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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註) '신자유주의'라는 화두를 놓고 동반자살님과 애널리님이 온과 오프에서 토론을 계속하고 계십니다. 인터넷진지에서 두 분의 의견을 각각 편집하여 소개해 드립니다. |
'신자유주의'에 대해 애널리님과 엊그제 모임에서 잠시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시간이 짧아 진지에서 다시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신자유주의와 노동
얼마전 노통이 국민과의 대화에서 '좌파 신자유주의'를 하겠다고 해서 세간의 웃음이 된 듯 싶습니다. 정신 없이 사는 동안 그런 일이 있었더군요. 못할 것도 없겠지만 그다지 재미있는 조크는 아닌 듯 싶습니다. 어제 이정우 특보는 '우파는 좌파라고 좌파는 신자유주의라고 비판'한다고 하던데요. 그러고 보면 그런 것도 같습니다.
일단.. 경제학에서 말하는 주기적인 경기 파동이나 기타 여러가지 요소의 경제적 위험들을 제거하는데 신자유주의 정책들이 효과를 본 것은 사실입니다.
일례로 미국이 불황없는 장기호황을 10년 이상 경험하고 있고, 한국이 IMF를 강력한 정부 정책으로 돌파한 것 역시 신자유주의 성향의 정책이죠. 노정부 들어서도 2003 카드대란을 억지로 틀어막은 것도 역시 신자유주의적 정책이라고 봐야 겠습니다.
그럼.. 우파들이 쌍수를 들어 환호해야 하는데 이것들은 노정부가 좌파정부라고 공격해 대고 있습니다. 그럼 좌파가 아닐까요.
우리는 OECD 평균인 40퍼센트 수준의 복지예산 규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연히 늘려야죠. 내년 20퍼센트의 증액을 원하는 정부안을 여당은 반대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복지 확대라는 좌파정책을 지향하는데 여당은 반대하네요.
현실은 여기까지 하고 긴 흐름을 보겠습니다. 흔히 서구유럽을 복지국가라고 합니다. 이는 자유주의 국가에 좌파적 분배의 역할을 강조하다 보니, 국가가 재정수입을 늘리고 - 세금을 왕창 걷고 -, 국가가 분배의 역할을 하는 - 복지를 왕창 늘리는 - 모양새입니다.
그러면서도 경제체제는 자본주의를 취하고 있죠. 어찌 보면 복지국가의 반동 형태로 신자유주의가 득세를 하고 있다고 봐야겠습니다.
문제는 다양한 사상의 경쟁 속에서 신자유주의와 복지국가, 좌파와 자유주의, 신좌파 등등이 경쟁하는 가운데서 정책이 선택되어야 한다는 거죠. 따라서 한 때 유시민 장관이 주장했던 이념정당으로의 분화가 우리 정치역사상 필수입니다. 이념시장에서 좌판을 깔아야 경쟁을 하든 선택을 받든 할 거 아니겠습니까.
제목으로 돌아가서..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는 기업이 노동시장의 유연성도 보장받아야 하지만, 때로는 노동시장의 외면도 각오해야 합니다. 유니언샾의 강화, 복수노조의 인정, 자유로운 파업의 보장 등으로..
이번 포스코 사태의 경우에도 보듯이 서로의 권리와 이해가 부딪쳤을 때, 기업은 절대 손해보지 않는 건 신자유주의가 아니죠. 즉 고용권이 강화될 수록 노동권도 강화되는 것이 신자유주의죠.
미국 노동자들이 대량해고가 일상화되어 있는데도 왜 과격시위를 하지 않을까요? 그건 회사가 망하지 않으면 다시 복직이 보장되어 있고 - 지엠대우처럼 광고할 꺼리가 아니라는 거죠 - 해직기간에도 해고수당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해외투자를 받으려면 노동시장의 유연성도 확보해야 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복지정책도 같이 가야합니다. 그러니 당연한 정책을 좌파는 신자유주의라 비난하고 우파는 빨갱이라 비난하는 거죠.
