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정신적 문제 소시오패스 성격장애 정신지체? 이를 말하는 의학적 용어
양심이 눈곱만큼도 없지만 사회적으로 정상인이라 여겨지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직장 상사·동료일 수도 있고 정치인·학자일 수도 있다. 스스로 부도덕한 일을 하고서도 가책을 못 느끼는 사람을 정신의학에서는 ‘소시오패스’라 부른다.
이들은 반사회적 성격장애를 겪는데 이들의 선악기준은 전체 사회가 아니라 자기가 속한 특정 집단의 기준과 기대치에 따라 결정된다. 이들은 때로 집단에서 리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따라서 소시오패스가 리더인 집단은 병에 걸렸음에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있는 셈이다.
현대사회에서 소시오패스는 100명 중 4명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의 일상적 행동 반경에 소시오패스가 들어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성격장애에 대해 무지하거나, 설령 알더라도 단지 폭력적인 사이코패스쯤으로 여긴다. 살인자들과 달리 비폭력적 소시오패스는 눈에 드러나지 않게 우리와 함께 살며 우리 삶에 교묘하게 위해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인종 학살을 자행하는 정치지도자와 죄책감 없이 상사에게 동료의 험담을 늘어놓는 직장인 사이의 연관성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소시오패스에 대한 무지와 다름없다.
소시오패스의 특징 가운데 두드러지는 것은 타인에 대한 애착이 없다는 것이다. 이 특징은 타인에 대한 지배, 즉 게임의 승리에 대한 집착으로 귀결된다. 소시오패스들은 이기기 위해 사회적 룰이나 양심을 내팽개친다.
그렇다면 소시오패스적 특성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베트남전 당시 복무했던 미군 가운데 쌍둥이들에 대한 조사는 흥미롭다. 이 조사에서 소시오패스적 징후의 유무가 유전적인 요인에 적잖이 좌우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 징후들 가운데 ‘경제적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 ‘일부일처 관계를 유지하지 않는다’와 같은 항목도 포함됐다. 하지만 유전적인 기질만으로 소시오패스를 설명할 순 없다. 저자는 후천적, 즉 사회적 환경이 소시오패스를 낳는 데 결정적 작용을 한다고 설명한다. 개인과 사회의 상호관계에서 소시오패스가 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 성격적으로 문제 있어 대인관계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
기가세고 고집센사람, 바깥 행동과 안에서의 행동이 다른 사람> 현대의 소시오패스
끝임없는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계속되는 거짓말에 몸과 마음도 지쳤을 쯤...
도대체... 왜 저런 인간이 내 옆에 있는 걸까... 고민하던 차에...
만나게 된 책...
결론은...
대면하지 말고... 피해라!이다...
피할 수 없어서 씁쓸한 결론이지만... 이론적으로 많은 공부가 된 책이다...
책소개는 [인터파크]에 실린 글이다....
==============================================================================
양심은 대체 뭣 하러 가지고 있을까?
살아가면서 우리는 종종 양심 없이 남을 속이고 부정한 짓을 하는 사람이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들을 이기고 부와 명예를 누리는 것을 목격할 때가 있다. 그리고 자신의 이익과 성공을 위해서라면 마땅히 해야 할 어떤 일들을 양심이라는 목소리에 눌려서 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할 지도 모른다. ‘대체 양심은 뭣 하러 있을까?’ 당신 옆의 소시오패스는 양심 없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 보다 더 중요한 무엇, 즉 양심 있는 우리가 왜 더 행복한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흔히 부도덕하고 이기적인 사람들을 보며 ‘양심 없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하며, 사실 양심이 완전히 결여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누구나 100% 선하지 않듯, 누구도 100% 악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양심이 전혀 존재하지 않은 무죄의식의 사람들이 분명 우리 곁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 사람들을 지칭하는 단어도 있다. 바로 소시오패스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조금의 가책도 없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묻는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그들은 왜 모두 부자가 되거나 성공하지 못하는가? 왜 결국 실패하고 마는가? 그것은 양심이 단지 정직하거나 사회법규를 잘 지킨다는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양심이란 ‘인간(인류 전체, 혹은 모든 생명체)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하는 의무감’이다. 애정과 의무감이 없는 인간관계를 상상해보라.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과 관계 맺을 수 없는 사람들, 그것이 양심이 없다는 것의 핵심이다. 행복한 건 누구인가?
얼음 같은 사람들
그렇다면 소시오패스들의 심리상태는 어떤가. 그들은 인간에 대한 애정이 없으며, 그리하여 타인이나 전체 사회는 물론이고 가족이나 친구들에 대한 의무감도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애정과 공감이 사라진 인간관계에서 남는 것은 소유욕과 지배게임뿐이다. 이기는 것, 짓밟고 올라서는 것, 그리고 이용해 먹는 것 밖에 없다. 소시오패스적 지도자들이 인종말살 계획을 세우는 것과 상관에게 자기 동료에 대한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늘어놓는 것 사이에서 보통은 아무런 연관성도 발견하지 못하겠지만, 그 심리적 연관은 뚜렷하게 존재한다. 애정과 의무감의 결여이다. 보통사람들이 예상하듯 소시오패스들은 모두 살인자나 강간마가 아니다. 그들은 우리 곁에 존재하며 게다가 사람들을 지배하고 이용하기 위해 여러 매력들을 발산하기도 한다. 그들의 덫에 걸려 인생을 망치거나 심리적으로 붕괴된 사람들의 치료를 하면서, 저자는 왜 사람들이 그들을 알아보고 대처하는 데 힘들어 하는 가를 분석하는데 양심 있는 사람들은 단지 그들에게 속을 뿐만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자기의심이 스스로의 눈을 가린다는 것이다.
