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하씨가 향년 88세로 운명을 달리했다. 복잡미묘한 감정이 몰켜왔다.
워낰, 짧은(?) 시기동안 집권했던 그가 광주를 방문해, 폭도니 뭐니 질서를 지켜야 하느니 헀던 것외에는, 그는 1년도 안되는 이상한(?) 대통령, 밀려난 대통령으로만 머리속에 남아있었다.
그의 침묵은 진짜 금덩이었다. 얼마나 무거웠으면, 그의 금보다 더한 침묵이 역사적 개인에 의해 역사가 얼마나 웃기게 구성되어갈지를 보여준 전형적인 예가 되어버렸다.
마치, 김구선생을 암살했던 안두희가 끝까지 참회하지 않고, 배후도 불지 않았던 것처럼, 그는 피해자(?)의 측면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끝까지 역사의 시시비비를 가리는데 주저 헀다. 참으로 역사앞에 두려운 것보다 더 두려운건 없다는 것을 그는 몰랐었을까?
그가 회고록을 남겼는지 어땠는지 모르겠다. 역사의 사실들은 우리 사회의 소중한 자산이 되어야 할터인데, 그가 시시비비와 사실에 대해 아무런 것도 남기지 않고, 또는 공개하지 않고, 또는 그 역시 파시스트독재자의 그늘 밑에서 똑같은 인식을 가지고 역사와 민중을 바라보았다가 새로운 군부에게 바톤터치 한것으로 만족하는 인간이었다면
애석하지만, 그의 살아서의 침묵은 죽어서까지 오명으로 남을거 같다. 침묵이 금이 아니라 침묵이 역사의 똥같은 게 되어버리는거니까...
여튼, 그는 갔고, 전두환, 노태우도 나이가 많다. 이들은 임금의 목을 백성의 손으로 단 한번도 따 본적이 없는, 혁명을 완전히 성공시켜 본적이(?) 없는 대한민국에서 운좋게 재수좋게 29만원 가지고, 사업체도 늘리고, 손자들 재롱보며 말년을 보내고 있다.
참으로 슬픈일이다. 전,노 처단이라는 구호가 대학가를 뒤흔들던 80년대 후반이 지나가버리고, 청문회도 끝나고 백담사 쇼도 끝나고, 면죄부 아닌 면죄부를 발행한 이 사회의 현재의 구조가 세삼 창피해졌다.
저들이 죽고나서 저들에게 헌화할 국민들도 있고, 저들의 죄과를 처단하지 못해 역사적 교훈하나 남기지 못해 가슴을 칠 국민들도 있을테니, 용서를 하고 싶어도 용서를 빌지 않고 죽어서도 떵떵거릴꺼 같은 이 먹먹함이 현실이 될 시간으로 째깍째깍 아무런 변동없이 흘러만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