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여의도의 한 호프집은 완전히 축제 분위기였다. 그 속에서는 계속해서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따금 민중가요가 흘러나오기도 하고, 또 때로는 트로트 유행가가 합창으로 불려지기도 했다. 간간이 박수 소리도 터져 나왔다.
(중략)
"위로해 주려고 왔더니 이건 뭐 완전히 잔칫집이네요."
"제가 뭐 위로받을 일이 있나요. 그리고 우리 시민광장 회원들, 유빠들은 원래 이렇게 놉니다."
"지난번 한 약속, 소주 한잔 나누자는 약속 지키려고 했는데.... 오늘 같은 분위기에선 힘들겠네요."
"내일 아침 일찍 또 충주 내려가야 하는데 이러고 있네요. 내일부터는 선거대책본부장이 되어 뛰기로 했습니다. 이제부터 또 싸움을 시작해야지요."
"오늘 사퇴했으면 며칠 좀 쉬지 그러세요?"
유 의원은 웃기만 했다.
유 의원은 오늘 당내 경선을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중략)
"내가 찾아온 것은...... 우선 대통령님게서 위로해 주라고 합디다. 그리고 대통령님께서는 유 의원이 경선에 나설 때부터 별로 환영하는 기색이 아니셨어요. 왜 그런지 아시겠어요?"
"승산 없는 싸움이다, 이런 뜻이었을까요?"
"승산보다는 원칙, 원칙입니다. 혹시라도 유 의원이 원칙 없는 자들과의 싸움에 매달려 스스로를 상하게 하지 않을까 염려하고 계십니다. 대통령께서는 유 의원이 나라를 위해 더 크게 쓰일 분이라고 보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유 의원이 사퇴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오히려 반색을 하시며 저더러 위로해 주고 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 그런 줄 알고 난 이만......"
(중략)
그는 호프집 안의 열기가 바로 유 의원의 열정에서 전염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그는 유 의원의 그 열정이 좋았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그는 유 의원의 <항소이유서>를 떠올렸다.
러시아 시인 네그라소프의 시에서 인용한 그 말은 젊은날의 유시민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유시민이 생각했던 '슬픔'과 '분노'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는 그것이 곧 '인간다움'과 '버틸 수 있는 힘'이 아닐까 하고 대치시켜 보았다. 인간다움이 있기 때문에 슬픔을 느끼는 것이고, 버틸 수 있는 힘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분노했던 것은 아닐까.
이게 뭐냐구요?
『사무치면 꽃이핀다-소설 노무현/이정환 장편소설』중 우리 '시민광장'이 나오는 대목입니다.
여의도 호프집에서 그랬구나.
대통령님이 위로도 해주셨구나.
아참, 이건 소설이지, 소설!
이 소설을 읽다보면 이런 식의 일이 벌어집니다. '와, 그 때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구나!' 하다가 '아니지, 이건 소설이잖아!' 이런답니다. 그만큼 이야기 속에 쏙쏙 빠져 몰입하게 되고 현실과 구분이 덜 될만큼 사실적으로 느껴진다는 거죠. 픽션과 난픽션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일 겁니다.
소설은 68개의 짧거나 조금 긴 장면으로 나눠져 있어 지루함 없이 읽어나가기가 좋습니다. 물론 재미가 다음 장면으로의 눈걸음을 재촉하고 있기 때문에 '지루함'이란 단어는 절대 얼굴을 들이밀 수가 없지만요.
대통령의 친구이면서 영원한 아군인 인물 '그', 문실장. 이야기는 '그'로 시작해서 '그'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느끼기엔 대통령이 주인공이 아니라 '그'가 주인공인 것 같습니다. '그'를 통해 대통령은 대통령도 되고, 그의 친구도 되고, 고뇌를 가진 한 인간도 됩니다. '그'를 통해 사건과 극중 인물들은 얽히고 연결되어 전혀 상관없는 듯 하던 일이 하나로 모아집니다. 미술사를 전공한 교수가 존재를 확인하고파 하는 이 중섭의 그림, '춤추는 소'(가공의 그림이겠죠? 실제작으론 '춤추는 가족'이란 작품이 있는 것 같습니다. 검색해 본 결과.^^)가 남북 정상회담에 등장하게 되는 등.
마지막 장면에서, 퇴임한 대통령은 또 다시 여행 중에 있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옵니다.
"친구, 또 티벳입니까? 수소문해 보니 역시 여행중이더군요......"
퇴임한 지 석 달도 되지 않았는데 국회의원에 출마하겠다며 "당신이 필요합니다." 라고 합니다.
"꼭 그래야 하겠습니까?"
"그래요 친구. 사무친 게 많아서...... 아무래도 사무친게 많아서 그러나 봅니다."
그가 또 다른 등정을 위해 하산을 서두를 때, 마당가 맨드라미는 아침 햇살을 받아 빨갛게 피어나고 있었고 소설은 여기서 맺어지는데,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아, 사무친 게 많은 사람은 대통령이 아니라 작가구나!'
작가의 절절한 사무침이 저의 깊은 곳까지 도달했는지 깊은 밤에 잠시 잠을 이루지 못했답니다.
사무침이 절절한 사람들이 어찌 대통령과 작가 뿐이겠습니까? 사무침이 많아서 전봇대에라도 꽃을 피우려고 모여 있는 여러분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베스트셀러로 만들어 내년 2월에 퇴임할 노대통령님에게 '작은 기념품' 정도가 아니라 좋은 선물이 되도록 만들면 좋겠습니다.
'대통령 노무현'의 임기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나는 이 소설을 탈고한다. 진작 쓰고 싶었던 이야기지만, 이제야 끝을 맺게 되었다. 이 소설이, 임기가 끝나는 당신에게 작은 기념품이라도 된다면 그걸로 족하다. 소설 속에서 한 등장인물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것은 곧 내 생각이기도 하다. 당신이 있었기 때문에...... (작가 후기 중-)
- 작가님 궁금합니다 -
소설에서 미주알 고주알 모두 설명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소설을 읽고 나니 의문점이 생겨서요.
1.'티벳'의 의미는 뭔가요? 왜 하필 티벳을 설정했을까요?
'그'는 왜 티벳까지 갔었을까요? 그리고 티벳에서 만난 여자, 소설 말미에 그 '인연'에 대해서도 나오는데요-물론 눈치 빠른 저는 미리 알았지만요-그 여자는 어떻게 거기까지 밀려가 있었던 걸까요? 그냥 독자의 상상에 맡기는 건가요?
2. 방화백의 죽음이 있어서 결과적으로 돌고 도는 인연이 만나게 되었지만, 뭔가 아쉬움도 느껴지더군요. 그 후 조철환 일당이 어떻게 했는지 생략되어 있어서요. 별로 중요한 인물이 아니면서도 몇 군데 불쑥 불쑥 뛰어 드는 그들의 존재는 연속성있게 그려지지 않아서인지 약간은 생뚱맞기도 하더군요.
3. '그'를 소설 전반에 걸쳐 내세워 저의 경우엔 주인공이 대통령이 아니라 '그'처럼 느껴지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부제가 [소설 노무현]인데 저의 느낌으로는 대통령이 크게 부각되는 것 같지가 않네요.
#작가님, 책 읽고 독후감 쓰겠다는 약속은 지킨 겁니다. 3일 묵은 숙제 끝낸 기분입니다.^^
#작가의 글 ; http://usimin.co.kr/2030/bbs/tb.php/ANT_T200/15346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