자신의 확신을 믿어라
저자는 다음과 같은 예를 든다. 나이든 미망인의 집에 침입하여, 보석을 훔치다가 그 노부인을 잔인하게 살해하여 바버라 그레이엄이라는 여자는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녀가 사형을 당하며 남긴 말은 “선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늘 너무나 확신한다”였다. 오늘날까지 그 수많은 증거에도 아랑곳없이 그녀의 무죄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이야기는 수잔 헤이워드 주연의 "나는 살고 싶다!(I want to live!)"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그녀의 마지막 말은 양심 있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자기의심을 증폭시켰다. 그녀의 말과는 달리 선한 사람들은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는 경우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선한 사람은 양심에 비추어 자신의 결정과 행동을 엄밀히 검토하며, 무엇인가 확신하는 경우에도 그것을 위험하게 여긴다. 그 확신에 속아 누군가를 부당하게 처벌하거나 합당치 못한 행동을 할 수도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우리가 가진 미덕이지만, 이러한 자기의심이 소시오패스들을 보지 못하게 한다. 감정과 애정이 없는 소시오패스들의 행동들은 너무나 기이하며, 우리의 경험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까닭에 사람들은 단지 그가 양심이 없다고 생각! 그는 별나거나, 예술적이거나, 너무 승부욕이 강하거나, 게으르거나, 멍청하거나, 늘 악동 같다’는 갖가지 꼬리표를 붙이면서 이해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들을 대처하기 위해서는 글자 그대로 양심이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며, 확신을 가지고 옳지 않은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하고, 그들이 몰두하는 지배게임에 동참하지 말이야 한다.
양심을 갖는 것이 더 좋은 이유
저자는 역사에서 수도 없이 되풀이되는 성난 민중이나 자신의 심복에 의해 제거되는 소시오패스 독재자들, 결국엔 모든 것을 잃고 마는 양심 없는 사람들의 예를 제시하지만, 단지 그것만이 양심을 가져야 하는 의미는 아니라고 말한다. 양심 없는 당신을 상상해 보라고 권한다. 양심이 없다면 물질세계에서 성공하기 위한 그 어떤 행동이라도 아무 거리낌 없이 할 수 있으며, 그래서 잠시나마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의 두려움과 존경을 받으며 권력을 마음껏 휘두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정한 친구는 가질 수 없다. 마음속에 인간에 대한 의무감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가족, 심지어 자신의 아이들도 사랑하지 못한다. 마음속에 애정이,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으며 가질 수 있는 온정과 위안, 혼란과 분노, 기쁨과 즐거움이란 감정을 전혀 알지 못할 것이다. 누가 더 행운인가?
우리는 어떤 일을 양심적으로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일일이 숙고하지 않으며, 양심이란 심장이나 폐처럼 그냥 거기에서 무의식중에 끊임없이 판단을 내리고 우리의 행동을 제어한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고 탐욕적이지 않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자연 상태의 인간들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한다고, 단지 자신의 생존과 이익만을 위해 행동할 것이라고 우리는 믿어왔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 소시오패스가 되어있어야 한다. 그러나 “만약 우리 선조들이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먹을거리를 찾아다니던 시절에 늘 착한 사람들이 꼴찌로 처졌다면, 왜 오늘날 우리는 도덕을 그토록 수월하게 받아들이는가?”저자는 양심의 기원을 살피면서, 현대 사람들 대부분이 양심을 갖고 살아간다는 것은 양육강식이 지배하는 자연선택에서조차 양심이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운 때문이든, 능력 때문이든 사회·경제적으로 성공한 소시오패스들은 자신의 성공을 주위 사람들, 심지어 가족과도 함께 나누며 기뻐할 줄 모른다. 그 누구에게도 (자기 자신에게도) 진정한 즐거움을 주지 못하는 성공, 그것이 양심 없이 무엇이든 해서 이루어낸 성공의 본질이다. 저자는 의미 없고 지루한 지배게임에서 승리하는 능력과 자신의 아이를 사랑할 수 있는 능력 사이에서 당신은 무엇을 갖겠냐고 묻는다. 그리고 그 대답이 ‘양심은 대체 뭣 때문에 가지고 있지?’에 대한 대답인 것이다. [인터파크 제공]
==============================================================================
심리학책도 재미있구나...
재미있었지만... 읽는 내내... 우울했다... -_-;
도올 김용옥의 말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상관없다. 어차피 공부도 생각도 나보다 몇 배는 더 했을 사람이니까,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다. 이건, 인생의 지침으로 삼아도 될 만큼 굉장한 말이고, 그만큼 실천하기도 어려운 말이다.
