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라는 설과 어느 소피스트의 말을 소크라테스가 옮겼다는 설과 어느 벽에 쓰여 있는 글이었다는 설 등 설은 난무하지만, 어쨌든 중요한 것은 누가 이 얘기를 했느냐가 아니라, ‘너 자신을 알라’라는 무지막지하게 소중한 질문의 가치를 우리는 잊지 않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일겁니다.
나 자신, 그리고 너 자신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깊은 성찰과 자신의 객관화 그리고 스스로와의 처절한 싸움이 필요합니다. 그 중에 자신의 성정체성을 알아차리는 일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무조건 남자는 남자의 성, 여자는 여자의 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개인이나 단체 등이 태생적으로 혹은 진화를 거듭해 가면서 얻게 된 ‘편안한’ 성징을 말합니다.
불, 파괴, 통제, 조직, 놀이, 우두머리 등이 다분히 남성성을 상징한다면 물, 창조, 흐름, 침묵, 느낌, 어울림 등은 다분히 여성성을 상징합니다.
이 두 가지 정체성은 각기 누가 더 훌륭한가의 문제가 아니라 상호보완의 필요성과 그러기 위해 열린 생각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더욱 더 중요한 개념입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알지 못하거나 알고는 있는데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억지로 바꿔나가려 한다면 엄청난 시련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 ‘인정하지 못함’으로 인해 피해의식과 자격지심이라는 괴물이 태어나게 됩니다.
먼저 미국을 봅니다. 벼락부자가 된 사람의 백이면 구십구가 추구하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명예죠. 돈이 전부가 아닌 것을 부자가 되어서야 깨달은 이 사람들은 ‘자리’에 대한 욕심과 ‘존경’에 대한 쾌락을 탐하게 됩니다.
정치적 술수로 ‘자리’를 탐하고 ‘존경’을 바라마지 않지만 그게 그리 쉽게 달성할 수 있는 목표는 아닙니다. 차츰 차츰 그 욕망에 대한 한계에 이르고 멸시의 눈총을 받는다고 판단할 즈음이면 이들은 서서히 이성을 잃어갑니다. 급기야 고개 숙이지 않는 상대에게 폭력을 행사해서라도 고개숙임을 강요하고 그 순간 동네방네 떠들며 외칩니다. “드디어, 이 친구가 내게 고개를 숙였다”라고.
그리고 일본을 봅니다. 역사적 사실을 파면 팔수록 거기에 존재하는 것이 이 땅에서 건너간 사람들이거나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 드러나게 되니 미국의 예와는 달리 이들은 역사를 덮어두려 합니다.
더 나아가 그것을 왜곡하기까지 합니다. 강한 일본을 외치는 일본의 극우세력들은 우리겨레가 자기네에 미친 영향력에 일정부분 피해의식을 갖고 있고 그것을 애써 외면하려고 하다가 자격지심이 발로하고 그것이 반대급부로 작용하여 엉뚱한 공격을 해대는 것이죠.
요즘 인터넷은 물론, 오프라인의 언론에서도 시끄럽게 회자되고 있는 한 정치조직도 마찬가집니다. 외면상 내걸은 그들의 정치목표와 실제의 방향성이 앞뒤가 맞지 않고 따라서 자충수의 반복이 이어지다가는 급기야 오기로 내달려버리고 있습니다. 그들의 지도부가 늘 하는 얘깁니다.
“서포터로 머물라고 했습니다, 정치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왜 우리가 하면 안됩니까?”
누군가는 이런 얘기들을 했겠죠. 그러나 스스로의 명분이나 정당성 등을 심각하게, 혹은 치열하게 고민하지 못하고 운전대를 잡아버린 이들의 귀엔 모든 사람이 우리를 비난한다고 피해의식을 갖기 시작했고, 천천히 하라는 말에 자격지심으로 인한 오기로 브레이크 페달을 내던져 버렸습니다. 이제 그들이 멈출 수 있는 방법은 그 무엇과의 ‘충돌’뿐입니다.
나무와 인간의 유전구조가 상상 이상으로 흡사한 것 알고 계십니까? 나무와 함께 있으면 몸도 마음도 편안해지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평정심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정체성과 그 행동양식에 대한 올바름 때문일 겁니다.
나무가 오래도록 살아남으려면 뿌리가 튼실해야 합니다. 그 뿌리를 통해 물(새로운 시각, 생명, 창조의 의식)을 빨아들이고 한 줄기만을 고집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길(비판, 토론)을 가야합니다.
모든 나무는 가지를 칩니다. 두 갈래에서 갈라진 길은 또 다른 두 갈래 길을 만들고 그 논리와 행동은 계속해서 이어져 무성한 이파리들을 만들어내고 꽃을 피우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풍성한 결실을 맺게 되는 과정에서 필연적인 조건은 거스르지 않음입니다.
몇몇 경선 과정에서의 사건들과 그 사건들이 진행하는 모습들 그리고 그것이 시련이든 기쁨이든 함께 나누고 견뎌내고 순환하는 모습들을 보며, 우리는 분명 모범적인 거대한 나무로 살아남아 수많은 이파리들과 꽃과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 것을 의심치 않습니다.
끝으로 피해의식과 자격지심으로 브레이크 페달을 내던진 이들에게 충고 한마디 합니다. “나를, 그리고 우리를 우습게 보지 말라”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말하는 순간 당신과 당신네들은 우스워집니다.
결국은 우리가 이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