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와 함께 우리가 꿈꾸던 좋은 정당을...
만드는 길에 나서지 않으시렵니까?
저는 오늘 오전 대통합신당을 탈당하고, 오후에는 무소속으로 사하구(갑)에 예비후보 등록을 할 예정입니다.
2002년 개혁당을 시작으로, 2003년 11월 11일 열린우리당 창당 당원, 그리고 2007년 8월 19일 열린우리당 해산과 대통합민주신당과의 합당 결의로, 입당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아 자동적으로 승계당원이 된 지난 5년간의 정당 활동이 머리를 스쳐갑니다.
정당이 무엇인지도 채 모르는 채, 국민통합정당, 인터넷기반 정당, 참여민주주의 정당, 진성당원제라는 네가지 기치와 당원이 주인 되는 정당의 가치에 공감하고, 후단협에 시달리던 노무현 국민후보의 당선을 돕고자 창당발기인이 되고 당원이 된 개혁국민정당(약칭 개혁당) 시절...
2004년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과 개혁당의 통합 없이는 한나당에게 어부지리만 줄 수 있다는 위기감과, 개혁당의 꿈을 더 큰 광장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로 개혁당을 해산하고 열린우리당 창당당원이 되었습니다.
개혁당 시절 소네트 손성수님이 대표집행위원을 맡고 저는 집행위원 겸 사무처장을 맡아 열린우리당 창당을 위한 신당연대 활동에도 참여했습니다.
열린우리당 창당 후 조성래 의원님을 위원장으로, 지금은 친구이자 정치적 동지가 된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이정호 교수를 사무처장으로 모시고, 사무차장 겸 조직국장으로 초기 열린우리당 시절을 나름대로 보람있게 보낸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참 그때, 지금은 금정구 의원으로 열심히 활동하고 계시는 쑨히 박인영님이 조직차장으로 저와 함께 일했었지요.
2004년 총선 공천을 앞두고는 전략공천과 경선 사이에서 개혁당 출신 예비후보들이 경선 내지 공천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했지만, 연못의 용 최택용님만 경선에서 승리하여 총선후보로 출마하고, 하구언 윤준호님은 전략공천으로 밀리고, 쏘네트님은 조영동 전 국정홍보처장님께 양보하지 않을 수 없는 고뇌와 아픔도 겪었습니다.
사상 초유의 탄핵사태를 거치면서 탄핵세력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들끓었음에도 불구하고, 4월 15일 16대 총선에서 18개 선거구중 사하 을 한 지역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패배한 일도 뼈 아픈 기억입니다.
구속 중이던 안상영 전 부산시장의 유고로 인하여 치러진 2004년 6월 5일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오거돈 후보 선대위의 상황실장을 맡아 역시 결과적으로 패배한 선거의 선거실무자가 되었고, 그 결과에 책임지고 조성래 위원장께서 시당 위원장을 사퇴하시면서 이해성 시당 위원장 체제가 출범한 후 자의반 타의반으로 시당 사무차장을 그만두게 되었지요.
2005년 당의장 및 중앙위원 선거 때 당 활동에서 중앙위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에, 여러 동지들과 공감하고 중앙위원 선거에 출마하였습니다. 힘든 선거였지만 많은 동지들의 도움으로 3등으로 중앙위원이 되었습니다.
저를 아직도 최병철 중앙위원으로 부르는 분도 계신 데, 초등학교 반장 후 처음 출마한 그 선거를 참 어렵게 치러낸 기억이 생생합니다.
저와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분들도 만나 표를 달라고 말씀드려야 하는 일이 처음에는 너무나 어색하고 힘들었습니다. 중앙위원 선거를 함께 치렀던 분들은 참정연을 거쳐 지금까지도 정치적 동지로 같은 길을 가고 있습니다.
