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인생이란 무엇인가?
톨스토이가 펴낸 어느 책의 제목으로 기억되는 이 상투적인 말이 지금 독후감을 쓰는 나의 뇌리를 헤집고 다닌다. ‘나’와 ‘너’라는 수식어를 달고.
그렇다면 나의 인생은 무엇인가? 너의 인생은 무엇인가?
평소 책읽기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책방에 가서 지은이의 이름만으로도 책을 집어들어 계산대로 가는 경우가 적지 않았을 것이다.
내 기억으로 아주 오래전에는 마음에 드는 소설가라든지 시인이 새 책을 냈다는 소식이 들리면 ‘열성 팬’들은 데이트도 마다하고(혹은 데이트 상대자와 함께) 책방으로 달려 갔었다. 요즘도 그럴까?
과거의 나는 그랬다. 젊은 시절 전공 때문(국문학)이기도 했지만 마음에 든 작가가 새 책을 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술집으로 향하던 발길을 돌려 책방 문을 밀고 들어가곤 했던 적이적지 않았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그날로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기는 경우가 흔했다.
그러다 세월이 흐르면서 책보다도 더 급한 일들이 내 앞을 가로막는 일이 잦아지자, 나는 평소 좋아하는 소설가가 책을 냈다는 사실을 신문 등지에서 알아냈어도 그 날 저녁 그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다른 곳으로 간 적이 더 많았음을 고백해야겠다(미안하오, 소설가여!).
대학 전공 때문이었을까 사실 나는 창작, 그러니까 소설이나 시 같은 글을 수필이나 다큐멘터리보다 우위에 두었었다.
그렇게 ‘편독’을 즐겨하던 내가 독서 지평을 넓히게 된 것은 순전히 한비야씨 탓이다.
‘오지여행가’로 불리던 한비야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그녀가 장장 7년이라는 세월동안 지구 곳곳의 오지를 누빈 끝에 4권으로 펴낸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이라는 책을 만나면서였다. 오지여행 중독에 빠져 있는 게 틀림없다고 여겨졌던 이 당찬 여성에게 나는 은근히 열등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녀에게 오지여행이란 그저 새로운 것, 기이한 것에 대한 ‘보고 즐김’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삶에 대한 치열한 검증 같은 것이었던 게 아니었을까?
더구나 네티즌이 만나고 싶은 사람 1위, 여성특위가 뽑은 신지식인 5인 중 한 명, 평화를 만드는 100인 등에 선정되었다는 화려한 이력과, 2004년 ‘YWCA 젊은지도자상‘을 수상했고 현재 국제 NGO 월드비전 긴급구호 팀장으로 있다는 이 마흔 여덟의 독신녀는 솔직히 묘한 매력과 흥미를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그녀가 펴낸 일곱 권째 책의 도발적인 제목이다. 이 제목을 보자마자 나는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도전적이고 모험적인, 무언가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는 듯한 상쾌하고 통렬한 그 무엇인가가 숨어 있을 거라는 기대감마저 품게 했던 것이다.
군대에서 행군 경험이 있는 나는 ‘지도 밖으로’가 얼마나 위험하고 무모한 짓인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마치 모험을 떠나는 탐험가의 심정으로 잔뜩 기대를 품고 첫장을 펼쳤다.
<아직까지도 나를 세계 일주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다면, 오지 여행가 한비야는 잊어주기 바란다. 이제 나는 긴급구호 요원으로 완전히 변신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마치 세상의 수많은 연인들이 그동안의 뜨거운 관계를 청산하기 위해 보내는 편지에서처럼 <잊어주기 바란다>고 ‘선언’하는 것이 아닌가. 도대체 긴급구호요원이란 게 무엇인데...
이상하게 나는 약간의 배신감마저 느끼며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이 책은 단순한 ‘행군기’가 아니었다. 행군이란 말이 암시하듯 ‘군사적인’ 냉혹함과 묵직한 그 무엇을 드러내려는 목적이 있으리라는 것을 예상은 했지만, 책을 읽으면서 맨 앞에서 밝혔듯 ‘나의 인생’까지 되돌아보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포장된 도로만 달리던 내가 차츰 비포장길, 그것도 마치 험준한 산길로 접어든 느낌을 받은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내내 나는 마음이 편치 못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그만큼 지금까지의 내 삶이 상대적으로 평범하고 평탄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고 달리 말한다면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이 책은 나의 그런 무관심에 인정사정 보지 않고 줄곧 일침을 가하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이곳 사람들은 산 입에 거미줄을 치며 서서히 굶어 죽어가고 있었다>
이같은 표현은 차라리 소설에서 보아야 했다. 나는 이 표현에서 전율을 느끼며 마시던 커피잔을 내려놓고 잠시 서성일 수밖에 없었다.
