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죽하면 이 정권 장관까지 비판하겠는가"
전시작전권 환수 문제를 둘러싸고 조영길 전 국방부 장관과 김희상 전 대통령 국방보좌관이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을 꼬투리 삼아 중앙일보가 올린 사설의 제목이다.
모든 사회현상은 이면까지 파헤치지 않으면 진실 혹은 본질에 접근하기가 어렵다.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장관까지 나서는 것을 보고 전시작전권 회수가 큰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도 생겨날 수 있을 것이다. 정말 고단수의 정치적 공세이다. 그러나 교활한 수이다. 교활하다는 것은 단순히 얍삽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본질이 다른 곳에 있음을 조중동이 이미 알고 있다는 것에 있다.
1997년 정권교체 이후에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에 이르는 동안 개혁의 지진부진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품고 있다. 개혁의 후퇴는 많은 지지자들이 정권의 지지를 철회하는 계기가 되었고, 정권의 추진력 부족은 이른바 386 아이들 무능하다는 식의 덧씌우기 공작까지 설득력을 얻게 하였다. 여기에 좌파 이데올로기 공세까지 붙이면 금상첨화가 된다.
잠깐 러시아를 이야기해보자. 지금 러시아에는 소련 시절 과거의 향수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한다. 사실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조국이 어느 날 3류 국가로 전락했다는 사실은 국가적 자존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치욕에 가까운 일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향수를 부채질하는 것은 새로운 자본주의 시스템에 부재에 있다. 소련이 살아있던 시절에는 KGB가 모든 생필품의 배급 시스템을 통제하고 있어서, 기초 생활 물자 부족 문제는 존재했어도 물건이 제 때 도착은 했었다고 한다. 지금 러시아는 택시를 타도 택시요금을 흥정해야 하고, 모든 곳에서는 급행료라는 뇌물을 주어야 하는 시스템이 붕괴되어 있는 사회이다. 1991년 붕괴 이후 약 15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시스템의 정착은 아직도 요원하다고 한다. 새로운 시스템의 구축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그나마 러시아가 살아가고 있는 것은 유가 상승이라는 정말 대외적 요인에 의해서라고 한다.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개혁 시스템의 구축이라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다. 심지어는 자본주의적 개혁마저도 금방 될 듯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러시아의 사례는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소련 공산당이 그대로 존재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단군 이래 반만년 역사 동안 선거라는 방식으로 집권세력을 교체한 것은 김대중 정권이 최초의 일이다. 그것도 자민련과의 공동정권이라는 틀 속에서 살짝 대통령만 바꾼 것이다. 모든 관료시스템과 편제는 모두 그대로인 상황에서 대통령만 살짝 바뀐 것이다.
현 참여정부의 정책을 날카롭게 비판한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최장집 교수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라는 책에서 관료집단의 자율성을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에서 가장 큰 문제점의 하나로 꼽았다. 이외에도 협소한 정치 대표체계, 보수적인 언론 환경 등을 민주주의가 위기로 봉착하게 된 원인으로 들고 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노무현 대통령은 언론과의 싸움을 시작하고, 대연정을 통한 선거구제 개편, 관료 집단 내에서 개혁세력의 성장을 언급한 것인데, 도무지 최장집 선생은 칭찬을 안 해주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우리 사회에서 보수집단의 헤게모니는 강고하다. 특히 그 강고한 헤게모니의 중심에는 바로 관료 집단이 있다. 현 관료집단은 박정희 정권 등장 이후 성장하기 시작하여 민주화된 우리나라에서 완벽한 자율성을 구가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권위적 대통령제의 유산을 십분 활용하여 관료시스템이 저항을 못하도록 하였다. 검찰권을 독립시키지 않은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여기에 호남이라는 지역적 기반이 있었기 때문에 기존 관료 시스템에서 소외받던 호남세력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고, 이로 인하여 관료 시스템 내부에서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비난하지 못하게 하는 기제로 작용하였다. 생각해보자. 그래도 인구 분포만큼은 포진해 있는 호남사람과 여기에 승진에 특혜를 받은 호남 사람은 당연히 국민의 정부의 최대 지지세력이 되었을 것임은 불문가지의 일일 것이다.
허준영 전 경찰청장이 참여정부에서 승승장구하다고 퇴임 후에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한 것은 유명한 일이다. 국민의 정부까지는 이런 일이 없었다. 심지어 경상도 출신들도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고위직들은 모두 새천년민주당으로 입당하였다. 허준영 청장은 자신의 생각과 한나라당의 정책이 일치해서 입당한다고 밝혔다고 한다. 웃기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그 전에 사표를 냈어야 한다.
조영길 국방부 장관은 비 올 때 노무현 대통령과 의장대 사열을 하면서 대통령이 비 맞는 것이 안쓰러워 장관이 직접 우산을 받쳐 줄 정도로 충성을 하였다. 그런 사람이 퇴임 후에 정권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이 비밀은 바로 박정희 정권 이후 30년간 보수적으로 성장해 온 관료시스템의 보수화에 있다.
조영길 국방부 장관은 아마도 처신을 조금이라도 노무현 정권의 코드에 맞췄다가는 역대 국방부 장관 모임으로부터 왕따를 당하게 될 것이다. 물론 골프 치는데도 껴주지 않을 것이다. 모르는 사람들은 이게 대수냐고 취급할지 모르지만, 자신이 평생을 바쳐온 조직으로부터 왕따를 당한다는 것은 사회적인 활동의 정지를 뜻한다.