이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사람들은 이렇게 바꿔 보면 좀 도움이 될 것이다. 제 분야 공부만 할줄 알지 세상 물정 모르는 대학 교수는 맹목적인 정치적 판단을 내려서 많은 사람들을 당황케 하는데, 사회 문제에는 진작에 눈을 떴지만 공부에 재미는 못 붙인 서른살 넘은 대학생은 도서관 담벼락에서 담배나 피우면서 교수를 욕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건 그나마 좀 덜 심각한 측면만 본 것이다. 나는 이 말을 성공이라는 것과 연계하여 이해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성공이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돈많이 버는걸 말하는게 아니다. 자기 분야에서 내공이 쌓일 만큼 쌓인 것을 말한다. 즉, 자기 개발에 몰두해서 주변 사람들의 삶이나, 자신의 깊은 내면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사람들은 결국 성공하는 경우가 많으나, 성공의 끝자락에서 진정한 인생의 목표를 잃어버리고 어딘가에 (주로 권력이나 권위에) 대한 맹종의 길을 찾아내는데, 주변을 돌아보고, 자신의 내면을 살펴서 양심의 부름에 응할 줄 아는 사람들은 정작 자기 개발에는 소흘해서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공부만 하거나, 생각만 한 사람들은 그래도 주위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이 두 가지를 겸비한 사람은 정말 드물다. 세계의 양심이라 불리면서도 최고의 학문적 권위를 갖춘 노엄 촘스키 같은 학자나, 세계 재산 순위에서 수위를 다투면서도 상속세 폐지가 미국을 망하게 할 것이라 주장하는 빌 게이츠나 웨런 버핏이 이런 사람이다. (후자 두 명에 대해서는 좀 다른 평가도 존재하지만, 대세를 거스를 정도는 아니다.) 가까운 데서 찾으면, 시골 의사 박경철같은 사람이 있겠다. 이런 사람을 보면 정말 존경스럽고, 부럽고... 하여간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다.
각각의 경우에 대하여 얻을 수 있는 결과를 살펴보자.
A: 공부도 하고 생각도 한다 -> 성공도 하고, 양심도 찾았다.
B: 생각없이 공부만 한다 -> 성공은 했는데, 양심은 없다.
C: 공부없이 생각만 한다 -> 양심은 찾았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D: 공부도 안하고, 생각도 안한다 -> 성공은 못했고, 양심은 있는지 없는 지 모르겠다.
나는 다음과 같이 평점을 주고 싶다.
A: 10 점,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고 있으므로 점수를 있는 대로 퍼줬다.
B: 7.0 점, 성공에 필요한 자기 개발 노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C: 6.9 점, 사회적 양심을 찾는데는 상상 밖으로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D: 5.0 점, 그래도 이 사람들은 선량한 사람들이다. (내가 받을 점수일지도 모르니까 너무 짜게 못주겠다.)
B와 C는 모두 자기 점수에 불평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주고 싶다. 자기 개발 노력과, 사회적 양심. 이것은 정말 어느게 더 중요한 지 우열을 가리기 어렵지만, 그 둘 중에 하나만 갖추면 평점 7점일 뿐이다. 뭐 박지성도 보통 평점 7점으로 먹고 사니 그리 나쁜 건 아닐지도 모른다.
결국 이 말은 젊은이들을 위한 말이다. 성공도, 사회적 양심을 갖추는 것도, 젊을때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이 들어서 이 말을 보는 사람 중, 성공만 한 사람은 이게 무슨 소린 지 전혀 알아듣지 못할 것이고, 양심만 갖춘 사람은 후회할 것이다.
p.s. 1
또 이 말은 기본적으로 선량한 사람들을 위한 말이다. 선량한 사람들은 그래도 평점 5점 받아야 한다. 이런 사람들이 있으니 세상이라는 경기가 파토가 안나는 거 아닌가. 의미있는 성공이 뭔지, 사회적 양심이 뭔지도 모르고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성공(?)으로 달려가는, 공부란 성공의 도구일 뿐이라 여기는 사람들에게 이 말은 의미가 없다. 맹종과 곡학아세가 또 다르다는 것인데, 여기에 '진짜'로 공부한 사람은 곡학 아세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까지 하려면 논지에도 안맞고 길어진다.
p.s. 2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다. 대학원생인 내 친구가 최근 회식 자리에서 미국 쇠고기 수입 논란과 광우병의 위험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교수님께선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너희들 그걸 믿어? 그거 다 북한에서 조작한 거야. 그걸 모르다니..." 그 교수님의 학문적 업적이나, 사회적 위치를 생각할 때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말이었다. 또 한편으론 깜짝 놀랐다. 그 교수님은 대한민국내에 상위 1% 간첩밖에 모른다는 그런 비밀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 |
|
njbora의 p.s. |
 |
사이코 패스의 또다른 이름 소시오패스
이명박 공부하다 보니 이런 말도 알게 되는군요. 인터넷 참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