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 정경대학 학장을 지낸 분의 말씀이다. 어디 가서 ‘민족 고대’ 운운 하지도 마라. 민족 고대는 무슨 놈의 얼어 죽을 민족 고대.
우리 조영남상은 또 스스로 친일파라고 커밍아웃했다. 그런 거 같았다. 별로 놀랍지 않았다.
행복한 모습을 보여줄 테니 한 번 감상하라. 민족의 축복이었다. 애국지사들이 출감한 직후에 찍은 사진이다.
영남아! 행복해 보이냐? 친일파 재밌냐? 사진 한 장 더 봐라. 이게 바로 벽관이라는 거다. 사람을 좁은 공간에 집어넣는 거다. 2~3일이 지나면 무릎과 피부가 망가진다고 하니 굶주림과 고문에 시달리던 애국지사들에겐 더한 고통이 되었을 것이다. 전신이 마비되고 만다. 친일파들아, 재밌어 보이지? 민족의 행복이지?
그 뿐인가? 지금까지 밝혀진 고문의 종류만 300여 가지다. 기본적으로 일본놈들은 조선사람 따귀를 때리기 좋아했다. ‘조선놈들과 명태는 두들겨 패야 한다’는 것이 당시 일본인의 상식이다. 그래서 학교선생들도 툭하면 학생들 따귀를 갈겼던 것이다. 우리가 학교다닐 때 선생들한테 따귀를 많이 맞았던 것은 그 잔재이고.
친일파들아, 따귀맞고도 헤벌레 웃는 건 뭐지? 그거 피학증, 마조히즘이라고 하는거다. 사진 한 장 더 보자. 우리 애국지사를 고문실로 끌고가는 모습이다.
그럼 도대체 그놈들은 어떤 악질적인 고문을 가했는가?
대나무 못을 손톱과 발톱 사이에 박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우리 조그만 가시가 손톱 밑에 박혀도 무지 아프다. 손톱과 발톱 사이에 대나무 못이 박힌다면 그 고통이 어떠할까?
한 겨울에 옷을 벗기고 수도관에 몸을 묶는다. 그리고는 물을 틀어놓는다. 그러면 사람이 어떻게 될까? 얼음기둥이 되어 가는 거다.
온 몸에 기름을 바르고 인두로 지지는 것은 아주 예사로 하던 짓이다. 온 몸을 바늘로 사정없이 쿡쿡 찌르기도 했다.
거꾸로 매달아 놓고 코에 물을 들이붓는 것도 이들이 쓰던 단골 고문 메뉴다.
입에 석탄가루를 쑤셔넣기도 했다. 사형집행을 가장해서 공포탄을 쏘기도 했다. 정말 끔찍하지 않은가?
우리 조영남이 교회에서 신학을 정식으로 공부했다니 주기철 목사님의 이름을 들어 봤을 것이다. 주기철 목사에게 일본 승냥이 새끼들이 고문을 가하는 현장을 우연히 그 아들이 목격했다.
그 아들 주광조씨가 그 충격 때문에 실어증에 걸렸다. 얼마나 잔혹했으면 그 정도의 충격을 받았을까? 조영남과 고려대 정경대학장을 지낸 분은 생각해 보지도 않았을 거다. 화투 그림 그리는 자칭 화가시니 그림을 더 감상하는 게 낫겠다.
발바닥 피부를 싹 벗기고 소금을 뿌리는 짓도 했다. 부녀자는 반드시 나체로 신문했다. 그 과정에서 온갖 성폭력을 하는 건 말할 것도 없다.
또 독립운동가 두 명을 세워놓고 얼굴 반면에는 배신자라고 먹칠을 하고, 서로 뺨을 때리게 시킨다. 만일 약하게 때릴 때에는 무지막지한 고문을 가하고 다시 서로 뺨을 때리고, 서로 얼굴에 침을 뱉고, 서로 욕하게 하였다.
또 독립운동가 이자경 여사가 당했던 고문을 생각해 보자. 이자경 여사는 주리틀기 고문을 당했다. 이것은 신문장에 나체로 세워놓고 먼저 대바늘로 온 몸과 손톱 밑을 찔러 고문한 후 다시 의자에 앉히고 머리카락을 발뒤꿈치에 매어 놓고 형틀을 다리 사이에 끼우고 주리를 트는 고문으로 그 고통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고문방법이다.
박은식 선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의하면 소위 공중전과 육전이 혼용된 고문이 있다. 공중전은 두 팔을 등 뒤로 젖혀서 두 손목을 한데 묶어, 허리와 함께 동여 놓고, 두 팔과 등허리 사이로 목총을 가로질러 꿰어 넣은 다음 목총의 양 끝에 밧줄을 매어 천장에 걸어 사람을 공중에 매달아 놓는 고문이고, 육전은 각종 목총, 죽도 등 손에 잡히는 대로 여러 명이 난타하는 고문이다.
