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미의원이 또 뭐라고 했나보군요.
그런데 좀 이해가 안 가는 것이... 89년에 현미가 평민당 입당했다고 하는데,
이해찬후보는 88년 봄 13대총선에 평민당후보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는데 앞뒤가 좀...
유시민의원의 말을 들어보면 보좌관 시절 일해재단 청문회에서
노동(악)법으로 인해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하지 못함에 부들부들 떨던 모습을 기억하며
노무현의원의 단심을 보았다고 했는데, 기사내용대로라면 현미가 좀 늦은 셈인 듯...
아마도 88년을 89년이라고 잘못 말했거나 오기된 표현?
이해찬후보가 늘상 하는 말처럼 김대중대통령께도 바른 말이면 가리지 않고 하는 스타일이죠.
김대중총재 시절 입바른 말 했다가 미운털 박힌 사람 여럿 있잖아요.
조순형의원, 김원기의원, 노무현의원, 이해찬의원...
입바른 말을 자주 하니까 이해찬의원에게 14대 공천을 안해주었거든요.
당시 90년 3당합당에 반대하고 남았던 통일민주당 잔류 미니민주당과 평민당이 합당해서
신민당이 되었는데 이해찬 의원에게 사사로운 감정으로 공천권을 주지 않자
노무현 의원이 김대중 총재에게 거세게 항의해서 이해찬 의원이 간신히 공천권을 받을 수 있었죠.
그 이후 이해찬 의원은 내리 5선, 노무현 의원은 4전5기 후 대통령 된 것이죠.
정작 배신했던건 95년 말, 96년 초에 통합민주당을 깨고 동교동계를 빼내서 정계복귀하신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님이었죠. 이기택, 김원기, 이부영, 제정구, 노무현, 김원웅, 김홍신 이철 등
3김정치 반대론자들이 95년 지방선거 지원유세를 시작으로 정계복귀를 도모하던 DJ를
반대하자 결국 당을 깨고 나온 것이거든요.
하지만 개혁세력이 DJ를 배신자라고 하지 않거든요. 96년 총선에서 3김정치 종식을 외치다가
전국 각지에서 처참하게 깨져나간 뒤에 지금의 민주노동당 수준으로 전락한 후 통추활동 하다가
97년 대선을 앞두고 대선후보로 영입한 조순총재가 신한국당과 합당하는 바람에 통추가 둘로
쪼개졌고 97년 대선 전에 노무현외 소수, 통티모르 파병찬성 때 이미경, 2002년에 김원웅,
2003년에 이부영 등 독수리5형제와 김홍신 등 개혁세력이 다시 합류하게 된 거죠.
사실 말을 안해서 그렇지, 선거 때만 되면 개혁진보세력의 비지론을 간청하다가
평시에는 개혁세력의 원칙과 상식,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정당정치활동을 거부해 온 분들은
어르신을 비롯한 동교동으로 대표되는 호남지역정서 편승론자들이었거든요.
호남출신이 아니어도 그 쪽에 줄을 서야 했던 개혁세력 입장에서는 김현미보다 할 말이
많으면 많았지 그보다 못하지 않거든요. 전주에서 깃발 꼽고 노인폄하 발언 이전까지
차기 총선에 대한 아무 걱정 없던 그 누구와는 다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