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차 남북정상회담이 잘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 성과에 대한 평가는 평가자에 따라서 엇갈릴 수도 있죠. 어떤 사람은 대단한 진전이 있었다고 환영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기대한 것보다 못하다고 평가할 수도 있으며, 어떤 사람은 아무런 성과도 없었다고 평가절하를 시도할 것입니다.
그러나 남북정상 회담은 성사된 것으로도 이미 상당한 의미를 갖습니다. 서로의 신뢰를 높여가고, 적대감을 완화시켜가는 장치가 되기 때문입니다. 또 김구선생이 넘었던 그 군사분계선을 대통령이 직접 넘었다는 상징적 의미도 적지 않습니다.
서해안에서의 무력충돌 가능성을 낮추고, 한반도 비핵화를 양정상이 공식적으로 문서화하였습니다. 또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으로 나아갈 지표를 공식확인한 것도 뜻깊은 일입니다. 한반도 전쟁의 당사자들이 한반도에서 모이고 종전을 논의하도록 추진하자고 문서화한 것도 의미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번 회담기간중 대통령이 언급한 것중에 의미있는 대목이 있습니다. 바로 역지사지하는 상호이해의 노력이 그것입니다. 특별히 햇볕정책이나 개혁개방이라는 용어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볼 부분이 있습니다. 남북이 상호관계를 증진시키기 위해서 매우 긴요한 필요성이 있다고 봅니다.
햇볕정책이라는 용어는 공식용어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사실 이부분이 북측의 입장에서는 매우 거슬리는 점이 있을 것입니다. 두꺼운 외투를 입은 나그네에게 강력한 바람으로는 옷을 벗길 수 없었으나 따스한 햇볕을 쪼이게 되면 스스로 옷을 벗지않을 수 없다는 동화와 같습니다. 사실 북한이 입고 있는 옷이 뭔가 문제가 있어서 햇볕을 가해서 벗겨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남한의 입장에선 특별히 나쁠 것이 없고, 대북화해협력 정책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용어입니다. 하지만 북한의 입장에서는 매우 불쾌한 용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자신들이 입고 있는 체제라는 옷을 남측이 화해제스처로 벗겨내려고 한다는 인상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용납이 안되는 말입니다. 진정 역지사지 한다면 이러한 용어를 이제 폐기해야 할 것입니다.
또 개혁이라는 용어도 적절치 않습니다. 본래 개혁이란 스스로 내부의 문제를 고쳐나가자는 의미로 차용하는 경우에 그 뜻이 옳습니다. 상대에게 개혁이라는 용어를 대입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상대방의 상태가 매우 옳지 않거나 불량한 경우에 그것을 고치도록 강요한다는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도 역시 남한내부의 이해를 높이기 위한 용어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동반의 파트너로서의 북한을 고려한다면 사용을 자제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개방이라는 용어도 마찬가지 입니다. 개방이란 폐쇄에 대립되는 개념입니다. 내부에서 사용되는 개방이라는 용어는 스스로 폐쇄성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담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에게 사용하면 그 것은 매우 실례되는 말입니다. 상대가 패쇄적이라고 규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객관적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상대방이 있는 관계에서 사용할 용어로는 부적합한 것입니다.
과거 북한의 우리에 대하여 수 많은 실례를 범한 역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북한에 대하여 저지른 일을 별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지금의 남북관계 현주소입니다. 대화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는 지점에서 서로의 대화는 실질적 진전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특히 자신들의 체제에 대한 위협을 일상적으로 느끼고 있을 북한에 대하여 '햇볕정책' 이니 '개혁개방유도' 니 하는 용어를 함부러 사용하는 것은 대단한 실례입니다. 사실 우리가 북한의 핵에 대하여 위협을 느끼는 것처럼 북한은 지금 우리와 미국의 군사력에 의하여 자신들이 위험에 빠질 가능성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하고 이해하지 못하면 남북관계는 진전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서로 '역지사지'하는 의미에서 상대방을 좋지않게 규정하는 용어들부터 좀 바꿔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들이 두터운 외투를 입은 나그네라도, 그들이 개혁의 대상이거나 폐쇄적인 집단이라도 그렇게 규정하는 것은 대단히 실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