내가 아는 전교조 출신 교장 선생님 한 분은 주위에 교장 선생님하고 만나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늘 젊은 선생님들 모임에 나온다고 한다. 교장이 되어서 매일 전교조 편만 들고 다녔더니 눈 밖에 나버린 것이다. 그러니 교장 모임을 해도 불러주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관료 시스템에서 정년퇴직을 하면 후배들이 가장 인사치레를 해 주는 것이 강연회에 강사로 불러주거나, 행사가 있을 때 외빈으로 초대받는 것이다. 한마디로 집에서 애 보다가 가끔 마실 나갈 일을 관료시스템에서 챙겨주는 것이다. 이런 챙겨줌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조영길 국방부 장관도, 김희상 국방보좌관도, 허준영 경찰총장도 자리는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받았지만, 자신들이 돌아갈 고향은 바로 평생을 바친 국방관료시스템, 경찰관료시스템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조직으로부터 왕따를 당하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이 참여정부와 대립각을 세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구나 지금처럼 정권재창출의 가능성마저 잘 안 보이는 상황에서 어디로 붙어야 할지 답이 뻔한 것이다.
다른 각도에서 이 문제를 또 바라보자.
조영길 전 국방부 장관과 김희상 전 보좌관의 문제는 바로 조중동이 늘 비판하는 바로 그 코드 인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불상사이다. 조중동은 대통령과 생각이 맞는 인사를 임명하면 코드인사라 비판하여 무력화시키고, 그렇지 않은 인사들이 임명이 되면 자신의 소신을 지키라고 신문에 써서 장관을 간접 조정하려고 한다.
이번에 임명된 김신일 교육부총리에 대해서도 조선일보는 칼럼성 기사를 통해서 평소의 소신을 지키라고 공개적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평소에 김신일 부총리는 현 정부 교육정책에 대하여 날카롭게 비판했다고 한다. 장관이 되고 나서 “의견과 정책은 다를 수 있다”면서 자신의 의견을 수습하기도 했다. 무책임하다. 정책의 실현가능성이 떨어지는 의견을 실현하라고 비판했다는 것은 어쩌면 논문 중복 게재와 맞먹는 정도로 학자적 양심을 저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내가 예상컨대, 만약에-그래서는 안 되겠지만- 내년에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노무현 대통령의 대부분의 정책을 계승하게 될 것이다. 국가 경영을 한다는 것을 한나라당은 정권 내놓은 지 몇 년 되지도 않아 까먹어버렸지만, 그래도 국가 경영을 맡아놓고도 그렇게 멍청하게 굴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에 노무현 대통령이 확실하게 코드인사를 했다면 이러한 일은 피해갈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정권 초에 코드인사라는 말도 안 되는 공세를 초창기에 제압하지 못한 것이 이러한 사태를 불러일으켰다.
사실 30년 군사정권 기간동안 성장한 관료 시스템은 민주화 이후 제압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다란 자율성을 띄게 되었다. 대통령이 국정원 권력을 무력화 시키고 검찰 권력을 독립시켰더니, 검찰권이 이상 비대해지는 부작용마저 나타나게 된 것이다. 대통령 측근들이 줄줄이 검찰 수사로 잡혀 간 것을 봐도 이러한 것을 여실히 알 수 있다. 정권의 뜻마저 거스르며 강정구 교수를 구속수사하려 했던 사태는 검찰의 권력이 민주화되지 못하고, 민주화 이후 이상 비대 권력을 누리고 있다는 확실한 사례이다.
그렇다고 이후 설령 정권 재창출을 한다 하더라도 일거에 관료 시스템을 개혁해 내기는 어렵다. 박정희가 한강 다리를 건너 권력을 장악하던 시절의 관료는 한 순간에 휘어잡는 것이 가능했지만, 민주화 시대에 이것은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고도의 자율성을 획득한 관료 조직을 정치 엘리트들의 힘만을 제압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별 수 없이 관료시스템의 점진적 개혁을 위한 정권 재창출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지금의 시스템으로 기존 관료 조직에서 장관이 일정 비율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다. 이 관료들의 전문성을 이겨내기가 민주화 운동을 한 정치 엘리트들이 제압하기는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관료 시스템 내부의 민주화 세력의 힘을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정권 재창출을 통한 관료조직의 지속적 장악을 시도해야 한다. 향후 10년 정도 정권연장을 하게 되면, 관료 조직 내에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존 관료 시스템에서 왕따를 당할까봐 무서워하는 조영길이나 김희상 같은 이들이 다시 나오지 않을 것이다. 독자 세력이 구축이 되면 이들끼리도 골프를 치고 술도 마시고 하다보면 개혁 진영에 붙었다고 왕따가 될 걱정을 안 해도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중앙일보의 사설과 같은 자가발전식 보도이다. 대통령과 손발이 맞는 사람을 장관에 앉히면 코드 인사라고 해서 온갖 흠집을 내 관료시스템에 안착하기 어렵게 만들고, 그렇지 않은 사람을 앉히면 자신의 소신을 지키라고 독려하고, 다시 이러한 사람들은 퇴임 후에 자신을 승진시켜 준 정권의 등에 칼을 꽂는다. 이러면 또다시 조중동은 오죽하면 이 정권에서 장관한 사람까지 이러냐고 보도를 때린다. 이러한 시스템에 대한 정교한 이해를 하지 않으면 참여정부의 어려움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이 정권 장관까지 비판하겠는가”
오늘자 중앙일보 사설의 제목을 다시 한번 되새깁니다. 이러한 이야기가 나오면 코드인사와 관료시스템, 조중동의 자가발전식 보도를 알려야 합니다. 이러한 보도에 대해 적절히 반박하게 되면, 참여정부를 욕하고자 보도한 신문을 역으로 비판할 수 있는 좋은 소재가 될 것입니다.
다른 이슈가 생기면 또 찾아뵙겠습니다.
ⓒ amhare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