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스스로를 "개미"라 칭한 적이 있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속 개미들 처럼 우리는 개개인의 한계를 초월해 스스로 창조해 내는 문화를 꿈꿔왔다. 개미 한마리의 지능은 보잘 것 없지만 개미집단은 차원이 다르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개미"는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1. 개미의 사냥
개미를 흔히 1차원적인 동물이라고 한다. 개미의 행렬이 선의 형태를 띄어서일까? 시각과 청각이 발달하지 못한 개미는 지나가는 자리마다 자신의 체취를 남긴다. 먹이를 찾아 떠났던 개미들이 공간에 대한 지각력 없이도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헨젤과 그레텔의 조약돌 덕분인 것이다. 이 정도의 지각력이라면 나뭇가지에 매달린 잎이나, 방구석 어디에 떨어져있는 빵 부스러기를 둥지에 앉아서 알아챈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개미들은 먹이를 탐색하기 위해 이리 저리로 움직인다. 개미 한마리를 살펴보면 술에취한 마냥 이리왔다 저리갔다 종잡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일단 먹이를 발견해 돌아온 개미가 있다면 그 길을 찾아 동료 개미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꿀벌의 8자비행과 마찬가지로 먹이를 발견한 개미는 동료 개미를 자극하고, 전리품을 획득한 개미들이 많아질 수록 더 많은 자극이 이뤄진다. 곧이어 개미집단의 상당수가 사냥대열에 참여한다.
그래서 개미들이 사냥을 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연체동물이 먹이를 사냥하는 것과도 비슷하다고 한다. 줄지어선 개미들이 길고 가느다란 촉수가 되어 이리 저리 움직이다가 먹이를 발견하고는 순식간에 덥치듯이.... 흔히 말하는 선택과 집중이 이뤄진다고나 할까?
땅 속의 개미들이 먹이를 물고 온다면, 인터넷의 두발달린 개미들은 다양한 컨텐츠를 생산한다. 고만고만한 것들도 많지만 때때로 훌륭한 컨텐츠에 고조된 네티즌들이 댓글과 답글을 달고 옆동네로 펌하고 그 곳에서 또 다른 곳에서 같은 과정이 반복되면 어느순간 집단 전체의 소통이 순식간에 상승작용을 일으킬 때가 있다.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어떻게 집중해야 하는지 설계도나 청사진 하나 없어도 저절로 이뤄진다. 이 때에는 개미집단이 한마리의 능력을 초월하듯이 우리들도 개인을 초월한 집단지성을 경험하게 된다.
허나 뭔가 이상하다.
위 방식 대로라면 모든 일이 잘 풀려야 할 텐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인터넷이 존재하기 훨씬 전 인류가 언어를 사용하던 때부터 인간은 소통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때때로 한시대 한장소의 사람들은 전일적인 선택에 집중하고 환호 하기도 했지만 그 끝이 비극인 경우도 꽤 있었다. 선택과 집중이 꼭 최선은 아니다.
다음은 파국에 대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