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집이 이사가고 이사오나보다. 어제 이사올 사람이 와서 보름쯤 공사할 거라며 시끄러울거란다. 미리 양해구한단다. 양해야 어려울까만 커다란 드릴 돌아가는 소리, 벽 부수는 망치소리에 멍한 머리는 어찌할지.
베란다 트고 방 넓히고 마루깔고 도배하고...며칠은 꽤 시끄러울거란다. 완전한 소음속에 갇혀있다 문득 드는 생각.
나는 왜 아래층에 가만히 앉아 저 소음을 온 몸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가.
인부들은 고된 노동대신 하루 수당을 챙기고, 집주인이야 말 한마디로 양해구하고 곱게 단장한 집으로 이사 들어오면 그뿐이겠지만, 하필이면 윗집 공사로 나의 조용한 일상은 불가능해졌다. 생기는 건 온전한 불편함뿐, 왠지 손해보는 느낌이다.
예고된 소음도 막상 닥치니 괴롭다. 보름을 어찌 견디나 싶다. 이쯤에서 작은 진리를 깨닫는다. 살다보면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도 어떤 불편함을 감내해야 할 때가 있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기에.
좌파 10년이든, 민주화 10년이든 허망한 몰락을 지켜보고 있다. 예고된 소음도 막상 닥치니 예사롭지 않은데, 내가 속해 있었다 싶은 곳의 예정된 몰락을 바라보는 맘 또한 편치않다. 더구나 당신들은 사전양해도 없었잖아.
왜 이렇게 되었을까.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민주화 세력 분열, 개혁 세력 분열, 진보세력 분열, 분열, 분열, 그 분열에 나의, 우리의 책임은 없었나 생각해본다.
잘하라고 정신차리라고 민심을 똑바로 보라고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지 말라고, 격려하고 조언하고 맘조리고 읍소한 기억밖에 없다. 그 결과가 결국 이거뿐인가.
지금 저 위층의 무수한 굉음이 내 의지와 관계없이 진행되듯이 민주화 세력의 분열과 몰락 또한 나의, 우리의 의지가 아니었다. 돌아온 보수의 전성시대를 한 시대가 가고 한 시대가 오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넘기기엔 너무나 불편한 치욕임을 어쩌랴.
실패할 때 마다 책임짐보다 늘 누구에겐가 떠 넘기는 안이함이 몸에 밴 사이에 세상은 수구, 보수, 실용이라는 삼자 스와핑도 가능한 저들만의 파티장으로 변해버렸다. 혼탁이 불을 보듯 눈에 선하지만 차마 그리되지 않기를. 그래도 희망이라고 그들을 선택한 국민들이 가엾잖은가.
자괴감이 쏟아진다. 그들의 몰락과 저들의 부활을 막기 위해 나는, 우리는 뭘 더 했어야 하는 것일까.
공사기간이 딱 보름이라고 한다. 예정된 고통은 기한이 다하면 수명을 달리하겠지만, 민주화 세력이든 진보세력이든 명명된 이름들의 몰락은 다시 이 땅에 무엇으로 피어나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지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두 그래두 얼마나 다행인가.
비바람에 맥없이 스러진 무수한 낙화속에 꽃씨로 떨어진 사람 하나 있잖은가. 일찍 겪었기에 일찍 여문 사람. 툭툭 나가 떨어지는 껍데기들 속에서 알곡같은 그이가 있으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필시 새 희망으로 활짝 피어나리.
지치지도 않나봐. 드르륵 드르륵, 쿵쿵, 드릴과 망치는 연신 돌아가고 때리지만 까짓 보름쯤 못참을까. 꽃씨되었으니 낙화를 슬퍼할까.
온통 소음과 불편함 속에서 난 지금 도 닦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