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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부] 한 래현
나 경재는 방학이면 외갓집에서 살다시피 했다. 3살적부터 외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대구 반월당 인쇄소 집을 나서서 대구역까지 걸어갔다. 그리고는 기차에 올라타서 왜관에 도착한 나 경재는 외갓집을 가기 전 먼저 들르는 곳이 있었다. 낙동강 나룻배를 타기 전에 가는 곳이다.
그 집은 나경재의 외할아버지인 한 래철 여동생 한 래현 집이다. 한 래철 에게는 세 명의 여동생과 막내 남동생이 있었다. 일찍이 큰 집으로 양자를 갔기에 나머지 동생들을 잘 챙겨 주지 못한 것이 나중에도 항상 마음에 걸려서 마음 아파하였다.
한 래현은 혼자 사는 과부다. 1남 4녀의 자식이 있었지만 모두 자수성가하여 모두 대구에 나가서 열심히 살고 있다. 입 하나 건지기가 힘든 시절, 모두 뿔뿔이 흩어져서 동가식서가숙을 하였다. 하지만 모두 기술을 가지고 큰 딸과 둘째 딸은 일찍이 시집을 가서 입을 들게 되고, 막내딸은 미용기술을 배워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게 되고. 외아들인 제일 막내는 밥만 먹여주는 조건으로 대구에서 열심히 시계방에서 시계 수리 기술을 익히게 되었다.
그래서 명덕 로타리에서 오래 동안 주인이 하던 시계방을 인수 받아 시계방 사장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장재원은 그 때의 기쁨을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어릴 적 아버지가 빨갱이를 한 탓에 고향집에서도 손가락질 받고 학교도 제대로 다녀보지도 않고 국민 학교만 다니는 둥 마는 둥 마친 학창시절 친구들이랑 아버지 없는 호로 자식이란 소리를 들을 때마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싸웠다.
왜관 들 판을 뒹굴면서도 그렇게 배고픈 시절을 잊지 못했다. 커서 반드시 배고픔을 이기고 배불리 먹고 말 것이라는 희망을 잊지 않았다. 그러던 재원은 장가도 가기 전에 드디어 사장님으로 출세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날의 고통을 모두 잊을 수 있는 날이기도 했다. 그 장 재원에게 나 경재는 엄마의 손에 이끌려 자주 왔다. 그래서 그 당시 잘 생긴 아저씨를 엄마가 왜 그렇게 시간만 되면 찾아 왔는지 커서 그 이유를 알 수가 있었다.
배고픈 동생을 지켜 주고 싶었던 엄마의 마음이었으리라.
하지만 아버지가 공산주의자라는 멍에가 평생 동안 경찰이 시계방으로 찾아오면 뇌물을 바쳐야 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계속적으로 이어진다. 정보담당 형사는 허구한 날 찾아 와서 돈을 뜯어 갔다. 단 돈 몇 푼이라도 쥐어 주면 괴롭히지 않고 순순히 갔다. 안 그러면 보복성 괴롭힘이 시작된다. 형사가 오면 그냥 돈을 쥐어 주면 아무런 말없이 돌아간다. 명절이면 명절. 시도 때도 없이 돈을 뜯으러 온다.
어린 경재는 가끔 명덕로타리 시계방에 갈 때마다 가끔 형사가 왔다가 돈을 받아서 가는 모습을 보곤 했다.
장 재원 남매들은 그렇게 굶고 하던 시절을 거쳐서 이제는 얻어먹지 않고 살게 되었다.
한 래현 남편 장 동철은 일제시대 때부터 심취한 곳이 있다. 동네 형들이랑 같이 매일 다니던 곳이 있었다. 공산주의자들의 모임이었다. 당시로써는 잔학한 일제시대 때의 가진 자들에게 대항 할 수 있는 유일한 길로 보였다. 장 동철 아버지도 종이었고, 할아버지도 종이었다. 종의 신분으로 태어난 장 동철도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밑에 사람 있는 그리고 그 자들은 항상 위에서 떵떵거리며 놀고먹었고, 자기 같은 사람들은 죽자고 일해도 먹을 것이 없었다.
불만이었다. 대지주들은 타고 날 때부터 부자다. 우리 같은 종을 수 십 명씩 데리고 있었고, 자기 마음대로 사람들을 패 죽여도 항의할 수 없었다. 장 동철 아버지는 억울하게 멍석말이로 맞아 죽었다. 누명을 쓰고 주인에게 억울한 사유로 대항했다는 단지 그 하나의 이유로 종들의 손에 멍석말이로 죽었다.
당시는 멍석에 말아서 종들이 몽둥이를 들고 사정없이 때린다. 한 참을 때린 후 멍석을 풀고 문 밖으로 내친다. 장 동철의 어머니는 장 동철의 아버지를 방으로 끌고 가서 간호 하였지만 장독이 워낙 세서 한 달을 끙끙 앓다가 결국은 세상을 떠났다. 장 동철이가 한 참 개구쟁이였을 때다. 밑으로 동생들이 줄줄이 셋이나 있었는데..........
어린 장 동철은 아버지가 어떻게 맞고, 어떻게 고통을 받다가 어떻게 죽었는가를 생생히 옆에서 지켜보았다. 어린 마음에 주인을 적개심으로 노려보게 되었다.
