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카드정책이 실패했다'와 '카드시장에서 어떤 카드회사가 실패했다'와는 구별해야 합니다.
애초의 논지가 김대중정부의 카드정책이 실패한 정책이냐라는 것이었고 카드정책이 과연 경기부양정책이 될 수 있느냐는 이론적인 측면이었습니다.
김대중정부의 카드정책이 실패한 정책이었으면 노무현정부는 대폭적인 정책의 변경이 있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또한 당시 정책책임자들을 여전히 중용했습니다.
'후방효과에 따른 호황'과 '경기부양'과의 차이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카드정책의 실패와 카드회사의 실패의 차이가 뭔지 모르겠다의 연장선이죠.
한가지 힌트를 드리자면
"노무현정부의 게임산업중흥정책은 경기부양입니까?
입만 열면 인위적 부양은 없다는데요?"
애널리님은 제가 열거한 경기부양책중 어디에도 카드산업과 연관이 된 부분이 없으니까 피셔의 교환방정식에 대한 맨큐교수의 강의까지 제시하시는데요.
그부분은 총수요.. 어떤 새로운 수요가 발생되어 총수요가 늘어났을때를 가정해서 화폐수량과 인플레이션의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지. 카드산업에 대한 얘기는 아닌거같구요. 여기서는 맨큐교수가 어떤 새로운 수요를 '카드가 도입되어 사용이 확대된 경우'를 가정하는 것이지요. 이것을 '카드가 도입되면 총수요가 늘어난다'로 규정하면 매우 곤란합니다. 제가 아니라 맨큐교수가요. 다른 예를 더 찾아보시구요.
앞서 언급한대로 후방효과는 분명 있습니다. 김대중정부가 경기부양을 노리고 카드정책을 펼쳤다면 지금은 어떻습니까? 지불능력이 의심되는 회원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무분별한 카드남발이 계속되는거 아닙니까? 제가 쇼핑을 좋아해 여러 할인점을 다니는데 입구에는 모두 카드모집인들이 경품으로 회원을 끌고 있습니다. 그럼 지금도 경기부양, 또는 후방효과를 노리고 카드정책을 그대로 두는 것인가요?
제가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의 카드정책이 뭐가 다른가하고 질문에 애널리님은 정책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추진과정에서 큰 문제점이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자.. 그럼 제 글의 결론을 내죠.
경기부양이라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것입니다.
어쨌든 그 결과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는 불확실한 영역입니다.
불확실성은 축복이면서도 때때로 재앙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자율을 낮추면 경기가 회복된다.. 이런 확실한 믿음은 케인스식이구요. 케인스는 그렇게 해서 성공했는데 이차대전 이후의 경제상황은 그걸 깨버렸습니다.
다만 경기가 회복되어 시중에 자금이 풍부해지면 이자율은 낮아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금 에프알비가 허구헌날 립서비스하면서 올린다 내린다 어쩌구 저쩌구 하는 것은 바로 이런 불확실성과 모호성에 기반을 둔 정책이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케인스도 유효하고 피셔도 유효합니다. 다만 확실하진 않다는거죠.
요즘 텔레비젼광고에도 나오던데 메릴린치증권의 마젤란펀드에서 큰 성공을 한 피터린치라는 뻔드매니져가 이런 말을 했더군요.
'글쎄.. 경제학자들이 뭐하는 양반들인지는 몰라도 두번만 경기예측에 성공해도 골치아픈 연구실대신 하와이에서 여생을 보낼텐데..'
공황은 소리없이 찾아오고 예상보다 길고 깊지만 호황은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르고 나만 소외된 듯한 느낌을 줍니다.
경제는 사람과도 같아서 그 껍데기만 볼 뿐이지 그 내면은 들여다보기도 어렵지 않습니까? 나만 그렇게 느끼는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