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글을 올립니다.
주제는 ‘정치자영업자와 생활정치인’에 대해서입니다.
< 3. 정치자영업자와 생활정치인 >
들어가며
이미 보셔 다들 아시겠지만 저를 소개함에 있어 지난 5년여의 정치판에서의 이력을 적었었습니다. 덜렁 이름만 적기가 결례라고 본지라 뭔가를 쓰긴 해야겠는데 마땅치 않아 정치인의 팬클럽이라 정치이력만을 적은 것입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시민광장이 비록 정치인의 팬클럽이지만 ‘정치’라는 말에 대한 부정적 분위기가 없지 않아 저의 이력상 정치색이 너무 강렬해 보임은 어쩔 수가 없이 참신성을 가장 큰 판단으로 보시는 회원께 거부감이 들것이고 가까이 하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치를 왜할까?
어떤 분이 저의 이력을 긍정적 의미로 ‘화려하다’라고 평을 하셨습니다. 저는 그 평가와 달리 하는데, 사실 화려함이 아닌 자랑스러움으로 이력이 보였어야 합니다.
그런데 불행이도 오늘날의 상황을 만들어낸 지난 과거가 자랑스럽기는커녕 지울 수 없는 낙인 같습니다.
‘왠 자랑스러움?’. 표현이 우습 습니다. 그런데 저는 정말로 저의 정당생활이 자랑스럽기를 기대했고 그리 되도록 저 나름대로의 노력을 하느라 분투했습니다. 정말로 정당개혁을 통한 새로운 정치를 구현하는 현장의 증인이고 싶었습니다.
실제적 정치 입문 동기
그러나 제 처음의 정치입문은 그런 거창한(?) 목적과는 달랐습니다.
개혁국민정당의 창당이 추진될 때 내건 슬로건중 하나가 ‘인터넷정당’이었습니다. 이미 제 생업에 관하여 밝힌바 있는 IT 한 분야인 인터넷을 이용한 정당정치는 그 가능성과 폭발력이 분명 있어 저의 전공과 부합되어 거기에 보탬이 되고자 동참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그저 장미빛 청사진 일 뿐 대선을 불과 3개월 여 밖에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당장 급한 것은 지역조직 구축이었는데 제가 그만 지역모임에 참여했다가 졸지에 책임을 떠맡게 된 것이 이 지경까지 오게 된 동기입니다.
당시 그저 엔지니어로서 기술적 도움을 주고자 한 것이 전혀 지역에서 어떤 정치적 연결고리를 갖고 있지 못한 평범한 소시민에게 이런 큰 부담이 주어져 정말 난감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어쨌건 자발적으로 가입한, 저와 같은 평범한 지역의 당원들을 어쩔 수 없이 한 분 한 분 씩 연락을 해서 만나고 그분들과 같이 개혁당의 한 지역 건설을 어렵게 해 나갔던 것이 첫 번째의 활동이었습니다.

- 조선일보 그 악의 축
어쨌건 아무도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느라 지방출장 중에는 저녁에 왔다가 새벽에 내려가는 등의 악전고투가 생각납니다.
2002년의 대선이 끝난 직후, 모두들 아직도 흥분의 와중에 있던 12월 26일 저는 제가 활동 중인 한 네티즌 단체 모임에서 ‘정말로 전쟁은 이제부터이며 불행이도 노무현 당선자는 취임 1년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다‘라는 주제의 발언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노무현정권을 위해할 가장 큰 세력(말하자면 악의축)은 조선일보 임과 그 불행한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당장 조선일보와의 본격적 전쟁을 벌여나가야만 한다는 것을 발언하며 그들과 같이 조선일보 광고불매운동을 2002년 12월 31일부터 전개해 나갔습니다.
