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당신은 도청에 남겠는가? ]
- 유시민의 낙마, 그리고 화려한 휴가를 꿈꾸며.
저 저번주에 영화 <화려한 휴가>를 느즈막에 보았다.
내가 그 영화를 보는데 뜸을 들였던 이유는 한 동안 시간적 여유도 없었거니와 몇 주전부터 이어져오던 정치판의 공허함때문에 찾지도못할 도청을 연민하지나 않을까라는 자조섞인 두려움 때문이였던걸로 생각된다.
역시나 그 두려움은 나를 짓눌렀고 영화보는 내내 감당않되는 논픽션의 주제거리가 깊은 한숨으로 마중하며 내 무거움을 토로하게 만들었던것 같다
배우의 연기력이 뛰어나던 뛰어나지 않던, 플롯이 구성지게 만들어졌던 만들어지지 않았던 난 그 무거운 역사에 압도되어 스크린에 복기되는 장승곡을 눈시울로 화답할수밖에 없었던것이다.
무엇이 이렇게 나를 뜨겁게 만들어왔나?
왜 우리들은 뜨거운 불씨를 삼켜 토해내지 못하고 잿더미로 산화해간 전태일처럼 불길한 전염성으로 또 이 시대를 환기시켜야만 하는가?
어쩜 이 의문들은 참으로 무거운 주제앞에 예시되는 또 다른 고민이라면 고민일것이다.
애국가가 울려퍼지고 펄럭이는 한 국가의 국기에 대하여 도청을 사수하는 자들은 거수경례로, 그리고 도청을 빼앗으려는 자들은 세워총으로 촌음의 긴장감을 다투기 시작한다.
이윽고 아직 끝나지 않았을 공명 속 하모니에 심장이 멎어버릴것만 같은 총성이 울리기 시작했고 역사속에 서글픈 단락이 서사적으로 매듭져옴을 환기했을때 난 그저 울음을 토해내는 일 말고 달리 이해할 문제도 달리 생각해볼 문제도 떠오르지 않는다.
'씨발넘들, 개새끼들, 미쳐버린 좆같은 나라....'
사람들이 아스팔트에서 뜨겁게 죽어간다.... 죽고있다.... 죽었다.... 지금 난 울고있다.
간혹 스크린속에서 맥없이 스러져가는 인물들의 캐릭터를 놓쳐도, 당시 그 상황의 전형을 어떤 각도로 잘못잡아 그 프레임이 어떻게 효율적이지 못했는지에 대해서도 난 알고싶을 여력이 없고, 알 필요도 없이 그저 지금은 이 잔인함을 통감하고만 싶다.
무슨 상관인가? 왜 당신들은 지금 울지못하나?
목 놓아 울고 하다못해 절규라도 해야 하지 않나?
그렇게 도청에 남은 자들, 그리고 고립된 공간
어두운 심연처럼 극장안이 답답하다.
내가 지금 도청에 갇혀버린 것처럼 말이다.
패배감인지, 승리감인지, 그리움인지, 안타까움인지, 아니면 서글픔인지....
우리들은 진짜 몰랐던 것일까?
죽은 자들을 뒤로한체 산자들이 그곳에 남아야했음을.... 그리고 확인해야 했음을....
사실 난 지금 정치권 안팍에서 회자되는 대통합논의가 붉어질때부터 나의 도청을 찾지못했었다. 살기위해 총을 짊어지고 싶었으나 겁이많아 따라가지 못했고 그렇다고 남아볼수도 없었다.
어디가 도청인지 모르니....
어쩌면 우리는 아직도 그 도청에 갇혀있는건지도 모르니....
섣불리 가지가지로 이반되는 담론들속에 나를 의탁해낼수 없었던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찾아야 했기에 지금껏 소통을 제일 게을리하지 않았음에도, 제일 고립되어 사방의 총부리와 이전투구로 싸워오던 젊고 유능한 정치가 유시민에게 나의 의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던 그가 끝내는 확성기를 틀고 영화 <화려한 휴가>처럼 도청을 남겨둔체 엔딩을 만들어간다.
영화는 그렇게 끝이났다. 유시민도 낙마했다.
이제 비로서 우리들이 진지하게 대답해야할 차례인것 같다.
당신들은 이 고립된 도청에 남아있을텐가? 아니면 버릴것인가?
난 남겠다.
아니 이제 남을곳을 찾았다.
그러니 명분이라는 허위적인 장막에 가려 도망치지 말고, 당신들 역시 살기위한 부르짐으로 여기 이곳에 남아라!
12월 19일....
우리들의 화려한 휴가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