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돌베개 / 지은이:유시민
[선진통상국가, 박정희 대통령의 유산]
성공한 대한민국의 과거를 잠깐 짚어보겠습니다. 미래에 거두어야 할 성공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해서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대한민국은 성공한 나라임에 분명합니다. 대한민국의 성공스토리는 산업화에서 시작해 민주화로 이어짐으로써 일단 한 단계를 완성했다고 봅니다.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이 산업화와 민주화를 연이어 함께
성공시킨 비결은 무엇일까요? 매우 크고 중요한 논쟁거리를 내포한 질문입니다.
옛날부터 치열했던 교육열, 근면한 국민성을 꼽는 사람이 많습니다. 국민이 듣기에 아주 좋은 말이고, 논리적으로 옳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어딘가 좀 부족합니다. 어째서 하필이면 1970년대에 들어선 후에야 경제적 성공을 이루었는지를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더러는 냉전시대에 미국의 지원을, 심지어는 일제강점기에 산업화의 축복을 받아서 그렇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그런 면이 아예 하나도 없기야 하겠습니까. 그러나 남의 나라 식민지가 되어 처음 산업화를 경험했고, 또 냉전시대에 미국의 경제적.군사적 지원을 받은 나라가 한둘이 아닌데. 그 나라들이 다 성공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 국민 스스로 이룬 성공을 너무 우습게 보는 시각이
아닌가 싶습니다.
치열한 경쟁문화 또는 '빨리빨리' 를 좋아하는 국민성을 이유로 드는 분들도 있습니다. 일리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 민족이 도대체 언제부터 그랬냐는 지적에는 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 '코리안 타임' 이라는 빈정거림을 들은 게 불과 50년 전이거든요. 많은 국민들이 제일 공감하는 견해는 아마도 '박정희 대통령의 위대한 지도력' 덕분이라는 주장일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성공한 독재자
이것은 뜨거운 논쟁을 일으켰고, 지금도 일으키는 주장입니다. 제 생각을 말씀드리면, 저는 유신체제는 '경쟁력 있는 개발독재'였고, 박정희 대통령은 '성공한 독재자' 였다고 생각합니다. 독재자라도 성공한 건 성공한 것이고, 성공했다고 해서 독재자라는 사실이 변하는 건 또 아닙니다. 그는 수출 100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를 국가 목표이자 종교적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1인당 국민소득 성장률로 표현되는 경제 번영과 북한을 상대로 한 체제 경쟁 승리를 위해,
그는 건국 시기부터 우리 헌법이 담고 있었던 다른 소중한 가치들을 가차 없이 짓밟았습니다.
자유, 인권, 평등, 정의를 국가 안보와 경제성장이라는 가치의 발밑에 무릎 끓린 것이죠. 그야말로 교과서에 씌어 있는 그대로의 개발독재였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독재자로 성공했지만, 결국 자신이 이룬 성공에 희생되었습니다.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수출 100억 달러와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라는 꿈을, 그는 죽기 직전에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국민에게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산업화에 성공함으로써 만들어진 새로운 대한민국이 유신체제와 같은 개발독재와 철권통치를 더는
고분고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는 형편이 나아지자 국민들은 자유와 사회정의, 인권에 대해 자각하기 시작했고, 이 자각이 열망으로 번지면서 민주주의로 가는 거대한 흐름을 형성한 것이지요. 기억하시겠지만 10.26 사건의 발단은 외자기업인 YH무역 여성노동자들의 야당 당사 점거농성 사건이었습니다. 경찰은 야당 당사 벽을 쳐부수고 여성노동자들을 끌어냈습니다. 김경숙이라는 여성노동자를 추락해 숨지게 했고,
