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응원할 팀이 없는데 프로야구 경기를 보는 것 같다. 대선 후보들이 확정된 지금, 대선 정국을 바라보는 기분이 딱 그렇다.‘나만 그런 것인가’하고 이쪽저쪽 의견을 들어보지만 대선 정국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일단 내 주위엔 없었다. 50%대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이명박 후보에 대해서도“대안이 없으니 찍는다”는 자조 섞인 얘기가 들린다. 이전에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 사람을 왜 찍어야 하고, 그 사람은 왜 찍으면 안 되는지, 언성을 높이며 토론도 했었는데…. 왜 일까. 이 당 저 당 기웃거려보지만 좀처럼 마음이 가질 않는 건 무슨 이유에서일까.
사람마다 이에 대한 답은 분분할 것이다. 필자 생각은 그들이 시대와 호흡하고, 시대를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 리더(지도자)에 대한 국민들의 눈높이는 꽤 높아졌다. 일개(?) 기업 CEO들도 시대의 코드를 읽고, 미래를 내다보면서 경영을 해 나가는데 그들은 구태의연한 ‘정치 방정식’을 따르고 있으니 어느 국민이 마음을 주겠는가.
지금 사회 각 분야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과거 100년 동안의 변화를 2∼3년에 겪을 만큼 발전속도가 빠르다. 혁신을 넘어 창조를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다. 그런데 그들은 파괴를 통해 살아남으려 한다. 원대한 꿈과 비전으로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할 텐데, 남의 잘못이나 비리를 이용해 반사이익을 취하려 한다. 그러면서 ‘경제 대통령’운운하며 먹고사는 문제는 마치 자신만이 해결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고 있다.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하며 국민들을 헛갈리게 하고 있다.
대선 주자들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경제를 잘 알고, 경영을 잘 아는 것과 대통령으로 성공하는 것은 그다지 상관 관계가 없다. 오히려 역사는 종종 반비례 관계에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일례로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경제 문외한’이었다. 그는 언젠가 이렇게 실토한 적이 있었다. “연방준비이사회(Federal Reserve Board)가 재정정책(Fiscal Policy)이 아닌 금융정책(Monetary Policy)을 관장하는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연방준비은행장 마틴(W.M. Martin)의 성(姓)이 금융(Monetary)의 첫 자와 동일한 M자로 시작했기 때문이지.”
케네디 대통령의 이 같은 엽기적(?)인 발언이 사실이라면 볼커(P. Volcker)나 그린스펀(A. Greenspan) 같은 이름의 사람들은 연방준비은행장에 기용될 수 없었을 것이란 얘기가 된다.
백악관 경제자문을 맡았던 토드 부크홀츠(Todd G. Buchholz) 교수는 “케네디뿐만 아니라 역대 대통령 중 경제원리를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토로했다.
베스트셀러《생각의 탄생(Sparks of Genius)》을 쓴 로버트 루트 번스타인은 “종합적으로 사고를 할 수 있는 창조적 리더만이 국가 경제는 물론 계층 갈등, 인권, 환경 등 복잡하고 미묘한 문제들을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과거의 사고방식과 틀, 관습으로부터 벗어나 창조적 사고를 해야 이 시대의 문제점을 풀 수 있는 단초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지도자의 권위나 카리스마가 통했다. 대통령의 말이 명령이고 비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협상해야 하고, 설득해야 하고, 타협해야 하고 소통을 시켜야만 대통령을 할 수 있는 시대다.
《한국의 역대 대통령 평가》를 집필한 고려대 함성득 교수는“차기 대통령은 과학과 통찰력이 합쳐져 예술적 리더십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요리 책 레시피에 맞춰 김치찌개를 만드는 딸이 아니라 손맛으로 그냥 만드는 엄마 같은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시대가 변한 만큼 대통령에게 필요한 자질도 달라졌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들은 어떤가. 과학, 통찰력, 예술과 어울리는가. 필자 생각으로는 문외한은 아니더라도 그것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 같다.
강 혁 편집장 (kh@ermedi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