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에서 발생한 열아홉 번째의 쿠데타에 자극 받은 사람 많구나.
어디 그게 정상인지, 태국 국민이 바라는 진정한 희망인지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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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미폰 아둔야뎃 태국 국왕 ⓒ 엠파스 검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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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의 군부 엘리트는 귀족집단이다. 왕족과 혈연적 유대가 강한 자들이 지원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 상층부는 더욱 그렇다. 스무 번 가까이 일어난 쿠데타는 결국 그들만의 쿠데타였던 것이다. 쿠데타로 인해 대량 살상이나 내전으로 달리지 않는 것은 군부 지도자들끼리의 견해차가 무력시위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을 벌려 놓고 왕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다. 왕의 승인이 있으면 당연히 국민적 지지를 받는다. 그러니 쿠데타는 다른 나라에서 보는 것과 같은 혁명적인 것이 아니라 태국식 정권교체의 수단인 것이다.
- 태국과 같은 쿠데타를 동경하시는 분들 태국의 쿠데타에 박수 많이 보내시죠.
태국에서 쿠데타로 국왕을 교체한다는 것은 앞으로 군부의 쿠데타 놀이를 영원히 종식시키는 것임을 그들은 너무도 잘 안다. 그러니 잦은 쿠데타에도 국왕의 권위가 전혀 훼손 되지 않는다. 태국인들이 이런 잦은 쿠데타에도 군부가 국왕에게 고분고분한 것을 보고 공손한 군부를 지지할까 국왕을 지지할까. 국왕과 군부는 이런 관습 속에 공존해왔고 앞으로도 쿠데타가 발생할수록 국왕의 권위와 존재감은 더욱 높아갈 것이다. 태국의 현실은 이러하다.
과거에 태국에서 군부 쿠데타 주역들은 왕조를 해체하려다 그만두었다. 그것은 샴 왕조의 업적 때문이다. 19-20세기까지 태국은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의 유일한 독립국가였던 까닭이다. 이런 결과는 태국의 독립 유지를 위해 태국 현왕조의 조상들은 현명함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태국 왕조의 절대권력을 군부가 빼앗는 대신 왕의 권위를 살려 국민 앞에 서게 했고 군부는 그들의 야심을 채울 수 있었다. 태국은 2차대전에서 일본 편에 섰지만 왕조는 유지되었다.
- 그것 역시 국민적 신망과 일본 편을 들었던 군부가 국왕 뒤에 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어보자. 어제 발생한 태국의 쿠데타는 부패한 정부를 엎고 사회정의를 구현하려는 순수함 때문일까. 아니면 태국군부 수뇌와 부패한 탁신 총리 사이의 갈등이 원인이 컸을까. 태국 군부의 쿠데타 이후를 잘 보시기 바란다, 그걸 볼 인내심이 없다면 이전 열여덟 번 일어난 쿠데타의 전철과 그 주역들의 삶을 관찰해 보라. 인터넷 정보에 밝아서 태국 쿠데타를 한국화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아. 열린우리당이 싫어도 당신이 지지하는 당과 지지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잘 들어라.
한국의 쿠데타와 제 3세계 쿠데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1. 기존 정치세력에 대한 국민적 환멸을 이용한다.
2. 낮은 민도와 기득권층의 부패로 인한 사회적 희망의 결여.
3. 정치 구조의 후진적 악순환에 비해 군사적 결정의 신속함과 효율적 명령체계를 갖춘 군부의 상대적 선진성,
4. 기득권 교체 열망과 외부 경쟁국가의 눈부신 성장에 자극.
5. 자원부국일 경우, 군부에 대한 외세 조종에 의한 국가전복 등으로 급하게나 정리해 본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 박정희 정권의 탄생과 전두환 정권의 탄생을 보라. 기존 정치권이 온전했던가. 쿠데타로 사기충천한 일부? 이명박, 박근혜, 손학규, 고건 등의 지지자님들아. 박정희 정권의 공화당은 누가 주도했고 그 들러리들은 누구였는가. 감옥소에 간 기라성 같은 기존 거물 정치인들이 국민들의 지지가 없었기 때문에? 부패했기 때문에? 전두환 정권의 탄생과 감옥소와 가택 감금을 당했던 사람들은? 그리고 누가 등장했던고?
- 지금 늙은 나이에 작전권 환수 반대 투쟁에 나서신 어르신네들을 잘 보시라. 정치 환멸주의자든 박근해, 이명박, 손학규, 고건, 기타 등등 지지자든 쿠데타를 반기며 희망을 갖지 마라. 저 노인들을 보면서 생각에 좀 잠겨 있어라 이 시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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