노무현을 어떤 한가지 이념으로 규정하는 것은 그야말로 '나 대학나오고 유학도 갔다왔지만 아무것도 몰라요'라고 커밍아웃하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노무현이 FTA 하고 해외파병한다고 비난하는 지지자들이 많습니다. 유시민은? 유시민은 1999년 단행본 인물과사상 겨울호에 '나 좌파하고 싶다'고도 글을 쓰고, 2001년 월간 인물과 사상 1월호에는 인터뷰를 통해 '정치와 사상에서는 리버테리안, 경제와 사회에서는 리버럴이다' 라고 밝힌바 있습니다. 관심있는 분은 두 책을 찾아 보시구요. 모르죠.. 그새 달라진 점도 있겠죠. 참고용입니다.
유시민이든 노무현이든 강준만이든 어떤 텍스트는 그 텍스트에도 의미가 있지만 더 큰 의미가 숨겨져 있고, 너무 모른 상태에서 그 텍스트를 접했을 때는 오독의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따라서 어찌 보면 좃선이 좃선인 것은 일단은 무식해서라고도 볼 수가 있겠습니다. 안됐죠.
웹 서핑 중에 찾은 자료인데 비교적 정리가 잘 된거 같아 올립니다.
우선 첫째로, 신·구의 자유주의는 타도하려고 하는 대상이 다르다.
고전적 자유주의의 상대는 절대왕정이었고 옛 중상주의체제였지만, 현대의 신자유주의가 격투하는 상대는 단적으로 말하면, 전후의 복지국가이다. 앞에서 언급한 갬블은 신자유주의의 이러한 특징에 관해서,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체제와 미국의 뉴딜이나 '위대한 사회'계획의 특징이었던 사상·관행·제도의 다수를 거부하는 것이 신우익 구성원 모두에게 공통점이다"라고 설명했다.
신자유주의의 대표적 논객인 M.프리드만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19세기의 자유주의자는 자유를 확장하는 것이 복지와 평등을 촉진하기 위한 가장 유효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고"있었지만, 바야흐로 20세기의 변절된 자유주의자들은 "복지와 평등의 이름으로, 실로 고전적 자유주의자가 반동적이라고 싸웠던 국가의 간섭과 온정주의적인 제 정책의 부활을 편들어" "진정한 자유주의자를 반동적이라 지탄하기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런데 "자유의 유지와 확장은 오늘날 두 방향으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다고 보지 않으면 안된다. 하나는 "우리를 장사(葬事)지내려고 하는 크레믈린의 악당으로부터 오는 외부적인 위협"이고, 또 하나는 "개혁을 바라는 성의와 선의의 사람들로부터 오는 내부적인 위협"이다.
그렇다면, 신(新)=진정한 자유주의자로서의 프리드만이 싸우지 않으면 안되는 상대는 다름 아니라 복지와 평등의 이름으로 국가의 간섭을 불러 일으킨 현대의 변질 자유주의적 개혁파, 또는 크레믈린의 악한과 쌍벽을 이루는 자유주의 사회 내부의 위협, 결국 전후 복지국가 체제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신자유주의는 전후 복지국가 해체전략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신·구 자유주의의 두 번째 차이는, 시장원리를 철저화할 때의 방법의 차이이다.
고전적 자유주의가 시장원리를 침투시킬 때에 이용할 방법은 국가개입의 폐지, 즉 자유방임적 정책이었지만, 신자유주의는 오히려 '강한 국가'를 배후로 하여 시장경쟁 질서를 권력의 힘으로 강화하려고 한다. '강한 국가'의 뒷받침을 통해서 경쟁질서를 유지하려고 하는 이 경향은 일찍이 '재배식물'로서의 자유주의로서 설명되었다.
"시장경제는 '자생식물'이 아니라, 그 성장과 성숙에는 극진한 배려를 요하고 모종판을 구비하여 비료를 주고 잡초를 제거해주어야 하는 '재배식물'이다." '재배식물'로서의 시장원리가 무사히 육성되기 위해서는 자유방임이 아니라 강한 국가에 의한 권력적 지원이 필요하게 된다. 뒤에서 보는 것처럼, 현대 일본의 신자유주의가 한편에서 시장원리를 치켜세우면서도 자주, 권력과 한통속이 되고 부끄럼 없이 아주 쉽게 국가의 가호를 구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바로 이 때문이다.