야당 지도부 국회의원들을 떡이 되게 두들겨 팼습니다. 유신정권은 신민당 김영삼 총재의 의원직을 박탈하는 등 야당을 노골적으로 탄압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부산.마산 일원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죠. 정부는 군 병력을 투입해 시위를 진압했습니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궁정동 안가 술자리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사살한 10.26 사건은 이런 일련의 사태가 유발한 예상치 못한 사건이었습니다. 그 당시 대학생이었던 저는, 박정희 대통령이 죽을 때까지 대통령을 하는 줄 알았습니다. 박정희 체제는 1980년 5월 광주의 대학살을 거쳐 전두환 정권 7년 동안 잔명을 유지하다가,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무려 27년 만에 그 막을 내렸습니다. 정치인 박정희의 삶은 군사 쿠데타라는 모험에서 시작해 암살의 비극으로 종결되었습니다. 그는 중요한 또는 중요하지 않은 선택을 수없이 많이 했습니다. 잘한 선택도 있었고 잘못한 선택도 있었죠. 그가 한 선택 가운데 가장 오래 살아남았고, 대한민국의 진로에 여전히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것이 있습니다. 이 선택의 효력은 대한민국이 존속하는 한 영원히 그 수명을 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도대체 무엇일까요? 일본 육사 지원과 남로당 가담, 전향, 5.16 쿠데타, 3선 개헌과 유신 쿠데타 등 그가 했던 수많은 선택 가운데 가장 오래 살아남았고 그만큼 큰 의미를 지닌 것은, 수출주도형 불균형성장전략을 경제발전전략으로 선택한 것입니다. 이 선택과 더불어 대한민국은 개방경제로 가는, 통상국가로 가는 운명을 부여받았습니다. 다른 길은 다 봉쇄되었습니다.
1970년대가 잉태한 한미FTA
노무현 대통령은 2002년 대통령 선거 당시의 지지층과 옛 참모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전격 추진했습니다. 엄청난 반대 운동과 여론의 역풍을 뚫고 협정을 타결했습니다. 그런데 큰 정치적 위험을 동반했던 이 선택이, 사실은 40여 년 전 박정희 대통령이 했던 바로 그 선택의 연장선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저는 평가합니다. 세계관과 정치철학, 대통령으로서 직면한 시대적 과제가 크게 다른 노무현 대통령의 선택이 사실은 박정희 대통령의 선택에 의해 필연적으로 예정되어 있었다는 저의 주장이 엉뚱해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리 놀랄 만한 주장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은 이 길에서 성공할 수도 있지만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 말고 성공으로 가는 다른 길은 없다고 저는 판단합니다.
집권당 국회의원으로서 괴로운 때가 참 많았습니다. 2004년 4월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한 후 몇 달이 지나면서, 저는 정말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른바 세계화와 양극화 문제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구촌은 세계화라는 치열한 국제 경쟁에 휩쓸렸습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양극화라는 사회적 해체 과정이 진행 중입니다. 물론 세계화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지요. 160년 전에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명료하게 묘사하고 예견한 현상입니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묘사했던 것보다 훨씬 더 넓고 깊고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좋든 싫든 상관없습니다. 이 흐름은 21세기의 문명과 세계인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을 것입니다. 대한민국도 피할 수 없습니다. 양극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은 원래부터 사회적 연대의식이나 제도가 튼튼하지 않은 나라이기 때문에 그 충격은 더 아프게 우리의 삶을 파고듭니다. 일시적 시련에 처한 국민이 크게 늘어났고, 단기간에 그 덫을 빠져나오지 못하면 오래도록 어두운 빈곤의 터널에 갇히게 됩니다.
저 자신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첫째, "이 두 흐름이 어떻게 연관되어 있으며, 이 둘 모두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둘째, "만약 누군가가 적절한 처방을 발견해 하나의 정책조합 또는 발전전략의 형태로 제시할 경우,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 국민이 이것을 새로운 국가 발전전략으로 채택하게 만들 것인가?" 답을 찾지 못하고 지내는 동안 하루 하루가 무척 힘들었습니다.
