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에서야 진심으로 유시민을 받아들인다.
예전에, 노사모에 미쳐있을 때, 그때도 유시민은 대단했었다. 시민연합인가 뭔가 하는 단체의 총수로 있을 때였는데, 그의 연설은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뭔가가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노무현밖에 보이지 않았고, 유시민은 그저 언변 좋은 소장 그룹 리더 쯤으로 알았다.
그러다 세월이 흐르고, 노사모를 잊었다.
서프의 많은 사람들은 나같은 사람을 가리켜 변절자라고 하지만, 참여정부 때 너무 많은 실망을 했었다. 의료보험, 국민연금 강제집행에서부터 시작해, 왜 만들었는지 모를 여성부, 이해가 안 가는 식품의약청안전청, 있는지 없는지 모를 감사원. 대통령에게 대드는 검찰. 더 심해진 복지부동 공무원들. 호화청사에 혈안이 된 지자체, 언젠가부터 사라져버린 동네 파출소.
방위비는 삭감되고 외교는 꼬이고... 거기다 조폭을 낀 바다 이야기와 신용카드 대란. 서민 울리는 담뱃값, 소줏값, 장바구니 물가. 초짜 비서관들은 이 정책 냈다가 몰매맞고, 저 정책 냈다가 몰매맞고, 386 국회의원들은 아예 대놓고 대통령을 욕하고 다니고. 부패한 사이비언론을 잡으려면 확실히 잡든지,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니고...그러다가 막판엔 종부세 폭탄으로 땅투기꾼 잡는게 아니라 애매한 집 가진 사람들을 잡아버리고...
정말 울화통이 터졌다. 이런 꼴 보려고 그 많은 날들을 지새웠나 싶었다. 그래서 몇 번이고 청와대에 건의하다가 결국 노사모를 떠났다. 물론, 노무현에게 실망한 건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소탈하고 한결같았다. 문제는 그 밑에 있던 비서관들, 장관들, 국회의원들이었다. 그들이 일하는 방식은 언제나 확 터뜨리고 보는... 그러다 아니다 싶으면 허겁지겁 철회해버리거나 방향을 바꿔버리고... 정말 소신도 없고 철학도 없고 신념도 없는 듯 보였다.
그나마 탄핵 때는 봐줄만 했지만, 탁핵이 끝나자마자 금세 권력싸움으로 니전투구를 벌여버리는... 그때 유시민이 노무현을 참 많이 공격했었다. 유시민 딴에는 노무현 측근들을 공격하여 흐트러진 것을 바로 잡으려는 의도였겠지만, 국외자가 볼 땐 그 모습도 그리 예뻐보이지 않았다. 국민들이 보는 앞에서 한 집안 식구를 욕하는 것 같아서... 차라리 국민들 안 보는데서 조용히 싸우든지 기자들 입을 빌어서 우회적으로 일침을 가했으면 싶었다.
아무튼,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유시민을 입만 산 정치인이라고 생각했던게... 사람이 똑똑하긴 하지만 처세술과 친화력이 약해서 앞으로 크게 되긴 글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 마음 속에서 지워버렸는데, 그가 다시 살아났다. 예전과 달리 따스하고 푸근한 모습으로. 싸움닭처럼 상대를 공격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상대를 배려하면서도 할 말 다 하는 모습으로. 정신없이 돌아가는 선거운동 와중에도 지역민에게 양해를 구할 줄 알고, 멀리서 찾아온 지지자들에게 감사할 줄 아는 모습으로.
그리고 오늘, 사지(死地)에 몸을 던진 승부에서 낙마했다고 어깨 축 늘어뜨리는 게 아니라, 하루종일 비를 맞으며 유권자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할 줄 아는 그의 모습을 보고, 나는 이제야 비로소 유시민을 마음 깊이 받아들인다.
앞으로는 그의 행보에 관심을 가지며 지속적인 애정을 기울일 것이다. 언젠가 내가 좋아했던 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밤낮을 잊었던 그날처럼... 그 사람 역시 숱하게 고생하고 숱하게 운 사람이지만, 유시민은 더 이상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
유시민이 웃을 때 그 미소는 참 보기 좋으니까. 그 누구보다 맑고 포근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