2004년인가 당내 개혁블록의 결집을 위해 참여정치연구회가 창립되었고, 2005년에는 보다 강고한 조직적 결합의 필요성에 따라 참여정치실천연대로 업그레이드하였습니다.
저는 부산참정연의 상임대표이자 전국참정연 집행위원이 되었습니다. 2006년에는 부산참정연 동지들의 헌신적 활동 덕분에 전국 공동대표로 활동하는 영광(?)도 가졌습니다.
2005년 4월부터 2007년 2월까지의 열린우리당 중앙위원과 참정연 시절... 중앙위원회가 열리면 기간당원제 등 당의 근간을 흔들려는 분들에 맞서서 당헌개정 저지선(성원이 90명이었고 당헌 개정 요건은 재적 3분의 2였음)을 맞추는 게 일이었고, 참정연은 여러가지 건강한 고민과 의지에도 불구하고 조직노선을 지키기 위한 활동에 매몰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2기 참정연이 출범하면서 정책활동 강화의 필요성은 언급되었지만 실행되지 못하였고, 2007년 2월 전국대의원대회에서 기간당원제가 폐지되면서 개혁당 시절부터 우리가 함께 꿈꿔온 당원이 주인 되는 건강한 정당건설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참정연 또한 유시민 의원의 대통령선거 출마를 앞두고 변화하는 정치환경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하여 2007년 4월 해산을 결의하였습니다. 저는 본의 아니게 개혁당, 열린우리당, 참정연 등 2개의 정당과 한 개의 단체를 해산하는 과정에 모두 참여하는 해산전문가(?)의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참정연 해산 후 유시민 후보의 출마선언과 경선 패배, 대선 패배의 과정은 여러분도 다 아는 과정이고, 이해찬 후보로 단일화된 후 모바일 선거인단 모집과정에서 여러분들에게 본의 아니게 많은 분들께 협박 아닌 협박과 압력도 많이 가했습니다. 적어도 유시민의 지지자는 싫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지만 마음이 따르지 않는 일을 강요한 것만 같아서...
유시민 의원의 경선 패배와 대선 참패 후 많은 것을 되돌아 보고 생각했습니다. 5년 전 시작했던 좋은 정당의 꿈, 가치와 노선을 같이 하는 사람이 모여 변화하는 시대정신에 맞추어 사회적 연대와 공평, 정의를 실현하는 정당 - 유시민 의원은 그걸 '유연한 진보정당'이라 했지요 - 의 꿈은 현실이 어려워 질수록 더욱 깊어지고 목마름은 더해 갑니다.
지속가능한 성장과 사회적 연대가 가능한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정당운동가와 정치운동가로만 살아서는 불가능하다는 점, 정치참여의 최고 형태인 출마를 통하여 세력을 만들고 지역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 그래서 출마를 결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정치적 스승이자 친구인 유시민 의원과 또 여러 동지들과 함께 좋은 정당, 좋은 사회를 만드는 길을 가려 합니다. 감히 이 길에 여러분도 함께 하자고 손을 내밀어 봅니다.
저희 큰 누이의 이야기대로 어찌 보면 무모한 일입니다. 선거비용의 보전한도인 15% 득표가 가능하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내세울 만한 경력이나 재산이나 조직도 없습니다. 그러나 패배할 게 뻔한 선거에 도전하는 건 처음의 마음이 제게 남아있음을 증명하는 것이고, 총선 뒤 좋은 정당을 만들려는 꿈을 꾸는 벗들과 동지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 심각하지 않게 재미있으면서도, 그러나 악착같이 열심히 하렵니다. 좋은 정당 건설과 사회적 연대와 공평 정의가 실현되는 사회를 깃발로 힘차게 말하려 합니다. 노무현 참여정부의 공과를 계승하고 혁신하여 새롭고 창조적인 가치와 정책을 만들어내려 합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사랑, 그리고 참여 부탁드리고 소망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오.
긴 글 읽어주셔 감사드립니다.
2008.2.21
희망샘(최병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