과에 대한 의문 때문입니다. 유동인구가 없기 때문에 시위에 결합하는 시민의 숫자가 없을 뿐더러 저들에게는 탄압의 좋은 기회를 제공하지요. 실제로 여태까지의 폭력진압, 강제연행이 모두 자정 이후부터 새벽 사이에 일어났습니다.
세번째 이유야 뭐 당연한 거였는데.. 조금씩 흔들리고 있습니다. 어제 낮에도 뚜껑 열려서 전경들과 보디체크가 빈번히 있었지요. 뭐 길 트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거라 자위해 보지만..
네번째 이유는 첫번째 이유랑 비슷한 건데 괜히 흥분해서 앞에서 오바해서 설쳐대다가 사고치거나 연행되서 적들의 탄압과 여론조작의 빌미를 줄 가능성을 원천차단하려는 의도였습니다.
헌데 지금 이 네가지 원칙이 송두리째 마음 속에서 흔들리고 있는 걸 느낍니다. 20대를 살던 10년 동안 항상은 아니지만 5월과 6월이 되면 언제나 제 자신에게 던지던 질문이 있었습니다.
"만약 내가 80년대에 대학생이었다면 유시민이 했던 것처럼, 많은 386 선배들이 했던 것처럼 지금 시대와는 비교도 안될 무서운 고문과 탄압과 죽음을 각오하고 싸울 수 있었을까?"
언제나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결국 자신있게 하지 못했었습니다. 헌데 지금, 제가 10년 동안 제 자신에게 던졌던 질문에 대답할 시기가 도래했음을 느낍니다.
12시가 넘어 제가 세운 시위원칙2에 의거하여 집에 들어올 때의 시위장은 평온합니다. 헌데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나처럼 이렇게 먼저 집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으면 결국 우직하게 끝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있는 사람들만 희생될텐데..
머리 깨진 여학생, 실신한 청년, 곤봉에 맞은 형님, 버스에서 바지가 벗겨진채 추락한 어느 분들의 사진이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11년 전 광주 망월동 묘지에서 보았던 광주항쟁의 충격적인 모습들을 보았을 때와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느낌입니다.
잠을 자려고해도 잠이 오지않아 결국 다음아고라, 오마이뉴스, 라디오21, 아프리카 생중계를 동시에 띄워놓고 발만 동동 구르며 불면의 밤을 세우는게 벌써 며칠째인지 모르겠습니다.
가장 최선의 방법은 12시, 또는 적절한 시기에 모든 시위 참여인원이 일시에 질서있게 해산하는 것이겠으나 지금의 성난 시민들에게 그 전략을 설득하고 관철시키기엔 여러 모로 무리라고 생각됩니다. 실제로 그런 말을 했다가 프락치로 몰린 분들도 있었구요.
이렇게 집에 들어와서 어차피 잠도 못자고 그럴바엔 차라리 원칙2를 포기하고 언제나 시위의 끝장까지 함께 하는게 나을 것 같기도 합니다. 헌데 그러면 원칙1, 3, 4도 함께 포기하게 될 것 같습니다.
다섯시간 동안 불면의 밤을 지새웠는데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