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15일 토요일,
아침에 출근하다 생긴 일 한 꼭지.
2주전부터 제가 새로 다니기 시작한 회사는 토요일을 3교대로 돌아가며 쉽니다.
아침마다 남산 역 부근에 사시는 조광일(창피해 하실까봐 바꿔 쓴 이름)씨가 서대신동 저의 집 근처에 들러 저와 고명화(바꿔 쓴 이름)씨를 자기 차에 태우고 출근하시지요. 부산 지리를 잘 모르는 저는 괜히 우리 둘 때문에 길을 좀 돌아가시는가 싶어 그 동안 좀 미안 했던 터라 어제 밤늦게 부랴부랴 오늘 고명화씨가 비번이니 저 한 사람 태우려고 대신동으로 들르지 말고 저는 전철로 출근할테니 바로 출근하시라고 하고 저는 오늘 아침 일찍 동대신 지하철역으로 나왔죠. 참, 저는 기병인 모야모야병이 원인이 되어 장애인으로 등록되어 있기 때문에 복지부 예산으로 지하철을 이용합니다. 그런데 몇 주 전 복지카드를 분실하는 바람에 카드가 새로 나올 때까지 112 역무실에 들러 우대권을 받습니다. 다른 날보다 30분 일찍 집을 나서니 아침 공기가 참 기분이 좋았는데 동대신 지하철역으로 내려서니 몇몇의 서머퍼 부대가 눈에 들어오면서 분위기 확 잡쳐 놓데요.
서머퍼 3행시 아세요? 갱상도 사람들이 한다는 서머퍼 3행시 말입니다. 운 한번 띄워 보실까요?
스! 서머퍼넌 퍼래?
머! 머리도 퍼래!
프! 퍼래?
그 서머퍼 부대를 보자 또 머리로 피가 솟구치고 가슴은 두근두근 목이 근질근질 해옵니다. 어떻게 하면 저들 속을 확 뒤집어 놓을 수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가까이를 지나가시는데 무신 이명박을 부탁합니다카는 귀신 씨나락 조작해 떼먹는 소리가 들리는 걸 꾹 참고 마음을 다잡았죠, 지금 여기서 잘못 말리면 전철로 출근하는데 얼마가 걸리는지도 정확히 확인해놓지 않은 상태에서 출근전선이 부도날 수가 있다, 현대건설이 이명박씨가 CEO로 있을 때 무책임하게 벌여 놓은 사업들 때문에 2000년 기어이 부도났던 것처럼요. 그 사실 다들 아시죠? 경제 대통령을 꿈꾸시는 분의 그 화려한 성적표를 모르시면 투표하실 자격이 있다칼 수 있을까요?
그래서 꾹 참고 일단 기반 인프라부터 구축을 해놓고 보자카고 역무실로 가서 제 사정 설명하고 장애인 증명서 보이고 우대권 하나를 받아 역무실을 나서는데
그제서야 머리가 환하게 맑아지는 것이 저 퍼런 스머프들에게 뭘 베풀어줘야 할지가 떠오르더라고요.
일부러 가까이로 지나가니 사람을 뭘로 보고 이명박이 어떻고 저떻고 하길래 뭐라고요 하고 한번 물으니 세상에나 이명박에게 표를 찍어 달라는 겁니다, 글쎄.
저를 아시는 모든 분들 제가 평소에 한나라당 지지할 것처럼 보입니까?
제가 제일 자존심 부글부글 끓을 때가 제가 갱상도 억양 쓴다고 당연히 한나라당 지지자로 넘겨짚을 때입니다. 그런 눈치가 보이면 저는 참을 수가 없어지십니다.
그래서 방금 떠오른 말을 베풀어 주셨죠,
그 사람 사기꾼 아닌가요? 사퇴하라고 하세요.
생각지도 않은 반응에 적잖이 당황했는지 다시 물어 오길래 또 같은 가르침을 내렸더니 뭐라고 대꾸는 해야겠고 할 말은 안 떠올랐던지 그럽디다.
참, 똑똑하시네요.
아예 제가 좀 똑똑합니다.
그러고서 서둘러서 우대권 넣고 개찰구 안으로 쏙 들어와 버렸죠. 개가 쫓던 닭처럼 말이죠. 뜻밖의 사건은 여기서 터집니다. 저보다 개찰구를 한 박자 먼저 통과하여 들어와 계시던 어떤 아저씨 한 분이 발끈하여 뭐라뭐라 바깥 쪽 스머프들을 향해 소리 지르시는 겁니다.
