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가리입니다
오늘 청계광장은(그것도 광장이냐...-_-;)은
선배들이 [거긴 죽으러 모이는 곳이다]라고 왜 입모아 말씀하시는지
확실히 보여줬습니다.
또 청계에서 모이자고 하기만 해봐라..ㅠ.ㅠ
10시쯤 촛불문화제를 마치고 가두시위를 나가려했는데
세종로쪽 방향도 그 반대방향도 모두
전경들에게 인도까지 막혀있었습니다.
전경들이 확성기로
[시민 여러분,조금 불편하시겠지만 청계천 쪽으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라고 거짓말을 하더군요.
몇 번 실랑이하다 청계천 쪽으로 내려갔는데
그 쪽도 막혔거든요.
왜 못나가게 하냐고 어떤 남자분이 거세게 항의하시는데
[나갈 수 있으면 나가봐라]하더군요. 전경들이.
허허허허....도로점거도 안했는데, 인도로 가겠다는데,
집에 가자는데도 안내보내줍니다.
청계 위 아래 다 막힌 걸 확인하고 샛길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어요.
샛길 네 군데 돌았습니다. 다 막혔더군요.
전경들 틈새마다 몇 겹씩 있던데,
청계천 일대는 정말 가두기 좋은 지형이었어요.
눈에 보이는 샛길은 다 막혔다 싶어서 막 불안해지기 시작했어요.
이 많은 사람들을 다 가둬서 어쩌려는 걸까,
닭장차로 포위되면 사실 그 안에서 물대포를 쏴도
밖에는 소리 하나 안들리더군요.
방송도 아무리 크게 해도 청계천 안에서만 울리고 밖으론 소리가 안샙니다.
샛길에서 누군가 전경들 머리 너머로 보이는 인도 위의 사람들에게 외쳤어요.
[우리 갇혔어요! 전경들이 못나가게 해요! 좀 도와주세요!!]
그런데 그 소리도 잘 안들리나 보더군요.
그때 전경들이 바로 앞에서 외치기 시작했어요.
개새끼,개새끼,개새끼.....
인간이 이렇게 짐승이 되는구나,이렇게 미치는구나 싶었어요.
불안과 공포가 스며드는 느낌에, 이것들이 원하는게 이거구나 싶기도 하고.
그런데, 여기서부터 웃기는 일이 생겼어요,제게.
어떤 할머니 한 분이 여기 왜 이러냐고 제게 물어보시는 겁니다.
시위하러 오신 분이 아니셨어요.
버스 갈아타려다 그냥 걸어가려고 지름길이라 청계천쪽으로 들어오신 분이셨어요.
60대 후반의 입술까지 곱게 바르신 외출복 차림이셨는데 당황하시더군요.
저야 시위하러 나온 사람이니 불안해도 갇히면 갇히나보다, 집에 연락이나 해야겠다 했지만
이 할머님은 애꿎게 휘말리셨다싶으니까 뭐라도 해야 겠더군요.
상황설명 해드리고 할머니,들어오셨던 곳으로 되돌아가셔서
들여보내준 전경더러 [나 방금 들어왔지 않느냐,시위대 아니다] 말씀드리고 나가시라고,
같이 가시자고 손을 잡았는데,
이 할머님께서 되레 제 손을 양손으로 잡으시고는 막 끌로 가시는 겁니다.
놀란 저는 속으로 [얼씨구~여차하면 할머니랑 같이 슬쩍 빠져나가는 거야,나?]하고
으흐흐흐흐....ㅠ.ㅠ; 양심 없었습니다. 저는.
여하튼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 할머니께선 어떤 가게 뒤로 가시더라고요.
거기 샛길이 하나 있었던 거예요.
깜짝 놀라서 [이 길,사람들한테 알려줘야 하는데-]하니까
[그냥 따라와]만 반복하시면서 잡아끄시는데 어찌나 힘이 장하신지;;;
청계에 그런 골목 있는 건 처음 알았습니다.
술집들이 있는 골목인데 경찰이 두 사람 서있긴 하던데 잡지도 않더군요.
(할머님이 딱 붙어서 제 손을 잡고 있어 그런가)
술집골목을 두어번 돌고 나니 여관이 몇 개 나오고
오래되어보이는 민가가 있는 골목을 두어번 꺾고 나니
세상에, 2호선 을지로2가 역이었습니다.
할머니! 어떻게 이 길을 아셨어요!!
내가 여기 골목은 환해. 옛날에도 이렇게 서울대 학생 하나 목숨을 구했지.
나 아니었으면 그 학생 피 흘려서 죽었어.
그 뻐렁치는 자신감이라니...;ㅁ; 승리의 할머니셨습니다.
길이 너무 복잡해서 도저히 저 혼자선 도로 찾아갈 수가 없었어요.
저 안에 갇힌 사람들한테 알려야 하는데, 주변 피시방에 들어가봐야겠다 생각한 순간,
더 웃기는 장면이 펼쳐지더군요.
저랑 할머니가 전철역 입구에 있는데
시위대들이 [겨우 통로 열어주네,전경들]하면서 삼삼오오 내려오는 겁니다. -_-
아놔,할머니랑 저 쇼한 건가요.....
하지만 할머닌 그래도 뿌듯해하시면서
[미국이 옛날에 우리 많이 도와줬잖아. 너무 박하게 하면 안돼.]하셨습니다.
-_-;;; 그런 문제가 아니라고 말씀드렸는데 잘 이해는 못하셨어요.
고개 갸우뚱 하시더니 가셨습니다. ㅠ.ㅠ
집회가 해산했나보다 하고 막 집에 오니 12시 반이었어요.
지금 방송을 틀어보니 아직 남은 분들이 계시네요.
이제 막 해산했다고.
내일 모레 크게 모일 날을 위해서라도 2mb가 없는 동안은 힘빼지 말자싶은데
대단하신 분들입니다...ㅠ.ㅠ
전 간이 작아서도 그렇고, 외박도 안되는 처지라
늘 12시면 전철역으로 달려야 하거든요.
늘 죄송할 뿐이예요.
(일찍 시작하고 일찍 파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다치는 사람도 줄고...)
오늘 청계엔 여러 유인물이 돌았고 단상에 오른 사람들도
단체명 띄워주려고 작정한 꼼수도 보여 좀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슬슬, 이 많은 사람들이 미래의 자신들의 자산이 되게 해보자는 계산들이 나오는 듯해요.
민노당,진보신당,민주노총,다함께 등등....그러지 말았으면 해요;;
주제는 같았지만 슬쩍 끼워넣는 홍보때문에 제 주변에 불편해하신 분들 있습니다.
저도...어제까지만해도 [고마운 분들]하다가
[뭐,어쩔 수 없이 계산기 두드리는 건가]싶었으니까요.
이해는 하는데, 속이 좀 꼬이더군요.
꼭 선거철에 후보들한테 90도 각도의 공치사를 받는 느낌이랄까.
뭐,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요.
내일이나 모레쯤 정부가 또 뭔가 빵-터뜨려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있어서
시청역 광장으로 튀어갈 준비나 하렵니다.
(참,이틀 전에 소라기둥 앞에서 제게 명함 주셨던 선배님....
저,난리통에 명함과 들고 있던 전단지를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부산 사나이시고 제주를 거쳐 현재 서울에 계신다던 시민광장 회원이시던 분,
현장에 다시 오면 연락드린다고 인사드려놓고 연락 못드려 죄송해요.
계속 나가면 언젠간 얼굴 또 뵙겠지요?
부산 카톨릭센터에서 광주필름 봤다던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