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전개에 앞서 전제할 것이 있다. 나는 누군가 만들어낸 '정치자영업자'라는 표현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이 단어는 사실을 잘 반영한 말이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라는 게 상품내놓고 좌판 벌이는 자영업자와 다를 바 없는데 마치 정치인은 대단한 존재인양 여기는 것은 그릇된 개념인 것이다. '정치가'라고 불러야 마땅하다는 전통적 사고방식이 역설적으로 만든 사회적 언어가 '정치자영업자'란 표현인데 이를 부정적으로 볼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용어를 사실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사용하고자 한다.
유시민의원. 그가 어제 한 모임에서 '나를 지지하는 분들이 문국현캠프에 안갔으면 한다'는 요지의 발언을 해 논란이 되고 있다. 그래서 적지 않은 그의 지지자들이 혼란에 빠진 듯하다. 유 의원이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는 정동영 후보를 지지해야 한다는 이율배반에 빠졌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유시민 위원을 아끼는 모든 이들을 위해 유 의원은 말을 아낄 필요가 있다고 본다. 애석하지만 그가 지금 발언해야 할 정치적 밑천이 별로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유 의원의 정치적 자산은 사실 거의 없다. 그가 제기한 진성당원제는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홀로 외로이 나부끼던 그 깃발마저도 사라졌다. 문제는 그가 진성당원제라는 그 깃발이 사라지는 과정에서 '앗'소리 한번 제대로 내지도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놈의 정치공학 때문이다.
사실 유시민 의원의 진성당원제는 그 자체가 지고지순한 제도는 아니다. 수백 년에 걸친 유럽민주주의가 만든 금자탑이긴 하지만 우리 현실에 적용해 정착시키기에는 매우 어려운 제도다. 더구나 진성당원제만이 현대민주주의의 금과옥조는 아니다. 오히려 미국의 개방형 오픈프라이머리도 하나의 추세랄 수 있고, 해방후 거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은 미국의 정치제도라는 점도 현실정합성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그의 진성당원제를 지지했던 것은 동원당원문화의 폐해가 너무도 크기에 정치개혁 차원에서 나를 비롯해 뜻있는 많은 국민이 지지한 것이고 그만큼 유 의원의 정치적 밑천은 커갔던 것이다.
그런데 이 자산을 하나 하나 꽂감꺼내듯 까먹은 게 다름아닌 유 의원이다. 당내에서 진성당원제를 허무는 시도에 대해 처음에는 저항하는 듯 하다가 얼마 못가 저항을 포기해버렸다. 급기야는 진성당원제를 허무는 세력에 정치적 투항도 해버렸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이해찬 전 총리와의 전근대적 선후배관계가 깊이 작동했다. 정치부문에서 전근대를 극복하자던 개혁정치인이 고작 선배의 울타리를 넘지 못하는 무기력을 보여주었다. 그런 그가 한때 이해찬 전 총리가 정치적 스승으로 모시던 김대중의 지역주의를 매섭게 난타했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문제는 애석하게도 유 의원의 진정성을 믿을 만한 근거가 이번 발언을 통해 완전히 사라졌다는 점이다. 문국현은 그냥 성공한 기업인이 아니다. 유 의원이 대선출마를 선언하면서 내세웠던 국가모델 중 사회투자국가론을 현실에서 가장 잘 실천했던 인물이 문국현이다. 사회투자국가론은 자신이 공약했던 여러개의 공약 중의 하나가 아니다. 바로 유시민 본인이 지향하고자 했던 철학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철학을 가진 문국현을, 단지 유 의원 자신이 경선에 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지하지 말라는 것은 유 의원을 따르던 지지자들에게 '나의 정책노선을 보지말고 나 유시민을 믿으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사이비교주와 같은 발언이다. 과학과 경제와 철학을 공부한 사회과학도의 발언이라 보기 어려운 패덕적 발언이다.
정치행위는 총체적 책임을 지는 행위다. 그래서 종합예술이라고도 한다. 유 의원이 제기한 진성당원제가 실패했으면 그 정치적 자산도 대중이 거둬들이는 게 마땅한 이치다. 그럼에도 정치적 발언권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치적 궁물의식'때문이라는 점을 스스로 성찰할 필요가 있다.
정치는 잔인하다. 자신의 시대가 끝났으면 조용히 접을 줄도 알아야 한다. 나는 유 의원이 정동영 후보를 위해 뛰는 것을 아름다운 행위로 치장하는 허위의식에서 우리 모두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적 패자가 할 말이 없어야 하지만 형식논리에 매몰되어 자신의 가치와 반대되는 이를 지지하는, 더욱 우스꽝스러운 짓도 하지 말아야 한다.
전장에서 진 장수가 패배를 했다면 스스로 은퇴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훗날을 기약하자면 당분간 조용히 정치적 은둔을 택하는 것도 나쁜 일이 아니다. 승자를 위해 적극 도와야 한다는 인위적이고 허위의식에 사로잡힌 형식논리에 갇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는 정동영 후보를 위해 자신의 가치와 신념을 배반하는 것은 그의 지지자들이 봐주기 애처로운 모습이다.
정치자영업자는 자신의 밑천을 가지고 장사해야 한다. 남의 밑천으로 자기장사를 해서는 사기꾼이 될수 있다. 개인적으로 유시민 위원의 논리력에서 많이 배우고 있는 사람으로서 더이상 그의 추태를 보지 않았으면 한다.
김석수의 '자유자재' http://blog.daum.net/kss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