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광풍’이 스러진 다음에 다가올 후폭풍이 심히 우려되는 시기이다.
이미 곳곳에서 그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왜 상당수 국민들은 이상의 시 오감도에서처럼 그저 아파트를 향해 ‘무서운 질주’를 감행했던 것일까?
원래 우리 민족은 다정다감한 성격에다 이웃과 도타운 정분을 누리며 살아온 사람들이다. 효녀 심청이가 이웃 아주머니의 십시일반 젖동냥으로 컸을만큼 이웃의 딱한 처지를 나몰라라 하지 않았던 백성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이웃은 커녕 자신의 부모형제조차 소중히 여기지 않는 ‘나쁜 풍습’이 마치 광풍처럼 불게 된 것이...
삿갓김이 요 며칠 발품을 끊고 은둔에 은둔을 거듭한 끝에 내린 결론은 ‘나쁜 정치’와 ‘나쁜 언론’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국민들의 정신을 황폐화시키고 물신화(物神化)의 미친 회오리 속으로 빠뜨리게 한 것은, 물질만능의 의식을 ‘애국적 국민의식’으로 포장시킨 군사정권의 병폐였다.
5.16 쿠데타 후 군사정권은 이른바 경제개발계획을 통해 이전에 우리 민족이 숭상하던 정신적 가치를 하루 아침에 물질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이것은 학문적 접근을 필요로 하는 테마인데, 일단 어설프게나마 살펴본다면 당시 언론의 중대한 직무유기도 한 원인으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언론은 마땅히 국가적 과제에 관한 검증을 통해 균형 발전을 제고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어야 했다. 그러나 감히 군사정권에 대들 수 없어, 물질만능의 폐해를 경고하고 균형발전의 필요성을 지적하지 못하고 무조건 나팔수 역할을 한 것이 오늘의 이 지경까지 오게 했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언론이 ‘사회의 목탁’이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임에도 언론은 그같은 역할을 포기하고 정권에 빌붙어 국민을 '물질의 노예‘로 만들어 버린 셈이다. 물질은 단순히 물질일 뿐이다. 정신적 존재인 인간의 삶에서 물질 위주의 삶을 강요하던 당시의 비극적인 상황이 결국은 21세기까지 어어져 온 것이다.
최근 들어 아파트 광풍에 이리저리 휩쓸리던 국민들을 계도하기는 커녕 오히려 광풍을 부추기고, 언론의 정도를 걷는 게 아니라 광고비 수입이라는 얄팍한 상혼에 매몰된 이 나라 상당수 신문언론들은 당장이라도 문을 닫는 게 국민을 위해서도 좋을 것이다.
앞으로 불어닥칠 회오리에 삿갓김은 저절로 눈이 감긴다.
이처럼 너도나도 정신없이 물질의 노예로 살아가기보다는 제대로 된 사회안전망 속에서 최소한의 자존심만이라도 움켜쥐고 살고 싶다는 간절한 소원은 삿갓김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무리하게 은행 융자를 얻어 18층의 30평형대 아파트 두 채를 소유한 어느 삼십대 중반의 한 남자는 요즘 이자 감당도 힘들고 값도 오르지 않아 ‘미칠 것 같다’고 토로한다. 그는 머리카락까지 취한 모습으로 이렇게 말했다.
“18...”
그 소리는 그가 미친 바람에 휩쓸려, 미친 사람처럼 들뜬 기분에 사놓았다는 아파트 층수의 번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