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세계에서 진짜 세계로
세계가 더 넓어졌다
흔히들 외국하면 유럽 혹은 미국이거나 가까운 일본 아니면 중국이었다. 적어도 90년대까지도 이러한 ‘세계’에 대한 시각의 한계가 분명 존재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까지만 해도 주요 교역국은 위와 같이 한정적이었으며 최소한 그렇게 인식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세계정세로는 냉전이 끝나고 냉전의 주인공 국가들을 제외한 국가를 제 3세계라 불렀으며 군사, 정치적 대립이 첨예해지지 않게 됨으로 그야말로 세계의 국가들은 다방면에서 크든 작든 비로소 세계라는 무대에 그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변방에서 괄목상대로의 발전
BRICs라는 단어가 차츰 눈에 띄기 시작했다.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 미래의 경제 판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거나 발전의 속도가 놀라워질 거라는 예상을 하게 하는 나라들의 이니셜인데, 물론 이전까지는 세계무대에서 특히나 경제측면에서 거의 주목받지 못한 나라들이다. 이들은 현재 세계인구의 43%, 면적의 29%, GDP 규모의 8%를 차지하고 있으며, 실질구매력은 구성국가 모두 세계 10위권 내에 드는 신흥 거대 경제권이다.
이처럼 세계 경제는 이미 미국과 일본, 유럽연합 등을 벗어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있고 한국기업들은 이러한 기회의 땅에서 시장선점을 위한 노력을 이미 시작했고 그에 따른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변방은 가고 세계는 더 커졌다.
문화에 몰아닥치는 세계화 바람
우리는 현재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 들어서면서 무가지 “Metro"를 집어 들고 ”Sony Vaio"를 펼쳐 새로 온 메일을 살핀다. 점심식사는 이태원 정통 인도 음식을 먹고 회사 앞 이탈리아 브랜드의 에스프레소를 후식으로 즐긴다. 그리고 저녁엔 와인바에서 새로 들여 온 칠레 와인을 맛보기로 약속이 정해져 있다. 물론 하루를 이렇게 지내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만은 가능은 하다는 “예”를 들어의 하루 일과다.
요즘의 우리는 어렵지 않게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이란영화 DVD를 그리 어렵지 않게 손에 넣을 수 있고 인도풍 샌들과 모로코 풍 조끼, 혹은 아프리카나 남미의 해변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화려한 컬러의 비치의상을 심심치 않게 발견하게 된다.
이런 경향은 생활밀접형 문화에만 국한 되지 않는다. 살사나 탱고 등 남미의 춤과 음악을 직접 배우고 즐기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고 여행지 또한 단순히 유럽이나 미국, 괌 사이판 등지의 일반적인 지역을 벗어나 남아메리카, 인도, 티벳, 몽골 등 다양한 세상을 맛보려는 시도들이 더더욱 늘어나고 있다.
먹고사니즘에서 삶의 質로의 성숙
언론들은 눈만 뜨면 경제가 죽어가고 있다고 하고 민생이 어렵다고 침 튀겨가며 외친다. 물론 저소득층의 어려움이나 시간이 갈수록 외곽으로 밀려나고 있는 도시빈민들의 문제라면 맞는 말이다. 문제는 (언론 시각의 근본원인이 무엇인지는 꼬집어 얘기하기 힘들어도) 사회 전체의 문제로 일반화해 버린다는데 있다.
하지만 막상 사회 안에서는 위에서의 얘기처럼 문화가 형성되어가고 있다. 세계문화. 이는 당장 먹고살기 힘든 문제를 눈앞에 두고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이다. 일단 춥고 배고픈 것이 해결되고 나서야 여유를 갖고 주변을 둘러볼 수 있어야 보이는 문화의 문제이고 새로운 경험에 대한 욕구이다.
우리나라의 소득은 실질적으로 올라가고 있고 소득에 따른 소비의 범위도 날로 다양해져가고 있다. 여론을 빙자한 언론의 근시안적 시각만 좇아가다가는 어느 날 맞닥뜨린 거대한 문화의 충격에 기업들은 나동그라질지 모른다.
Fusion, 그리고 Future
모든 상황과 그 전개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구성원들의 유기적이고 총체적인 관계에 의해 생겨난다. 즉, 정치와 금융이 불가분의 관계이고 감기가 유행하는 것과 극장에 손님이 줄어드는 일 또한 따지고 보면 굉장히 밀접한 관계에 의한다.
모든 기업과 조직, 그리고 사람들은 늘 눈앞의 상황인식에만 급급하다. 그 중 한 둘의 기업과 조직과 사람은 눈을 들어 전체를 본다. 전체를 봐야 하기에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시간을 들여 파악을 한다. 오랜 시간 파악을 하고 내린 결정이기에 실행은 단호하다.
우리나라의 환경은 이제 우리나라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스스로 세계화 되어가고 있다. 브라질의 삼바가 친숙하고 칠레 와인이 반갑고 몽골의 때 묻지 않은 하늘이 그립다. 이처럼 세계 전체를 아우르고 있는 우리나라의 마케팅 환경이란 걸 기업은 절실하게 깨달아야 한다. 기업 스스로 자신들은 소비자와의 관계에 그리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고 너무나 굳게 믿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모든 것을 융합(Fusion)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미래(Future)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