세번째로 다른 것은, 신·구의 자유주의가 과제로 하는 목적 내지 테마의 차이이다.
이 차이는 시장원리가 작용하는 역사적 조건의 변화로부터 생긴다. 고전적 자유주의가 노렸던 것은 소상품생산자들이 시장을 무대로 하여 자유로운 경쟁을 전개하는 근대 시민사회의 실현이었고, 당시의 시장원리는 근대 민주주의의 담당자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신자유주의가 옹호하는 시장원리는 독점단계의 그것이기 때문에, 레닌의 <제국주의론>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시장은 자주, 독점적 강자가 중소의 약자를 교살하는 무대로 전화된다. 소생산자의 영업의 자유나 시민의 고전적 자유를 실질화하기 위해서는, 약육강식이나 우승열패의 법칙이 관철되는 시장원리에 제한을 가하는 공적규제나 인권보장의 민주주의 사회제도가 불가결하게 된다.
이 때에 시장원리의 철저화를 주장하는 것은 시민적 자유를 형해화시킨다든지 복지제도들을 제한하기 위한, 말하자면 '트로이의 목마'의 역할을 신자유주의가 수행함을 의미할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현대의 시장원리는 근대 민주주의와는 동떨어진 기업주의의 별명, 특히 대기업주의의 '트로이의 목마'로 전화된다.
데리다나 푸코가 해체를 얘기한다고 해서 해체가 되는 건 아닙니다. 길지 않은 글에서 이념과 사상의 무가치를 반복해서 지적하는 것은 성급한 것 같군요.
애널리님 글에 답함
신자유주의는 경제 뿐 아니라 사상과 문화, 사회 전반에 골고루 전파될때 비로소 효율성을 띄게 됩니다. 모든 사상과 이념, 신자유주의마저도 결국 인간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간과한 듯 하군요.
애널리님의 글 행간에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생각보다는 개인주의에 대한 것이 더 광범위하게 깔려 있습니다. 저는 개인주의에 대해 반대하지는 않습니다만 그다지 얘기하고 싶은 주제는 아닙니다. 신자유주의건 구조주의건 해체주의건 그건 집단 혹은 사회에 관한 얘기지 개인에 관한 얘기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카드채 문제는 카드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애널리님은 제글의 댓글에서 도덕적해이를 얘기하면서 학생을 예로 들었는데.. 도덕적해이는 카드사의 문제이고 고금리라고 해서 덮석 카드채를 인수한 금융기관의 문제입니다. 이건 인식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의 문제입니다. 만약 애널리님 같으면 용돈 타 쓰는 학생이나 수입이 없는 주부에게 다른 신용카드가 있다고 해서 애널리님의 돈을 빌려주겠습니까?
엘지카드채를 산업은행이 인수한 것이 '억지로'가 아니면 뭐가 '억지로'겠습니까? 시장의 붕괴를 막는 것이 신자유주의 정책이냐, 시장이 붕괴하더라도 자유방임하는 것이 신자유주의 정책이냐는 정답이 무엇일까요? 애널리님의 글에서도 그 정답이 나와있는거 같은데요.
시장이 무너진다면 그 시장을 다시 세우는데 드는 비용을 계산하고 산업은행이 엘지카드채를 인수하는데 드는 비용을 계산해서 후자가 싸게 먹히니까 산업은행이 엘지카드채를 인수해서 대주주가 된거죠. 국가전체로 본 효율성이죠. 옳고 그른것이 아닙니다.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적 선택입니다.
끝으로.. 솔직히 더 이상의 토론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답변 주시더라도 제 글은 여기까지입니다. 덕분에 이틀동안 머리를 많이 회전시켰습니다.
(토론) 신자유주의와 현실 - 동반자살님에게 / 애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