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1년 아랑이가 다섯 살, 산골 살 때 썼던 글입니다.
대문에 걸린 윤이 사진 보고서 아랑이 키우며 즐거웠던 시절을 찾아가 보니 다행히 그 때
써 놓은 글 하나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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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이와 목욕탕에서
나는 남자다. 그런데 곧잘 여자 화장실에 간다.
물론 나 혼자 가면 큰일 나겠지만 집사람 휠체어를 밀고 가니 별로 뭐라는 사람이
없다. 혼자서는 변기에 앉을 수도 없고 옷을내릴 수도 없으니 내가 따라 가야 한다.
반면 우리 아랑이는 여자다. 그런데 곧잘 남자 화장실에 간다.
나하고 둘이, 집밖에 나와 있을 때다. 아직 다섯 살. 혼자서 변기에 앉고 옷을
내리는 게 서툴러서 그렇다.
아랑이는 11월부터 다음해 4월 까지는 남자 목욕탕에 간다. 제 엄마가 씻겨 줄 수
없으니 내가 가는 남탕에 간다. 그 때 말고는 집에서 물 받아서 목욕통에 넣어서
씻겨 주는데 추운 겨울에는 어쩔 수 없이 남탕에 간다.
대게는 남자 아이들이 여탕에 가는 경우는 많은데 남탕에 여자 아이가 오는
경우는 드물다. 아랑이와 둘이서 목욕탕에 한 30번은 가본 듯 한 데 다른 여자
아이가 오는 것은 한번도 보지 못했다. 내가 혼자서 목욕탕에 간다면 다른 남자들
처럼 40분 정도면 사우나에서 땀까지 빼고도 충분하다. 그런데 이 녀석과 같이
가서는 기본이1시간 30분이다. 그렇다고 아랑이 떼를 박박 문질러 주는가 하면
그 도 아니다.
목욕하는 순서는 이렇다. 우선 사람들이 많이 쓰는 온탕,냉탕 말고 작은 탕 (대개
열탕이라고 이름 붙여져 있다.) 여기 온도를 미지근탕 될 만큼 낮춘다. 다행히
우리가 가는 목욕탕은 열탕에 물을 절반쯤만 받아놓아서 물을 따로 빼는 낭비를
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아랑이가 미지근탕에서 혼자 놀게 둔다. 그러면 잘논다.
처음에는 내가 같이 들어가서 강강술래도 해주었으나 요즘은 내가 들어가려고
하면 '아빠는 저기 들어가'하며 온탕으로 가라고 한다. 그러면 대충 샤워하고 온탕
들어갔다가 마른 사우나,젖은 사우나 골고루 들어갔다가 거품수건에 비누를
묻혀서 몸을 문지르고 면도를 한다. 물론 중간 중간 아랑이가 잘 노는지 확인한다.
사우나에서 나와서 목욕탕 바닥에 몇 분 누워 있는 때가 있다. 약간 어지럼증을
동반한 기막히게 단 쪽잠이 들 무렵 어김없이 봉변을 당한다. 아랑이가 대야에
찬물이나 혹은 뜨거운 물을 가득 담아 와서는 내 몸에 붓는 것이다. 어떤 날은
저도 잠이 오는지 누운 내게 팔배게를 해달라며 내 몸을 더듬는 것이었다.
집에서는 늘 팔배게을 해주지만 부녀간에 발가벗고 팔배게를 하기가 민망해서
그만 두자고 한다. 이렇게 내 목욕에 쓰는 시간은 40분이면 끝난다. 그 다음 30분은
아랑이 목욕시키는 시간이다. 목욕이라고 해봤자 간단한 샤워 정도로 몸에
비누칠하고 머리 한번 감기는 것이다.
그런데 아랑이는 물에서 노는 것은 좋아해도 비누칠 하는 것, 특히 머리에는
물 한방울만 묻혀도 야단이다. 그래서 목욕탕을 이리저리 도망다닌다.
온탕을 크게 돈다. 마음 같아서는 회초리를 들어야 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목욕하는 데 와서 까지 그러기가 뭐하다. 이 녀석은 샴푸칠하는 것보다 그걸
행구기가 더 힘들다. 몸을 요동치고 아주 힘이 든다.
결국 웃으면서 들어간 목욕탕을 울면서 나온다. 수건으로 몸을 닦기는 잘하는데
머리 털고 말리는 것을 못한다. 그래서 도와줄라면 자기 혼자 한다고 난리를 친다.
그리고 탈의실에 있는 각종 운동기구들을 한번 씩은 죄다 타보고 나서야 옷을 입는다.
이 게 또 30분걸린다.
지지난 주엔가는 아랑이와 탕에서 나와 탈의실에 가는데 막 들어가려던 제 또래
사내 녀석이 있었다. 그 녀석이 아랑이가 마음에 들었던지 보자 마자 "에이 씨"를 한다.
나는 그 녀석이 아랑이에게 관심이 있다는 소리로 들었다. 이 녀석은 자기 아빠가
탕에 들어갔는데도 발가벗은 채 혼자 나와서 또 "에이 씨"를 한다. 결국 아랑이도
싫지 않은 듯 뿌리치다가 달아나고 이 녀석은 쫓아가고 숨바꼭질을 했다. 아랑이도
아직 발가 벗고 있을 때였다. 나 먼저 옷을 입고 아랑이에게 " 아랑아. 재는
에이씨 밖에 말을 못하는 앤가보다. 이제 그만 놀아라." 그러니 아랑이 하는 말
"아빠. 나 쟤하고요. 안아주고 놀았어요." 도대체 거의 눈을 떼지 않고 보면서
옷을 입는 다고 했는데 언제 그런일이 일어났는지. 아이들 눈으로야 친하고 좋으면
안을 수 있다지만 어른들 색안경으로 보면 남자애와 여자애가 발가벗고 껴안았으니
이거 참.
나는 곧잘 아랑이와 뽀뽀를 한다. 그런데 단 한번도 입으로는 한적이 없고 볼에만
한다. 내가 먼저 아랑이 양볼에 뽀뽀를 하면 아랑이도 내게 그렇게 하고 아랑이
뽀뽀가 끝나면 둘이 서로 '푸'하고 크게 입바람을 분다. 아랑이가 먼저 할 때도
있지만 이렇게 정해져 있다. 그 게 재미있어서 한번 뽀뽀를 하면 두 세 번은 해야
한다. 절대로 누구와도 뽀뽀는 입으로 하면 안 된다고 가르쳤다. 그러면 입에 있는
벌레가 옮겨와서 아야 한다고. 그렇게 기르는 딸아이가 처음 보는 남자애하고
발가벗고 껴안다니 ...
딸아이 기르는 아버지 심정이 이런 줄을 아직은 모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