저는 갈 길이 바빠서 자세히는 못 들었는데
지나가는 행인한테 참 똑똑하시네요라고 하는 게 그게 무슨 경우냐, 그래도 되느냐
뭐 그런 말씀 같았습니다. 발은 기계적으로 계단을 내려가면서도 온몸의 피가 귀로 확 쏠리면서 지하 1층에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하게 되데요. 그 서머퍼덜 하는 얘기가
아니 우리가 합법적으로 선거 운동하고 있는데 와서 뭐 후보 사퇴를 하라고 그러는데
안그러게 생겼냐?
이 말은 비교적 정확하게 들었을 겁니다.
얼쑤하고 신이 나는 거 있죠.
얼른 지하 2층에 내려와서 열차가 곧 도착한다는 신호가 아직 없는 걸 확인하고는 냅다 다시 지하1층 개찰구 뒤로 뛰어 올라갔죠. 그 아저씨를 진정키면서 아니 왜 그러시냐고, 저 사람들이 제가 똑똑하다고 했는데 저들도 사실을 인정한 건데 그러실 필요가 뭐 있냐고, 고정하시라고 하면서 그 분을 지하 2층으로 모시고 왔죠. 제 나름으로 기분이 너무 좋아 좀 들떠 있는 상태였던지 그 다음 일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아침부터 기분 괜챦더라고요.
저는 말 한마디만 툭 던지고서 저들 속 뒤집어 놓고 정작 험한 본선 싸움은 다른 분이 대신 해주시고요.
하루 종일 기분 좋았습니다.
어제 쓰다 만 글입니다. 인터넷에 올리려고 쓰다가 대선관련 웹사이트들을 몇 개 보고는
지금 이런 글을 올리는 게 무슨 소용 있을까하고 우울해져 그냥 접어 버렸습니다.
그날 저녁 서면에서 있는 재미있는 강연 들으러 가다가 맞은편에서 오는 제 친구 까마귀를 만났지요. 제가 좀 늦게 갔는데 강연 벌써 끝났다는 겁니다. 그 친구한테 이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그 아저씨도 한나라사람인데 나한테 똑똑하다고 밖에 대응을 못하느냐고 소리 지른 것 아니겠냐고 하더군요. 순간 그랬던 것이었을까 했지만 그랬으면 서머퍼덜하고 그렇게 험악하게 옥신각신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했죠. 그리고 그 아저씨하고 계단 내려오는 동안 저를 대하는 걸로 봐서는 그렇지 않았을 거라고요.
그날 낮 동안 계속 든 생각이 왜 그 귀한 동지를 그냥 보내버렸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동네에 사실 가능성이 큰데 말입니다. 정중하게 인사 나누고 연락처라도 주고받는 건데 말입니다. 그리고 전철 안에서 남들 다 듣도록 한나라당이 왜 나쁘고 이명박이 얼마나 저질인가를 주거니 받거니 일부러 남들 다 듣게 신나게 실컷 떠들어 대면서 가는 건데 말입니다. 제 이 글을 그 아저씨께서 어디선가 보신다면 고맙고 반가웠다는 말씀 늦게나마 전합니다. 혹여 그 아저씨가 제 친구 처음 한 말데로 한나라 백성이라캐도 상관없습니다. 그렇다면 제 이 글을 보고 한나라 백성 하나가 또 열 받을테니까요. 우해해해, 룰루랄라.
아, 그라고 까마귀하고 얘기하다 든 생각인데 기왕이면 서머퍼덜한테 이렇게 대꾸해주는 것이 더 좋았을 뻔 했습니다.
당신들도 이명박 싫어하는 사람들이 똑똑하다는 건 인정하시는 군요
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 아저씨는 도데체 왜 그렇게 열을 받았을까 그게 좀 의문이었는데 아마 그 분도 아침부터 그 퍼런 서머퍼덜 보고 열 받아서 혼자서 씩씩거리고 있던 차에 서머퍼덜이 싸가지 없는 소리를 하는 걸 듣고서 폭발한 것이 아니었을까요? 그랬을 거 같죠? 그죠? 그죠? 그죠?
어쨌거나 우리가 모르는 많은 생각 있는 국민들이 이명박에 분노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그러니 우리 너무 절망하지 맙시다. 설사 정권을 한나라에 빼앗긴다캐도 우리나라 망하는 거 아니거든요. 우리가 절망하여 모든 걸 포기하고 저 것들 하는 데로 내버려두게 되면 그러면 나라 망합니다. 10년 전처럼요. 이런 분들 잘 끌어 모아 힘을 기릅시다. 열린우리당의 실패를 교훈 삼아 길게 내다보고 밑바닥부터 튼실하게 튼실하게 터를 잡고 우리의 당을 만들어 나가면 됩니다.