우선 중요한 과제는 첫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이었죠. 만약 우리가 올바른 해법을 가지고 있기만 하다면, 국민들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아 다음 선거에서 진다고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국민이 언제나는 우리가 올바른 처방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것이고, 그때 다시 국정을 맡으면 되니까요. 그런데 만약 우리가 틀렸다면, 그렇다면 정권을 잃는 것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틀렸다면 우리가 지는 것이 국민에게 좋은 일이니까요. 정말 두려운 것은 선거에 패배하는 게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열어 갈 방법을 찾지 못하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세계화와 양극화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나아가 대한민국을 더발전시키고 국민을 더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정책조합 또는 국가발전전략을 찾았다고 믿습니다. 보건복지부 장관을 하는 동안, 대통령이나 국무총리, 부총리가 주재하는 여러 정책 관련 회의에 참석해 청와대와 여러 행정 부처가 직면한 문제와 해법을 토론하는 과정에서, 저는 우리가 이미 해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가까운 곳에 해법을 두고 엉뚱한 곳에서 답을 찾느라 시간을 보낸 것이 조금은 분하기도 했습니다. 낡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던 탓에 가까이 두고도 보지 못했던 답은 이렇습니다. "대한민국은 밖으로는 세계화 시대의 선진통상국가로 나간다. 선진통상국가로 성공하기 위해 안으로는 사회투자국가를 건설한다."
한미FTA와 박현채 선생
저는 1년 3개월 12일 동안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일했습니다. 장관으로 지명되어 청문회를 치른 기간을 포함하면 38일이 늘어납니다. 청문회를 코앞에 두고 전격적인 한미FTA 협상 개시 선언이 나왔고, 협상 타결 선언이 나오고 20일이 지나 사임했으니, 임기 내내 한미FTA 문제와 씨름한 셈입니다. 과천에 있는 동안 보건복지부 업무와 관련해 가장 격렬한 사회적 대립을 부른 것도 한미 FTA 문제였습니다. 의약품과 의료기기 분야 협상 과정과 결과에 대해서는 따로 말씀드리고, 여기서는 이 분야 협상을 장관인 제가 협상 실무를 맡았던 젊은 공무원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면서 직접 지휘하고 결정했으며, 그 결과도 만족스러웠다는 것만 말씀드립니다.
잘된 것은 협상을 맡았던 공무원들의 유능한 덕분이며, 만약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협상을 직접 지휘했던 장관의 책임입니다. 한미 FTA 협상 관련 논쟁의 와중에서, 저는 찬성파와 반대파의 다양한 견해를 떠받치는 국가발전전략이 어떤 것인지를 눈여겨 살펴보았습니다. 평소 참여정부를 가장 맹렬하게 비판했던 정치세력과 언론사와 지식인들이 '구국의 결단' 이라는 진부한 표현까지 동원해 대통령을 칭찬했고, 반면 참여정부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이었던 정치세력과 지식인과 언론사들이 대통령을 매국노에 견주면서까지 비난한 이 괴상한 사태를 도대체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보통의 경우라면 상반되는 두 주장 가운데 하나는 틀렸다고 보아야 하겠죠. 그러나 이 경우에는 그렇게 볼 수가 없겠습니다. 둘 다 틀리거나 둘 다 옳을 수도 있기 때문이죠. 저는 한미FTA 협상에
대한 두 진영의 주장이 둘 다 부분적으로 오류인 동시에 부분적으로는 옳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우선 이른바 진보진영의 반대론입니다.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 대표들은 개방에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사실은 무조건 반대했다고 해야 맞습니다. 그들은 한미FTA뿐만 아니라 그전에 했던 한-칠레 FTA도 역시 반대했습니다. 유럽연합EU과의 FTA도 반대합니다.
중국이나 일본과의 FTA도, 하지 않고 있어서 그렇지 일단 추진하면 또 반대할 것입니다. 단순히 축산 농가를 비롯한 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한국사회가 글로벌 스텐더드라는 이름 아래 미국이 강제하는 제도적 규범에 포획당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이런 위험이 실제로 얼마나 큰지를 따지는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해 국민들에게 그 폐해를 홍보함으로써 대한민국이 미국식 모델을 따라가는 사태를 막으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에는 오래된 연원이 있습니다. 그들은 박정희식 국가 발전전략을 거부하면서 나름의 대안을 제시했던 박현채 선생의 제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