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싱거웠던 대결
열린우리당의 장례식이 끝나고 대통합민주신당이 탄생을 알렸던 8/18 그 날에 우리는 유시민의 대선출정식을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축하했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아이러니였으며 의미심장한 대반격의 신호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와서 돌아볼 때 정동영이 민주신당을 창당할 때는 이미 그 민주신당의 대선후보가 되기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나있었음을 의미한 것이었습니다. 외부초빙이라는 형식으로 손학규를 끌어들이고 시민사회단체를 품에 껴안으면서 그는 완벽한 준비를 사실상 끝낸 셈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노무현이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비록 뒤늦게 사태의 심각함을 인지하기는 했으나 히든카드 마저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5월 달에 유시민의 복당은 그 히든카드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와 동시에 한명숙과 이해찬의 대선 출마는 아직도 잘 이해되지 않는 측면이 많습니다. 두 분의 대선출마 시점이 8/18 보다 한참 전이었다는 것이 도데체 이해되지 않는 첫번째이며 도데체 두 분이 무엇을 믿고 대선출마를 했는지가 그 둘째입니다.
특히 이해찬의 경우 그가 과연 대선의지가 있었던 것인지 조차 의심스로울 정도로 의지와 능력 그리고 조직이 부재한 상태였습니다. 혹자는 그것이 노무현의 복심이었느니 DJ의 복심이었느니 하는 추측을 하였으나 결과적으로 그것은 DJ의 복심도 노무현의 복심도 아니었습니다.
결국 정동영의 이 탄탄하고 쭉쭉뻗은 대선가도에서 유일한 걸림돌이 있었다면 그것은 유시민이었습니다. 유시민은 8/18 대선출마선언 이후 실제로 무서운 기세로 그보다 두 달이나 먼저 일찍 출정한 이해찬과 한명숙을 앞질러 가면서 정동영을 위협하기 시작했습니다. "시민광장"이라는 팬클럽이 폭발적인 성장을 기록하던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꿈같은 상황은 그야말로 꿈처럼 허망하게 막을 내렸습니다. 경선 시작 하루 전날 이해찬과 한명숙 간의 전격적인 단일화 발표가 있었고 경선 첫날인 제주/울산 경선결과에서 유시민은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스스로 경선중단을 선언하고 이해찬 지지를 선택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이 지점이 이번 최후 대결의 변곡점이자 최대의 실수를 범한 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 이해찬은 제대로 힘 한번 써보지도 못하고 자신의 무능력을 여과없이 드러내며 처참하게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사실상 정동영과 노무현의 대리전이었던 마지막 대결은 유시민이 아닌 이해찬의 패배로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경선과정에서 있었던 대리접수, 명의도용 문제를 아직도 이해찬 패배의 주요 원인으로 꼽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잘 짜여지고 치밀하게 준비된 대선 프로젝트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할 뿐입니다. 단지 그것때문에 이해찬이 졌다고 말하는 것은 이해찬을 더 비참하게 만드는 것일 뿐입니다.
패배 그리고 새로운 시작
노무현과 유시민은 그렇게 제대로 된 싸움한번 해보지 못하고 패배했습니다. 그것은 분노를 넘어 치욕과 수치였습니다. 이러한 와중에도 노무현 대통령이 성공적으로 국정을 마치고 퇴장할 수 있다면 그것은 또다른 기적일 것입니다.
문제는 여전히 유시민입니다. 그는 여전히 민주신당에 남아있습니다. 그는 원치 않을 것이지만 정동영 팀의 일원이 되었고 그를 도와 그를 대통령에 당선을 시켜야할 의무가 지워졌습니다. 그것은 유시민 자신에게도 그리고 유시민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참기 힘든 고통입니다.
이제 유시민에게 정동영은 결코 피해갈 수도 돌아갈 수도 없는 굳건히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산과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정동영을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것으로 그 산을 뛰어넘을 수는 없습니다. 반드시 그를 극복해야만 유시민이 그토록 하고자 했던 또는 노무현 미처 이루지 못한 그 꿈을 이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유시민 지지자들이 정동영을 욕하고 무시하는 것은 심정적으로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유시민에게도 우리에게도 정동영이 가지고 있는 현재의 힘은 간과되어서도 폄하되어서도 안되는 견고한 현실 그 자체입니다.
이번 대선에서 저는 정동영이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여전히 유효한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선택이 어떤 것이든 상관없이 유시민을 포함한 그 누구라도 정치에 뜻을 품고 있는 자가 있다면 정동영에게 협력하든지 아니면 그를 뛰어넘든지 해야할 것입니다.
유시민에게 정동영은 이제 필생의 라이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