‘산 입에 거미줄을 치며 서서히 굶어 죽어가고 있다’니...
아프카니스탄 난민들. 날마다 총성과 포성으로 하루를 지새는 그들을 두렵게 하는 것은 전쟁의 공포가 아니라 ‘굶주림의 추억’이었다. 그들은 포탄이 떨어지는 곳에 빵이 있다면 목숨을 던져서라도 빵을 집으러 달려갈 만큼 지긋지긋한 배고픔에 시달리고 있었다.
서울특별시 인구보다 훨신 많은 1천3백만명이 굶어 죽고 있는 초대형 긴급 구호현장인 남부 아프리카 6개국. 만약 미국이나 유럽에서 13명만 굶어 죽는다고 해도 대서특필될 터인데 그 백만배나 되는 사람들이 죽어가는데도 세계 언론은 눈 하나 깜빡 하지 않는 곳.
전쟁으로 페허가 된 인근의 170개 초중학교 약 7만명의 아이들과 주민들에게 맑은 물을 공급해 주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한비야씨에게 ‘마이 꼬리’[물을 가져다주는 한국인]라는 별명을 붙여준 이라크인들.
미혼의 한비야씨에게는 딸이 셋 있다. 큰딸은 12살 난 에티오피아의 젠네부.
그녀가 매달 보낸 2만원의 성금이 낳자마자 설사로 죽어가던 젠네부를 살렸던 것이다.
둘째 딸은 역시 나이는 동갑인 방글라데시의 아도리. 아이의 부모가 악덕 고리대금업자에게 돈을 갚지 못해 ‘담보노동’을 하며 평생 노예 생활을 해야 했는데 그녀가 전달한 5만원으로 풀려나게 했다.
셋째 딸은 몽골의 세살짜리 엔크흐진. 구루병으로 휘어진 다리를 뒤뚱거리며 걷는데 역시 매달 2만원의 성금으로 치료를 시작한 아이다.
한비야씨의 통장에서는 매달 6만원이 ‘월드비전’으로 빠져나가는데 이 돈은 세 딸들에게 흘러가는 ‘생명수’와도 같다.
서부아프리카 대서양 연안의 자그마한 나라 시에라리온.
한비야씨도 이름이 <참 이쁘다>며 <꼭 태평양의 외딴 섬에서만 자라는 화려한 열대 꽃 이름 같다>고 했지만 나는 우주 멀리 안드로메다성운 곁에 있음직한 작고 빛나는 아름다운 별을 떠올렸다.
생각해 보니 아주 오래 전 무슨 지리부도에서 그 이름을 본 듯한 기억도 났다.
그런데 시에라는 ‘산’ 리온은 ‘사자’를 뜻해 ‘사자의 산’이란 말이었다.
나는 한씨가 이 나라에 가서는 무슨 행군을 했을까 기대에 차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가 차마 더 읽지 못하고 한동안 책장을 덮었다.
국토 면적은 남한의 2/3, 인구 5백만명, 전세계에서 가장 낮은 평균수명 25~35세, 인구 대비 신체장애자 수가 가장 많은 나라, 인구 대비 난민 수가 가장 많은 나라(인구 절반이 난민). 이 나라에서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다이아몬드가 발견되었는데, 남자 어른 주먹만한 크기의 986.6캐럿이나 되는 이것을 ‘시에라리온의 별’이라고 부른단다.
10년 내전이 끝나고 2002년 종전한 뒤 유엔 평화유지군이 정부군과 반군을 대상으로 무장해제를 하는 곳으로 아직도 치안 유지가 불안한 지역이라고 한다.
내전 기간 동안 생계를 위해 혹은 강압적으로 반군에 가담한 소년병 수가 대략 4만5천명이라고 한다. 다이아몬드 채굴 지역을 장악한 뒤 다이마몬드를 판 돈으로 단숨에 나라 전역을 점령한 반군 지도자들은 이들 어린 소년들을 부리기 위해 마약을 먹여 살인 강간 등을 일삼게 했다.
