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경험했던 가장 황당했던 기억이다. 80년대 중반에 과거 소비에트가 무너지자 운동권 학우들이 거의 정신분열 증상을 겪는 것을 보고 난 정말 기이했다. 맑스와 레닌의 이념으로 만든 국가가 처참하게 무너지는 것이 왜 머나 먼 한국땅의 청년들이 정신분열을 일으킬 정도로 경기를 일으키는 사건이었는지 참으로 의아했다.

그때의 청년들이 정치경제적 지식으로 함량미달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해도, 소련이 무너지는데 왜 다들 뒤집어져 버리는지 도통 이해가 안되었다. 조직이 개인의 사고를 교조화시켰다고 인정한다 해도 말이다.
이미 1960년대, 소위 사회주의 정치경제학자들은 소비에트가 내재적 모순으로 인해 가까운 미래에 붕괴될 거라고 예측하고 있었다. 1960년대에 말이다. 이 예측은 서구 진보진영에서 일반화되어 있었다. 다만 소비에트의 사회주의적 이념이 어떻게 진보될 것인가가 주요 테마였다.
소비에트가 무너지기 훨씬 이전에, 이미 유럽은 새로운 진보운동이 시도되고 있었다. 그 첫번째가 소득의 불평등이 환경의 불평등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이념적 토대구축이었다.
세상은 이미 60년대부터 진보의 격랑기를 보내고 있었는데, 한국의 진보는 노태우 시절에 소비에트가 무너지면서 좌절을 맞고 있었다. 그리고 소위 386들은 자기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TV 방송에 나온 송영길과 원희룡이 소비에트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 경악을 했단다. 그것을 보고 난 이들의 뇌상태가 의심스러웠다.
왜 소비에트가 무너지는데 지들이 경악했을까 하고 말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들이 그저 맑스와 레닌을 교조적으로 신봉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 난 이들에게서 맹목적 신봉을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차후에 그들이 보여주는 정치적 행보는 기성 정치인이 보이는 더러운 답습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80년대 또 다른 교조적 행태가 나타났다. 바로 김영환을 중심으로 하는 주사파였다. 맑스 레닌도 모자라 주체사상으로 무장된 교조주의자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한국의 진보세력이 얼마나 어두울지 짐작이 되었었다.
주사파가 맑스레닌주의보다 더 큰 영향력을 줄 수 있었던 근거는 주사파의 밑바닥에 민족주의가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식민지 시대에 제국주의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민족주의자였다. 주사파는 이것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커다란 영향력을 펼칠 수 있었다. 주사파는 애초 통일운동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했다. 다만 민족주의를 헤게모니 장악을 위해 이용하고 있었을 뿐이다. 여기에 주사파의 비극이 있었다.
이 비극은 대개의 주사파들이 변절되는 것을 보면서 참 더럽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지금 주사파들이 어떤 식으로 변절되었는지 보고 싶으면, 뉴라이트를 한 번 봐라. 주사파와 기독교가 손을 잡고 있는 실정이다. 진짜 더러운 사건이다.
저 80년대를 누구보다 처절하게 살고, 누구보다 진실되게 실천한 노무현, 이해찬, 유시민은 이러한 교조주의에 빠지지 않았다.
왜?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문제해결을 위해 고민하며, 스스로 행동에 옮겼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진보가 나아갈 길이 있다.
내가 노 대통령, 이해찬과 유시민을 높히 평가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들은 교조주의적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고민하고, 스스로 행동한다. 그것도 누구보다 용감하게...
이것을 떳떳하게 할 수 있는 자가 바로 진보주의자이다. 저명한 학자나 유명한 어떤 누구의 말을 빌려서 나의 상황을 설명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우리가 처한 상황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고뇌하여, 스스로 세운 원칙으로 행동하는 것이 바로 진보의 모습이다.
이것을 바탕으로 두어야 통일운동이나, 평등운동이나, 인권운동이나, 민족운동도 제 길을 간다. 이게 안되면 모든 것이 교조주의로 빠지게 된다.
그래서 언젠가 노 대통령이 이런말을 하지 않았던가.
철저히 고민하고, 멀리 내다보며, 역사적으로 고민하자고 말이다. 이게 바로 가장 밑바닥에서 우리의 민족을 가름하는 진보의 기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