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원)벽창호/벽창우(碧昌牛) : 고집이 세고 무뚝뚝한 사람.
평안 북도의 벽동과 창성 지방의 소는 유난히 크고 힘이 셌다고 한다. 그래서 그 지방의 소를 벽동과 창성의 앞자를 따서 벽창우라고 불렀다. 즉 병동과 창성 지방의 소라는 듯으로 불러 오던 것이 세월이 흐름에 따라 차차 발음이 '벽창호'로 변했으나 이것은 마땅히 본디말이 벽창우로 불러야 한다. 아울러 말 뜻도 성질이 무뚝뚝하고 고집이 센 사람을 가리키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말이 생기게 된 것은 벽동과 창성 지방의 소가 성질이 억세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보다는 지역마다 소를 부르는 말이 달랐기 때문이다. 소를 끌면서 '이랴이랴', '워워'하는 말들이 지방에 따라 조금씩 그 억양과 어투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지방 사람이 소를 끌면 소가 제대로 그 뜻을 알아 듣지 못해서 버팅기고 말을 듣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남쪽 지방에 사는 사람이 와서 벽동과 창성지방의 소를 끌고 가려 하면 당연히 고생스럽고 힘들었던 것이다.>
흔히 말이 안통하고 고집스러운 사람에게 벽창호 벽창호하는데 이런 어원이 있었네요.
평통자문회의에서의 노무현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역시나 제각각 해석하는 언론과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사회의 원할한 소통을 가로 막고 있는 진짜 벽창우는 누구일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대통령은 우리사회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원칙과 신뢰와 일관성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을 지키는 것이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 부분을 의심하기 때문에 괴롭다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단정에 결코 승복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대통령은 자신있게 당신의 원칙있는 행동을 이야기합니다.
그말을 들은 언론과 대통령과 대척점에 서 있는 집단들, 다른 길을 가기로 결정한 사람들은 말합니다.
당신의 실패는 우리때문이 아니라 당신의 오만과 독선 때문이었노라고. 변명이노라고.
서로가 서로를 벽창우라고 부르고 있는데 결론이 안나옵니다. 누가 중재해 주지도 않습니다. 건전한 담론을 생산해야 할 주류언론들은 이미 벽창우를 자처하고 나선지 오래되었습니다.
우리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갈등과 대립에 관한 이유와 해답은 각자가 찾고 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도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는 현실을 그래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다양하게 부딪히다가 다양한 결론을 내지 못하고 목소리 큰 한쪽으로 굳어 버린 모습, 지금 우리사회는 그렇게 위태하고 불안해 보입니다.
대통령을 벽창호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오만과 독선이 우선이기 때문이라 하고, 우리는 표현 방식의 차이만을 들어 더 중요한 말 뜻을 이해하지 못하니 당신들이 벽창호라고 말합니다.(사실은 이해 안하기로 이미 작정한 것이지요)
이게 정말로 결론을 내리기 어려울만큼 본질적으로 복잡한 문제일까요. 대통령의 어법은 표현의 순화 미화만으론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직접적인 화법을 사용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직설적인 표현을 하는 경우는 대통령이 던지고 질문하고 생각하고 대화해 보자는 전체의 내용에 비하면 극히 일부일 뿐입니다.
68분짜리 피와 살이 되는 얘기에 1분도 안되는 단어 몇개로 67분을 각색하는 사람들, 귀 막고 꼼짝않는 외면병, 왕따문화를 얘기하는데 '막말 정치'니 '정치엔 끼어들지 말라'느니 엉뚱한 얘기만 하는 사람들, 우리시대 진짜 벽창우는 누구일까요.
이제는 우리가 답을 해야 합니다.
원칙과 일관성으로 신뢰받는 사회를 만듦에 있어 그것을 가로막는 불필요한 악이 무엇인지 이제는 치우고 버리고 가야 합니다.
말귀를 다 알아 들으면서도 못 알아 들은 척 버팅기면서 따라 오지 않는 사람들, 몰라 못하는 벽창우보다 더 괘씸한 사람들을 이젠 정말로 골라 내고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바야흐로 때가 만들어 지고 있습니다.
움츠린 어깨를 활짝 펴고...두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