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를 정치로, 기업을 정당으로, 제품을 정치인으로, 고객을 대중으로 치환해서 보셔도 될 듯...
Trend에서 Anti-Trend로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이른바 ‘유행’이라는 것이 있었다.
산으로 놀러가도, 학급에서 장기자랑을 해도, 술 한 잔에 술상을 두드리며 잔뜩 폼을 잡고 부르던 노래가 모두 다 남진 씨의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였다. 가정 형편이 좀 되는 녀석들은 죄다 부모를 졸라 나이키 운동화를 사 신고 뽐을 냈고, 여인네들은 결혼유무와 관계없이 모두들 미니스커트를 걸치고 거리를 활보했다.
너무 오래전 얘기일까? 그럼 조금 더 현재에 가까운 과거로 거슬러 올라와서 그 때의 유행은 어땠는지 살펴보자.
East Pack 가방 아니면 들고 다니지 못했던 사람들이 나중엔 MCM백으로 슬그머니 유행이 바뀌었고 그 또한 유행의 라이프사이클을 벗어나지 못했다. 밀리터리룩이 유행하면 남자든 여자든 죄다 거리의 군인이 되었고, 발라드가 유행을 하면 TV,라디오 할 것 없이 들려오는 노래는 모두 다 발라드였고 댄스곡이 유행할라치면 거리에서, 학교에서 모두들 어깨를 들썩였다.
유행은 단순히 유행으로 시작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찌보면 사회적 생존을 위한 수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유행이 사라져 버린 것이 유행
“99년에 미국에 나갔다가 작년에 들어왔어요. 나갈 때에는 모두 다 똑같은 머리스타일에 똑같은 힙합바지 입고 다녀서 촌스럽다고 생각했었는데, 6년 만에 한국 와서 보니까 엄청나게 다들 스타일리쉬해지고 외국물을 많이 먹어선지 패션들도 과감해 진 것 같아요.”
- 패션디자인 전공, 23세
특히나 유행을 많이 타는 패션업계에선 이렇게 말들을 한다.
“요즘은 유행이 없는 게 유행이에요.”
말의 뜻은, 그렇다고 유행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 유행의 줄기들이 굉장히 많아졌다는 얘기다. 요즘의 패션은 대세의 흐름보다 저마다의 개성이 훨씬 더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고 게다가 패션에 대한 안목과 지식 등이 예전과는 비교가 되지 못할 정도로 발달해 있다. 과거엔 패션리더라는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했지만 지금은 거리 대부분의 사람들이 패션리더다.
그들은 너무 대중적인 브랜드는 피하고 백화점 보다는 동대문 등의 야시장에서 발품을 팔아 자기 것을 건지는(?)것을 즐긴다. 최근의 20대가 원하는 것은 대량생산의 아이템이나 복제가 가능한 것으로 자신을 꾸미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유일한’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고 있다.
월드컵을 맞아 똑같은 붉은 티셔츠마저도 자르고 도려내고 갈아서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어 입고 자신을 드러내는 장면을 2002년보다 더더욱 자주 맞닥뜨리게 되는 것만으로도 우린 잘 알 수 있다.
과거에는 그저 만들어진 것을 받아들이기만 했던 영화나 연예인에 대한 태도 또한 마찬가지다. 인터넷에서의 ‘패러디’문화가 대표적인 예이고 이 ‘비틀기 문화’는 이미 인터넷은 물론 오프라인에서도 나름의 문화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소비에도 유행은 사라져가고 있다
소비문화를 들여다보면 이전의 세대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여전히 명품브랜드를 선호하긴 하지만 예전에 고집하는 브랜드가 한, 두개로 한정적이었다면 지금은 각 아이템별로 선호하는 브랜드의 종류가 훨씬 많아졌다. 그리고 의사결정을 할 때도 인터넷과 지인을 통해서 얻어낸 정보를 따져가며 결정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이렇게 소비자가 더 많은 정보를 갖게 됨에 따라, 무조건적으로 유명브랜드만을 고집하기 보다는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브랜드를 선호하게 되었고 이런 행태가 보편화되면서 브랜드가 가지는 거품 또한 서서히 빠지는 경향도 보인다.
‘복제된 개성’이라는 말이 있다. 젊은이들이 개성이 강한 듯 보이지만 그것이 진정한 개성이라기보다는 사회나 기업 등이 만들고 유통시키는 조작된 개성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개성은 TTL광고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이른바 ‘막가파식’ 개성과는 그 궤를 달리한다. 수많은 정보를 통해 스스로 자신만의 이미지를 찾아내고 능동적으로 가꾸어가는 철저하게 세분화된 개성다운 개성이랄 수가 있는 것이다.
결론
한국처럼 동질성이 중요시되는 사회에서 Anti-Trend는 매우 기이한 일이라 볼 수 있다. 이는 그간 한국사회를 살펴 온 많은 트렌드 관련 논문이나 서적에서 밝히는 바와 같이 한국인의 특징 중 하나인 ‘동조현상’과 정면으로 대치하기 때문이다.
남들이 로또를 사면 나도 사야하고, 남들이 디카폰을 들고 다니면 나도 들고 다녀야하고, 남들이 명품을 들고 다니면 나 또한 짝퉁이라도 들고 다녀야 하는 상황에서 젊은 층들로부터 자신만의 취향과 개성이 더 귀하게 여겨지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향후 이런 경향은 반드시 소비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며 이는 곧 소품종 대량생산의 시대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의 시대로의 이동을 의미한다.
은행에서 우리가 하던 일은 예금, 적금, 송금, 세금납부 등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제는 은행에서 증권을 하고 보험도 든다. 하지만 이것으로 다품종 소량생산의 대열에 들었다고 볼 수 있을까? 개성을 중시하고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최대의 가치로 여기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바야흐로 창의적인 제품과 영업이 필요한 시대가 도래 했다.
혹시 아나? 귀사의 그 어떤 창의적인 상품이 지금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불같은 유행을 불러일으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