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親盧’-‘反盧’의 이분법, 문제있다
시대가 바뀌면 말도 달라져야
김종민 국정홍보비서관
최근 열린우리당의 진로 문제를 놓고 논쟁이 활발합니다. 언론에서도 연일 포커스를 맞추고 기사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사소한 것 같지만 중요한 문제 하나를 짚어 볼까 합니다.
언론보도를 보면 현재의 당내 논쟁 구도를 “친노(親盧) 대 통합신당파”라고 규정하거나, 아예 “친노 대 반노”의 대립으로 표현하는 기사가 자주 눈에 띕니다. 부정확할 뿐 아니라 낡은 조어(造語)입니다.
지금 열린우리당은 당의 변화 방향과 진로를 놓고 논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지, 대통령에 대한 지지와 반대로 나뉜 것이 아닙니다. 한쪽에서는 열린우리당의 정체성과 지도력을 다시 가다듬는 내부개혁이 우선이라는 것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열린우리당으로는 어려우니 외부세력과의 통합을 통해 새로운 틀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열린우리당의 많은 의원들과 당원들은 나름의 가치와 소신을 갖고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대통령과의 친소관계 때문이 아니라 당의 진로에 대한 나름의 판단 때문에 그런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정체성을 제대로 세우자는 쪽에도 대통령과 개인적으로 별 인연이 없는 사람이 있고, 외부세력과 통합을 주장하는 쪽에도 대통령과 친한 사람들이 여럿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편, 대통령에 맞서는 편으로 손쉽게 분류하는 것은 의원들과 당원들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말을 쓴 의도와 관계없이 ‘친노’는 대통령 지시대로 움직이는 사람들로, ‘반노’는 대통령과 한 판 승부를 벌이려는 사람들로 만들어 원칙없이 정쟁이나 일삼는 것처럼 몰아버리는 측면이 있습니다.
또한 친노-반노의 잘못된 이분법은 마치 대통령이 당내 논쟁을 좌우하고 있고, 정치에 ‘올인’한다는 왜곡된 이미지를 유포시킵니다. 결과적으로 대통령에 대한 불신과 대립, 정부-여당의 국정 추진력 약화를 부추길 소지가 있습니다.
대통령이 굳이 당의 진로 문제에 대해 입장을 밝힌 것은, 당원의 한 사람으로 당의 가치와 정체성, 합법적이고 민주적 절차를 지켜나가자는 원칙을 강조한 것입니다. 대통령의 말이기 때문에 무조건 따르라거나,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들은 모이라는 주문이 아닙니다. 무엇이 올바른 원칙인지 생각해보자는 것입니다.
또 대통령이 강조한 것은, 당의 진로에 관한 중요한 문제는 당의 총의를 모아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통령을 당 상황의 한 가운데 놓고 마치 대통령이 논쟁을 끌고 가는 것처럼 보는 시각은 옳지 않습니다.
따지고 보면 대통령을 중심으로 패를 나누는 이분법적 도식화는 제왕적 대통령, 제왕적 총재 시대의 낡은 정치독법입니다. 이제 대통령은 과거와 같은 제왕적 총재가 아닙니다.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 분위기를 몰고 가면 옳고 그름에 관계없이 대세가 정리되는 시대가 아닙니다.
대통령은 당을 지배하려 하지도 않고, 당내에 가까운 사람들을 모아 정파적 이해를 도모하려는 뜻도 전혀 없습니다. 중요한 당원의 한사람으로 당의 진로가 걸린 중요한 문제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고 당의 총의를 모아서 결정하자고 제안했을 뿐입니다.
시대가 바뀌면 쓰는 말도 달라져야 합니다. 비선, 가신, 밀실, 눈도장, 동교동계, 상도동계 같은 말들이 신문 지면에서 사라진 지 꽤 됐습니다. 노선과 가치는 제쳐두고 단지 대통령과의 친소관계로 정치세력을 구분하는 낡은 말법도 이젠 사라져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