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펌.
싱가포르가 주는 교훈
수년 전 샴 쌍둥이 수술로 유명해진 싱가포르 래플즈 병원 원장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의 강연을 들으며 역시 싱가포르는 아시아의 의료허브를 지향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겠구나하는 부러움과 동시에, 과연 '우리나라도 가까운 장래에 아시아의 의료 허브를 지향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떠올랐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행의 우리나라 의료 system을 유지하는 한, 100% 불가능하다는 것이 한점 과장 없는 진실이다.
대한민국 의료 system의 복잡한 문제를 간단 명료하게 단순화하여 설명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나, 환자 분들이 병원을 이용 시 느끼는 불만을 단적으로 표현한 "3시간 대기, 3분 진료"가 이루어질 수 밖에 없는 현 system에 대한 설명을 함으로서, 대한민국 의료에 관한 대부분의 문제는 잘못된 제도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이 지면을 통해 네티즌들께 알리고자 한다.
"3시간 대기 3분 진료" 이는 장시간을 대기하고 진료실로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질문 한가지 제대로 못해본 채 쫓기듯이 진료실 나와야 하는 작금의 의료현실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의료 선진국이라는 서구에서는 한 명의 환자 진찰 시 소요되는 시간이 짧게는 20-30분, 길게는 1시간을 초과하는 것이 통상적이라는 데, 어째서 우리나라에서는 매달 꼬박꼬박 보험료를 납부하는데도 불구하고 의사선생님에게 한마디 물어 볼 여유조차 없는 것인가?
의사들 또한 서구와 같은 system으로 하루 10명에서 많아야 20명 정도의 예약환자만 진료하는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현 의료제도에 대해서 의사들 또한 대단히 불만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대한민국 의료제도는 다양한 국민의 기대치를 충족시켜 줄 수 있게 하기 위하여 국민에게 선택권을 돌려주어야 한다.
그러나 현행의 대한민국 의료제도의 핵심인 국민건강보험제도는 모든 국민을 단일 보험에 강제로 가입시켜 국가가 관리하는 system이다.
모든 국민은 강제로 건강보험에 가입될 뿐만 아니라, 본인도 모르는 사이 환자들은 정부의 규격진료 틀 내에서만 진료받고 있다.
의료기관 (병원과 의원을 총칭함)또한 정부에서 정한 수가대로만 진료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학문적으로 타당한 진료행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보험공단의 무자비한 부당삭감을 과잉진료니 부당청구니 하여 매도당하기 십상이어서, 이제는 많은 의사들이 학문적 판단에 의한 진료를 포기하고 정부의 심사기준에 따른 진료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필자의 생각에 최소한 대한민국은 의료에 관한 한, 의료 공급자인 의사들뿐만 아니라, 의료소비자인 국민들의 선택권이 원천적으로 봉쇄된 사회주의 체제이다.
진료비를 더 내더라도 진지한 상담 및 진찰을 받을 수 있게 충분한 시간의 진료시간을 할애해 달라고 요청하는 환자 분들을 실제 진료현장에서는 많이 접하게 된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의료에 관련된 제반 법률에 의하면, 환자의 자발적인 요청에 의하여 원하는 만큼 충분한 시간의 진료를 행하고 환자 분이 기꺼이 진료비를 더 지불하더라도 불법이다.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 국가를 표방하는 대한민국에서 의료공급자인 의사와 의료소비자인 환자간의 자유 의지에 의한 계약을 법으로 못하도록 강제하고 있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혹자는 영국의 예를 들며 의사들의 정당한 주장은 돈만 아는 집단이기주의에 다름 아니라고 매도한다.
그러나 영국은 거의 대부분의 의료기관이 국가 소유이며 이 곳에 근무하는 의사들은 단지 국가 소유의 의료기관에 취직하여 월급을 받는 system인 것이다.
다시 말해 영국은 의료에 관한 재정의 확보, 관리의 주체뿐만 아니라 진료에 이용되는 설비인 의료기관 및 의료기기의 소유 또한 국가이므로 환자 및 의사들에 대한 정부의 규제 및 개입이 가능하다.