이와 같은 고문을 25분가량 당하게 되면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바로 정신을 잃게 되는 잔인한 것이다. 또 박은식선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의하면 ‘나무상자에 의한 고문’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체포·구금된 애국지사를 나무상자에 가두어 두는 것인데, 그 상자의 3면은 날카로운 못 끝이 안으로 향하여 있으며, 높이는 120cm에 불과한 상자이다. 이 속에 항일 애국지사를 구부리고 들어가게 한 후 이를 흔들거나 발로 차 엄청난 고통을 가하면서 신문하는 고문 방법이다.
해전은 한글을 고수하면서 연구한 조선어학회 회원들이 받은 고문이다. 의자에 앉히고 머리를 등받이 뒤로 젖혀 걸상과 함께 묶고, 두 팔도 뒤로 걸상 밑에서 매어 놓은 다음에 주전자나 양동이로 얼굴에다 고춧가루 물을 부어 저절로 코를 통하여 폐로 들어가게 하는 고문이다. 이로 인해 폐에 기포가 생겨 폐인이 되거나 심하면 죽게 되는 참혹한 고문방법이다.
친일파 놈들과 그 후손들이 ‘태평성대’라고 외치던 그 때 우리의 소중한 한글을 지키려던 학자들은 이런 무시무시한 고문을 받았던 것이다.
김병조 선생이 쓰신 『한국독립운동사략』이라는 책에는 “여성에게는 몇치의 기름종이를 국부(局部)에 끼워 놓고 그 끝에 불을 켜서 타게 하였다. 철사를 빨갛게 달구어 남자의 성기와 여자의 음문과 유방을 난자하며 부녀자는 으례이 나체로 신문하였다. 그리고 강간을 당하였다”고 기록이 되어 있다.
손가락뼈를 으스러뜨리는 도구마저 있었다. 개떼들이 물어뜯게 하는 고문도 있었다. 윤봉길의사가 이런 무자비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끝내 임시정부 요인들에 대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니 정말 놀랍다.
물매질을 하는 것도 일본 놈들의 전형적인 고문방법이다. 몽둥이에 살이 묻어나는 정도였다고 한다. 도산 안창호 선생도 이 물매질에 의해 순국하셨다. 왜 들어갈 때 멀쩡하던 성균관대학교 설립자 김창숙 선생이 앉은뱅이가 되어 나오셨겠는가? 유관순 누나가 왜 그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겠는가?
그 외에도 다리와 팔을 뒤로 묶어서 매다는 비행기 고문과 피가 모두 말라버린다는 전기고문, 그리고 온 몸을 꽁꽁 묶은채 얼굴을 종이로 칭칭 감싸고 물을 적시는 물고문도 있었다.
자! 결론을 내자.
위대한 선각자들이 조국의 독립을 꿈꾸다가 당했던 이 끔찍한 고문의 역사를 더욱 구체적으로 연구하여 후손들에게 자자손손 알려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 게 대한민국 석박사 논문 가운데 일본 제국주의 치하 고문에 대한 연구가 하나도 없는 건가? 나는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교수들은 다 월급 처먹으면서 뭐 하는 건가?
자세하게 기록으로 남기고, 후손들에게 길이 길이 알려야 할 거 아닌가? 그래야 친일파 찌꺼기들이 헛소리하지 않을 거 아닌가?
구체적으로 일본 놈들에게 어떤 피해를 입고, 어떤 수난을 당했는지 막연히 말하지 말고, 세밀히 조사하여 기록을 남겨라.
강제징용 당한 사람만 152만 명이다. 월급만 해도 도대체 얼마인가?? 한 사람당 2년씩만 일했다고 해도 72조 9600억 원을 받아야 한다. 일하다가 죽은 사람, 그 피해를 다 배상받아야 한다. 북한이 일본에게 배상금으로 120조원을 달라고 하는 것이 결코 억지가 아니다. 우리나라 땅을 강제로 침탈하여 무단 사용한 죄, 수많은 양민학살과 우리나라에서 세금을 거둬들인 죄, 또 무자비한 고문과 살육.
3억 달러 달랑 받고 입을 싹 씻는다는 건 말이 안된다. 일본이 지금 전전긍긍하고 있다. 우선 국가적 차원에서 진상조사부터 해야 한다. 지금까지 개인적인 노력만 있어왔다.
「일본제국주의 치하 민족 수난에 관한 종합보고서」를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를 발족하여 세밀하게 제시하라. 어느 정도의 인적, 물적 피해를 입었는지를 우리가 먼저 알고 배상을 요구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조영남 류의 친일파들은 철저하게 사회에서 배제하는 것이 국민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좋다. 친일파와 그 후손들에 대한 특별조치도 있어야 한다. 말로만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의사 훌륭하다고 말하는 건 소용없다. 말로만 백범 김구를 존경한다는 건 다 구라다.
친일파의 자손들은 대한민국을 휘어잡고, 독립지사의 자손들은 가난에 떨고 있다. 그러니 나라꼴이 개판이 되는 거다. 북한은 만경대학원에 우선적으로 독립지사의 자손들부터 입학시켜서 독립지사의 후손들은 거의 사회지도층이라고 한다. 비교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