울면서 아버지를 살려 달라고 애걸복걸 했었다.
“아부지 좀 살려 주이소 예? 우리 아부지 살려 주이소 주인 나리 마님 예?”
울고불고 매달렸다. 하지만 주인은 그 어린 장 동철의 애걸복걸한 모습이 보기 싫다고 종들에게 내치라고 그래서 문 밖으로 내동댕이 쳐졌었다.
그러니 장 동철의 마음은 어릴 적부터 품은 적개심이 세상을 살아 갈 때마다 잊혀지지가 않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장 동철의 가슴은 엉어리져 있었다. 청년이 되어서 종 신분에서 탈출할 수가 있었지만 어릴 적 아버지가 맞아 죽는 모습, 어머니도 병들어서 죽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그로써는 속 깊숙이는 항상 가진 자에 대한 적개심에 불탔다.
그래서 심취한 곳이 공산주의였다. 이 번 대구 폭동 사건으로 전국적으로 번질 때 장 동철은 한몫하였다. 자기가 찍어 놓은 최 부자 집을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최 부자를 작살내었다. 일제 때 일본 놈에게 아부한 놈이라는 이유다. 게다가 사람들에게 소작을 주면서 모질게 한 죄다. 다리 두 개를 다 부러뜨렸다. 다시는 걷지 못하게 했다.
그 외에도 대구 폭동 사태로 여기저기서 순사를 잡아서 죽일 때였다. 장 동철이 앞장 선 무리들에게 잡힌 순사가 있었다. 당연히 장 동철이 앞장을 서서 순사의 목을 작두로 자르는데 앞장섰다. 그 모습을 마을 사람들은 지켜보았다.
하지만 장 동철은 집안 식구들에게만 자기가 하는 짓을 알리지 않았다.
공산주의에 심취한 한 래현 남편 장 동철은 나중에 한 래현과 결혼을 하고 자식을 넷이나 키울 동안 제대로 남편 구실, 아버지 구실도 하지 못한 채 그 이후로 항상 경찰과 우익 청년단을 피해 다녔다.
때는 대구 폭동 사건이 있은 연 후였다. 토벌군이 투입되고 좌익은 세에 밀려 도망 다닐 때이다. 우익 대한 청년단의 무리들은 한 래현 집을 급습하였다. 밤사이 재빨리 도망간 장 동철을 잡기 위해서다.
장 동철을 찾지 못한 청년단은 한 래현을 둘러쌓다. 아무 말 없이 몽둥이로 한 래현을 정신없이 내리쳤다. 여기저기서 피가 튀었다. 온 몸에서 피가 흘렀다. 머리가 깨지고, 정강이가 깨지고, 무릅이 깨졌다.
“어디로 갔어? 불어, 안 죽을려면.”
그냥 내리친다. 사정도 봐 주지 않고
“아이구구! 난 몰라. 밤에 말도 없이 도망간 사람 내가 우에 아노? 어디 간다고 이야기는 하고 갔나. 아이구구 나 죽네.”
그렇다 어디 간다고 이야기 한 적이 없다. 그냥 훌쩍 떠났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청년단은 화풀이 겸 그냥 죽으라고 개 패듯이 몰아친다. 죽을려면 죽으라는 뜻이다.
하지만 재수 없이 웬 놈이 그만 한 래현 뒷머리를 몽둥이로 정통으로 내리쳤다.
“아악!” 비명 소리와 함께 한 래현의 오른 쪽 눈알이 툭 튀어나왔다. 신경이 달린 핏덩어리 눈알이 눈을 빠져나와 튀어 나온 것이다. 순간적으로 한 래현은 그 눈알을 오른 손으로 재빨리 집어넣었다. 고통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본능적으로 몸을 보호하려고 처절한 사투를 하고 있었다.
온 얼굴에는 피 범벅이 되었다. 그렇게 사정없이 내리치던 청년단은 기절한 한 래현을 보고는 죽었다고 생각하고는 그 자리를 떴다.
그렇게 헤어진 장 동철과 한 래현은 결국은 지금까지 만나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살아 있으면 지금쯤 80이 넘은 나이다. 북에서 살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하지만 한 많은 세상 자식들을 키우느라 아무런 생각도 없이 열심히 살았다. 그 삶의 현장을 나 경재는 외할머니 손을 잡고 항상 드나들었다. 왜관 읍의 시장 모퉁이의 한 주막집이었다.
국밥도 팔고 대포도 팔고 그렇게 연명을 하고 지냈다. 당시에는 대접에 하나 가득 막걸리를 담아 주고 김치 한 쪽을 건네주면 한 끼 식사가 된다. 그렇게 해서 20원도 받고 30원도 받고 했다.
배 시간이 되면 한 래현 집에서 기다리다 나룻배를 타기 위해서 낙동강 변 백사장으로 내려간다. 그러면 기다리던 많은 사람들이 나룻배에 올라탄다. 지금 생각해 보니 한 50명은 족히 되는 사람들이다. 나룻배는 긴 장대를 사용해서 강을 건넜다. 장대로 강바닥을 짚어면서 건너갔다. 몇 명의 사공이 힘들게 배를 몰았다.
배를 건너면 한 이 십 여리 길을 외할머니 손에 붙들려 걸어갔다. 나 경재는 그래도 그렇게 힘들게 걸었던 그 곳이 현재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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