그러나 대한민국 의료기관 대부분은 민간 소유인 관계로 영국에서와 같이 국가가 개입하여 환자와 의사들의 선택권을 박탈한다는 것은 지극히 위헌적인 발상이나, 이러한 위헌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 의료의 현실이다.
진료시간이 3분이건 1시간이건 간에 동일한 진료비를 받으라는 것은, 탑승시간이 3분이건 1시간이건 간에 동일한 택시 요금을 받으라는 것과 같다.
중앙 정부나 지방 정부 소유의 택시회사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이미 국가에서 인정한 택시 기사 자격증을 소지하고 도로 교통법에 따라 운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원의 낭비를 막는다는 미명하에, 택시 운행에 따른 여러 가지 불합리한 규제가 행해지더라도 따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택시 요금 또한 대 국민 서비스 차원에서 3분을 탑승하던 1시간을 탑승 하던 동일한 요금을 받는 것이 가능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나아가 무료탑승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에 소요되는 재원은 어차피 국민들이 내는 세금에서 충당되어야 하므로 국민들은 기꺼이 더욱 많은 세금을 낼 각오를 하여야만 한다.
그러나 모든 택시의 소유가 민간인 현재 상황에서, 택시요금 산정이 현행의 시간 거리 병산제가 아닌 탑승횟수에 따라 일률적으로 부과된다면 어떠한 상황이 벌어질 것인가?
자영업자라고 할 수있는 개인택시 운전자나 회사택시를 경영하는 사업자나 짧은 거리의 손님만 골라 탑승하거나 장거리를 요하는 승객은 3분만 운행하고 하차 시킨 후 다른 택시를 타라고 하지 않겠는가?
3시간 기다려 겨우 빈 택시에 승차했는데 3분 후에 하차해야만 한다면, 택시 이용객들인 국민들은 잘못된 제도를 탓하기 앞서 돈만 밝히는 택시기사들이라고 욕하지 않겠는가 ?
어쨌든 3분 거리를 운행하건 1시간 거리를 운행하건 간에 민간 소유의 택시에 동일 요금을 받으라고 국가가 법률로 강제하는 일은 절대로 가능하지 않다고 모든 사람들은 말할 것이 다. 따라서 정부도 그러한 무모한 정책을 강행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의료에 관한 한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일이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1977년부터 시작되어 이미 30년 가까이 자유민주주의 국가,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표방하는 대한민국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3시간 대기 3분 진료는 의사들이 부도덕하고 돈만 밝히는 집단이라서 벌어지는 상황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잘못된 의료제도가 3시간 대기 3분 진료를 강제하고 있는 주범인 것이다.
잘못된 제도를 고치지 않고서는 의사를 포함한 대한만국의 모든 국민은 결국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아니 이미 많은 국민들이 이러한 잘못된 제도로 인해 피해를 겪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올바른 현실 인식이다.
그 원장의 강연 내용 중 인상 깊었던 대목 한가지만 소개하고 졸필을 맺는다.
인구 400만을 조금 상회하는 싱가포르의 의과대학 입학 총정원을 200명으로 동결하였다고 한다. 싱가포르에서도 우리나라와 마차가지로 많은 인재들이 의과대학을 지원한다고 한다.
의과대학에 집중되는 인재로 말미암아 의사보다 더욱 중요한 다양한 다른 분야의 인재 육성에 장애가 된다고 판단한 국가의 지도자들이 국내 의사수의 부족에도 불구하고 아예 입학정원을 대폭 감축하여 동결함으로서 원천적으로 의과대학 집중을 봉쇄하였다 한다.
그 대신 부족한 의사는 외국 유수의 의과대학을 졸업한 외국인 의사들을 수입하는 정책을 세웠다는 것이다.
한 국가가 부흥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여건이 필요하겠으나, 국가 지도자의 혜안과 leadership이 얼마나 막중한가에 대해 작금의 우리 현실과 대비되어 다시 한 번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