저들과의 전쟁에서 괜한 시비를 차단하고자 어차피 한시적으로 맡을 계획이었던 개혁당의 지역위원장직을 사퇴하고 당원신분만 유지한 체 제가 활동하는 그 단체와 같이 이 운동을 전개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계란으로 바위치기의 무모함은 일개 소시민이자 생활인으로서 감내하기 어려운 여러 위협에 의해 중단할 수 밖에 없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 열린우리당에서의 첫 시련
개혁당이 해산을 하면서 계속 정당에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잠시 하긴 했으나 참여정부의 어려움에 보태고자 다시 흩어지는 동지들을 추슬러가며 열린우리당으로 유시민의원을 필두로 같이 왔습니다.
그러나 개혁당과 다른, 이미 지역에서 오랫동안 뿌리 내려온 구정치세력과의 합당은 정말로 견디기 어려운 시련의 연속이었습니다. 성향이 전혀 다른 그들과의 동거는 끝내 중앙당의 문제들로 인해 더욱 어려워집니다.
대통령의 탄핵 덕에 지갑 주은 국회의원들이 초장부터 정체성을 뒤흔드는 작태가 시작되었는바, 박창달 사건이 터지고 이어 당헌당규 개악시도, 보안법 폐지 무산 등 굵직한 문제들이 연달아 발생하였던 것입니다.
이에 무력한 일개 당원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맨 몸으로 이들에게 저항 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생각되어 당원들을 규합하여 이들과 같이 농성 등의 저항을 하게 되었고 이때 부득이 앞장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앞장섬으로서 부작용도 있던바 제가 개혁당 출신임을 가지고 당 측에서는 이런 당원들의 분노와 저항을 개혁당 세력의 반발로 몰아갔었지요. 사실 그런 부분이 염려되어 저를 빼놓고 전면에 나서려는 분들 중에 개혁당 출신은 가급적 뒷전으로 물러났는데도 그렇게 몰아 갔던 것입니다.
- ‘화려한 이력’의 속내
당원들의 이런 투쟁에 있어 저의 입장으로 원하건 원치 않건 늘 앞장 서다보니 어느덧 저에게는 ‘저 X만 없으면 당원들이 조용할 것’과 ‘제거되어야 할 당원’이란 굴레가 씌어졌습니다.
그때 지역에서 어떤 이의 권유로, 발언권의 확보 그리고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는 당원’이란 굴레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일정직의 당직을 맡는 것이 좋겠다하여 서울시당의 상무위원 경선에 나서게 되어 무경선으로 당선이 되었는데 이 조차도 아무런 근거와 공식적 사유 없이 중앙당과 서울시당에서 인가를 한동안 해 주지 않았었습니다.
어쨌건 최종 인가가 나고 당의 주요 결정에 참여하면서 특히 서울시당의 경우 저는 늘 요시찰 인물이었지요. 각종 의제에 대해 불합리하다 싶은 것들에 대해 늘 짚고 넘어가야 했으며(역시 제가 총대를 매고) 이의 조정을 요구하곤 했지요.
그러니 찍힐 대로 찍힌 당원인바라 한편으로 당의 주요행사에 당원들과 나서서 궂은일을 해 나가면서 당원들이 결코 저들의 인식처럼 ‘입으로만 사는’ 것이 아님을 ‘뼈빠지게’ 증명해야 했습니다.
사태를 제대로 보기
제가 당원들의 투쟁에서 앞장서면서 가장 조심했던 것은 바로 개혁당 출신이라는 굴레였습니다. 저의 일거수 일투족은 개혁당=유시민의 공식에 의해 유시민의원을 비롯한 개혁당 출신의 의원들에게 중앙당의 의도적이건 필연적이건 어려움이 가중되었던 것입니다.
그래 제 딴에는 이를 최소화 하기 위해 가능한 유시민의원 등과의 마주침 그리고 개혁당 출신 당원들과의 활동조차 일정부분 피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굴레는 벗어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지금의 시민광장에서의 시비에도 일정부분 이런 연장선상이 있습니다. 어디 출신이라는 것 그리고 거기서 어떤 역할을 했기 때문에 어떻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쉽게 정치적으로 성공하려면 유시민의원을 멀리해야 하는 것이 소위 세간의 가슴아픈 우스개 소리입니다.