이 글을 쓴 건 인터넷을 통해서 많은 분들이 읽으시게 하려는 것이 속셈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써 올린다고 몇 분이나 보시게 될까, 테도 나지 않는 글을 올려 괜히 쪽만 파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여 망설이고 주저하다보니 벌써 화요일 새벽이고 선거는 이제 바로 내일이 되고 말았네요. 저는 주민등록은 서울로 되어 있지만 집안 사정 때문에 고향인 부산의 부모님 댁에 몇 달째 머무르고 있는데 병의 후유증 탓일 수도 있겠지만 아차 깜박하는 순간에 부재자 투표 신고 시한을 놓쳐 버렸습니다. 그래서 투표하려면 서울까지 갔다와야하는데
이너무 회사는 투표하라고 출근 시간을 한 시간 늦추어 주는 게 고작이더군요. 그래서 내일 회사에 미리 결근계를 내고 투표 당일 날 결근하기로 했습니다. 마침 서울에 꼭 가야 할 일도 있고 해서요. 그런데 이거 부모님께서 아시면 안 되거든요. 저희 집 색깔이 좀 그렇습니다. 게다가 지금 저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집에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처지도 아니고 목소리 내 봤자 그게 제대로 먹히지도 않고 오히려 제 입지만 더 나빠질 사정인지라 투표하러 서울 간다는 사실을 어머니아버지께 비밀로 붙여야 합니다. 그래서 12월 19일 회사 간다하고 아침에 집을 나서서는 007 작전으로 서울 가서 선거구 찾아가 투표하고 다른 볼 일 한 가지 더 보고 다시 자정이 되기 전까지 부산에 돌아와야 합니다. 저는 KTX 공포증이 있어 이용하지 않기 때문에 무궁화 열차로 그 일을 해내려면 오늘 밤부터 생체 리듬을 조절해 놔야 하는데 잠자리에 누웠다가 다시 이불을 걷고 일어나서 이 웃기지도 않은 글을 마무리하는 이유는 이명박씨를 싫어하시는 분들에게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는 말씀을 드려야겠다는 생각, 오로지 그거 하나 때문입니다.
저는 앞에 말씀드린 모야모야병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자고 피로가 누적이 되면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다고 합디다. 제 주관적인 판단으로는 제 몸 상태는 그런 위험한 상태에 처하게 되는 일은 없을 거라고 믿고 있지만 직업적으로 책임을 져야하는 의사는 늘 저한테 경고, 아니 거의 협박을 합니다. 만에 하나 불상사가 생길 경우의 책임 때문에 그러는 거겠죠. 그러니 지금 저는 객관적으로 보면 제 목숨을 얼마간 걸고서 이 글을 끝내야겠다고 작정한 겁니다.
뜻밖으로 이번 선거에서 기권하겠다고 기권도 의사 표시다고 떳떳이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던데요, 이해는 저도 충분히 합니다. 그러나 그러다간 자칫 저 대한민국 대선 사상 최악의 후보에게 정말 과반 수 득표를 안겨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 제 목숨 걱정하고 있을 때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후보를 정할 수가 없다면 제 실명도 [이]로 시작하지만 이름은 [이]로 시작하고 기호는 2로 끝나는 두 사람만 뺀 나머지 열 명의 후보 중에서 동전 던져서 제일 가까이 간 후보라도 찍으십시오. 농담으로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가 정말 희대의 사기꾼에게 권좌는 넘겨줄지언정 그 천박한 사기꾼에게 언감생심 과반수 득표를 하게 하는 일이 있어서야 후손들에게 부끄럽고 세계 시민들에게 낯 뜨거운 그 치욕을 어찌 다 견디겠습니까? [마사지 걸] 발언을 떠올려 보세요. 다른 나라 정상들과 그런 말로 격의 없이 지내려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어떻게 안심할 수 있습니까?
또 하나, 저는 다른 분들은 별로 주목하지 않고 지나쳤을지 모르지만 2006년 2월 1일 인터넷 한겨레에서 본 노숙인들에게 한 발언을 주목합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rights/99198.html
[자수성가] 그것도 어쩌면 하나의 복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게되는 행불행은 개인의 노력여하가 전부가 아니라 개인이 도저히 컨트롤 할 수 없는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좌우되는 수도 많다는 겁니다. 더구나 그것이 사회의 구조적인 요인 때문일 경우도 있다는 걸 사회의 지도자는 늘 염두에 둬야지 소외된 이들을 위한 정책이 마련될 수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자기자신의 경우를 자랑스러워하고 그 걸로 용기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건 정말 교만하다고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기사에서 노숙인들에게 대하는 그 말투를 좀 보세요. 이 사람이 자신의 성공 경험으로 얼마나 교만해져 있나를 알수 있지 않습니까?
제가 토요일 아침에 만났던 그런 분 들이 우리 주위에는 아마 생각보다 많을 것입니다. 그 분들을 믿고 우리 기권하는 일은 제발 하지 맙시다. 간곡히 간곡히 정말 간곡히 이 하챦은 목숨 걸어가며 말씀드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