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노무현'과 지역주의>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기자 =
"지역대결은 답이 없는 감정싸움이며 독재시대의 유산이다. 불신과 적개심을 부추겨 편을 가르고 분노와 증오로 반목하게 하는 것은 정치인이 발명한 득표수단 중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지난해 2월 국정연설에서 여야 의원들을 향해 소선거구제를 개편해줄 것을 호소했다.
후보자의 인물 됨됨이와 관계없이 특정 정당의 깃발만 꽂으면 당선되는 현행 선거제도가 바뀌지 않으면 망국적 지역주의가 극복될 수 없고, 국민통합과 선진국가 진입도 어렵다는 논리를 폈다.
지역주의가 다시 정치권의 화두로 급부상하고 있다. 노 대통령이 30일 열린우리당에서 논의되고 있는 통합신당을 '지역당'으로 규정, "신당에 반대한다"고 의중을 밝히고 나선 것이다.
발언에 정치적 의도가 있는지를 떠나 노 대통령의 말에는 '일관성'이 담겨 있다. '지역주의 극복'은 취임 이후 줄곧 노 대통령이 내건 화두였기 때문이다.
취임 첫해인 2003년 4월 국정연설에서 노 대통령은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에서 3분의 2 이상 의석을 독차지할 수 없도록 선거법을 개정해 달라"면서 "이런 제안이 내년 총선에서 현실화되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정당 또는 정치연합에 내각의 구성권한을 이양하겠다"고 선언했다.
지역주의 타파에 '대통령 권력'을 걸겠다는 약속은 그 이후에도 정치적 고비 마다 반복됐다.
2003년 9월 민주당을 탈당, 지역주의 극복을 기치로 내건 열린우리당에 합류했고, 여대야소가 붕괴된 작년 7월에는 "지역주의 극복은 내 필생의 과업"이라며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했다.
한나라당이 연정 제안의 진정성을 의심하며 미동도 않자 "대연정을 않더라도 선거제도만 고친다면 권력을 내줄 수 있다"고도 했다.
노 대통령의 이 같은 집념에는 지역주의에 기반한 현 정치구조로는 정치 발전이나 국가의 밟은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는 '정치철학'이 내재돼 있다.
그는 지난해 7월 "국정과제 중 가장 어려운 것은 정치적인 지역분할구도가 지역주의를 확대 재생산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라고 토로한 바 있다.
주목되는 것은 노 대통령의 이런 인식이 구두선에 그치지 않고 인사와 정무적 판단 등 통치권 전반에 걸쳐 구체적 행동으로 반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권력기관장을 비롯한 정부 부처 인사에서 정부 핵심 요직에 특정지역 출신이 편중되지 않도록 하는 균형인사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현재 사정기관을 예로 들면, 검찰총장이 영남 출신이면 청와대 민정수석은 호남 출신이 맡는 식이다. 그 전에는 검찰총장이 호남이면 민정수석은 영남이 맡았다.
청와대 참모와 공기업 인사에서는 노 대통령의 고향인 부산 등 영남 출신의 진출이 다소 두드러진 편이지만, 이는 선거 때 영남의 민주화 출신 인사가 불모지인 해당 지역에서 선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려는 측면이 강하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노 대통령 특유의 지역주의론은 정치역정의 소산이기도 하다. 노 대통령은 88년 당시만 해도 '야도(野道)'였던 부산에서 당선됐지만 이후 3당 합당 거부, 국민회의 입당으로 연거푸 낙선의 고배를 마시면서 지역주의에 맞선 '바보 노무현'이란 말을 들을 만큼 무모한 정치적 결단을 거듭해 왔다.
결국 여당과의 전면전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번에 신당에 반대하고 나선 것도 노 대통령 자신이 만든 지역주의 극복의 과정을 되돌릴 수 없다는 의지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j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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