<소녀병이라 불리는 여자아이들의 사연은 더 기막히다. 열여섯 살 된 앳된 얼굴의 미티미는 담뱃불자국과 칼자국으로 온몸이 성한 곳이 없었다. 반군들은 여자아이를 끌고 가서 낮에는 탄약을 나르거나 밥, 빨래 등을 시키고 밤에는 성노리개로 삼았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저 아이는 몸의 상처보다 마음의 상처를 더 씻을 수 없을 것이다>
지구라는 ‘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몸서리가 처지는 대목이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에는 그밖에도 ‘평화로워 더 안타까운 산들의 고향’이라는 네팔, 세계의 화약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수십만 명이 물귀신이 된 남아시아 해일 대참사 현장, 감자꽃이 눈부시게 피어 있던 북한땅....의 아픔과 슬픔이 마치 콜타르처럼 덕지덕지 묻어 있다. 한비야씨의 온 몸에는, 어쩌면 영혼에까지 그같은 콜타르 자국이 그녀 자신의 상처인양 혹은 문양인양 찍혀 있지나 않을까.
말미에 붙어 있는 ‘한비야가 안내하는 긴급구호의 세계’는 궁금증에 시달리던 나에게는 이 책의 ‘백미’였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긴급구호’란 내가 알고 있던 단순한 개념이 아니었다.
‘생명을 구하는 것은 물론 그 생명이 최대한 빨리 일상에 복귀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조건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긴급구호는 목숨을 살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당장의 도움 뿐만 아니라, 앞으로 생명체로서 정상적인 활동을 펼쳐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기까지의 과정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긴급구호단계 --> 재난복구단계 --> 개발단계인데 한비야씨는 이를 쉽게 병원으로 비유한다. 긴급구호는 응급실, 재난복구단계는 중환자실, 개발단계는 회복실로 비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비야는 말한다.
<현장에서는 적어도 5년 내지 10년을 잡고 있고 개인과 가족을 단위로 하기보다는 한 지역이 총체적으로 자립심과 독립심을 가질 수 있는 역량을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그들이 혼자 설 수 있는 역량이 된다고 판단하면 그보다 열악한 지역으로 프로그램을 옮긴다. 언제까지나 다른 사람의 돌봄을 받고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도대체 한비야 그녀를 이렇게 불굴의 ‘여전사’로 만든 근원적인 힘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하나님,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이 아침 이렇게 기도드릴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그녀에게는 누구보다도 든든한 ‘백그라운드’가 있었구나.
지난 10년간 정부군과 반군간의 수많은 교전으로 1만 여명이 죽거나 다쳤고 곳곳에 기아와 빈곤에 시달리는 네팔의 어느 산악지역에서 한비야는 이렇게 기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뭏든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나에게 죄책감까지 들게 했다. 지금까지 나는 ‘나의 인생’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이다. 일, 출세, 급여, 건강, 취미생활, 재테크, 이쁜 며느리 얻기....
아, 그러나 지금 이러한 것들이 얼마나 초라하게 느껴지는가.
인생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 나는 수화기를 노려보며 한참동안이나 망설였다.
월드비전으로 연락해, 말아....
그러다가 나는 거울 앞에서 나 자신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봐 친구, 자네 지금 몇 살이지?>
주민등록증 나이보다 늘상 하는 행동은 20년쯤 아래였다고 자부했는데...
이를 어쩌란 말이냐. 아, 일주일만 젊었드래두...아니 이제는 이런 핑계도 될 수 없을 듯하다.
독후감 모집에 괜히 응했나 보다. 아예 책을 읽지 말 것을....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잘 읽었다. 잠자고 있던 나의 다른 부분을 깨우고, 흔들고 그랬으니까.
마치 마라톤 풀 코스를 마치고 허리를 구부린 채 숨을 고르고 있는 마라토너처럼 나는 심호흡을 하며 생각했다.
그래 곰곰 따져봐야겠다. 다른 사람의 인생에 개입할 굳건한 의지가 있는지 없는지를. 만약...만약에 의지가 있다면 월드비전으로 전화를 걸어야지, 마음 변하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