개혁당 출신이라는 것은 이 쓰레기 정치집단에서는 천형입니다. 유시민의원과 가깝다는 것은 곧 경원 나아가 제거대상일 뿐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민광장을 통해 정치적으로 어떤 득을 탐하는 것 아니냐는 일부의 말씀은 섭섭함을 떠나 정말로 사태를 모르시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엽시다. 우리 모두 편가름의 상처를 만들지 맙시다.
개혁당 출신, 참정연 출신 하면서 여기서 편가름 하는 것은 정말로 옳지 않습니다. 새벽편지님도 저와 같이 개혁당의 지역위원장을 맡으셨고 별천사님도 더한 중요한 일을 하셨습니다. 그분들 또한 참정연에서도 중요한 분들이었구요.
맺음말 : 게시판에서의 소통
제가 시민광장에 글을 많이 쓰지 않은 것 또한 지금 일종의 흠이 됩니다. 게시판에 얼마나 많은 글을 올렸는가가 대표선거의 중요한 선택의 척도를 넘어 옳고 그름, 선악의 판결문처럼 비춰지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게시판에서 부단히 좋은 글을 올림은 무척이나 커뮤니티에서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렇기에 모두가 노력을 하면 좋겠고 그럴수록 커뮤니티는 발전해 나갈 것입니다.
그런데 간과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의 경우 특출한 능력이 있어 글을 잘 쓰는가 하면 글쓰기에 대해서는 자신 없어 눈팅으로 일관하는 분도 많다는 것을 먼저 거론합니다.
6000명의 회원, 1200명의 유권자 중에 게시판에 글을 쓰는 사람은 얼마나 되겠습니까? 평상시 몇 십에 고작이요 단 한번이라도 자신의 필명으로 쓴 이도 절반이 안 될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렇기에 글을 썼는가 안 썼는가는 누가 더 소통 노력을 했는가에 중요 평점항목은 되어도 그것이 결격사유는 분명 아니라봅니다.
저의 경우 글을 자주 쓰지 않은 저만의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제 쪽에 일종의 반감을 가지신 회원들 중에 일부가 말씀하시듯 일종의 구세력(?)으로 치부되고 있는 참정연 출신 회원들로 부터의 인지도가 분명 있습니다.
서프에서 저의 이름을 기억하는 회원들도 계시구요. 이것이 제가 시민광장에서의 글쓰기를 주저하는 원인중 하나입니다. 집행부에 있으시며 열심인 분들 중 글 잘 쓰시는 분들도 있으신데 그들은 제가 알기로 참정연 등의 출신이 아닌 분들이며 이 분들이 앞장서서 열심히 활동하는데 있어 저 같은 경우 눈팅이 오히려 도움이 되겠다는 판단이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힘 실어주기의 저 나름대로의 판단에 따른 행위입니다.
둘째로는 제가 할 수 있는 역할 중에는 시민광장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것 말고, 제가 다른 단체의 회원으로 있으면서 그들이 가능한 시민광장 나아가 유시민의원으로부터 멀어지거나 경우에 따라 사소한 시비로 적대화 되는 것을 막고 같이 협력하고 연대하는 틀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시민광장에서 저의 흔적을 남기는 것을 가급적 억제하였던 것입니다.
이는 마치 참정연에 제가 몸 담고 있었을 때 집행부 구성에 동참해 달라는 요청을 고사했던 이유인, 참정연 집행부로서는 역할이 어려운, 비참정연 개혁적 당원들과의 일정한 끈을 유지하여 반참정연으로의 변화를 막음과 아울러 친참정연으로의 유도 노력과 같은 것입니다.
어쨌든, 어떤 이유이건 복잡한 사연이나 계산을 떠나 게시판에서의 글쓰기를 통한 소통노력을 누가 많이 했는가는 분명 중요한 선택사항임은 저도 절대 공감합니다.
아울러 현명하신 회원들께서는 그런 점에서도 선택의 한 요소로 잘 알고 계실 것인바 글쓰기가 부족했다는 것이 선택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지 마치 절대선악의 판단처럼 말씀하신다면 옳지 않다 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