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TV토론의 진정한 위력이다!
솔직히 내심 기대를 했지만 이 정도 수준과 재미를 동시에 담보하는 토론이 이루어질 줄은 몰랐다. 우선 신선한 발상으로 경선토론회의 수준을 한단계 업그레이드시킨 MBC 백분토론 제작진에게 격려를 보내고 싶다.
형식적 공평성에만 머물던 관행의 틀을 깨고 자유토론 방식을 과감하게 채택한 점이나 '5분 청문회'라는 방식으로 다양한 계층의 후보자별 궁금증을 다양한 채널과 방식으로 효율적으로 질문하고 답변을 유도한 기획은 정말 훌륭한 시도였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만큼 이번에 백분토론에서 새롭게 선보인 경선토론회 진행방식은 시간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매우 흥미롭고 긴장감 넘치는 토론을 이끌어 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대선후보 경선토론회라는 예민한 주제에도 여전히 흔들리지 않았던 손석희 교수의 토론논지를 적절히 따라잡는 진행도 포함해서 말이다.
앞으로 TV토론을 주관하게 될 각 방송사에서는 이번 백분토론에서 채택한 진행방식의 장점을 확실하게 벤치마킹해서 알맹이도 없고 검증도 미흡할 수 밖에 없는 이전까지의 시간만 잡아먹는 토론회 방식으로 전파낭비 국민짜증 등을 더 이상 유발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충고하는 바이다.
논객 유시민의 귀환
이번 토론을 지켜보신 분들이라면 다섯 후보 중 가장 인상적인 토론을 보여준 후보가 누구인지는 굳이 물어보지 않더라도 알 것이다. 사실 대선출마를 선언하고 예비경선 결과발표까지의 유시민 후보의 이미지 전환노력을 지켜본 분들이라면 내심 이번 토론회에서도 얌전하게만 임할 것으로 예측한 분들이 많을 것이다. (필자 역시 그런 예측을 했던 사람 중에 하나다)
초반부까지만 해도 그런 예측대로 가는게 아닌가 싶었는데, 젊잖게 토론을 진행하던 유시민 후보에게 손석희 교수가 무언가 반론을 한번 세게 펼쳐줄 것을 갑작스레 떠맡기자 “싸움을 심하게 해서는 안 되지만, 좀 다퉈야 국민들께서 보시기에 재미도 있으니까, 조금 해 보겠습니다.”라며 가벼운 돗자리를 깔더니 홍준표와 전여옥까지도 두려움에 떨게 하던 논객으로의 포스를 보여주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손학규의 지자체간 경제성장률과 일자리창출 대비를 통한 대이명박 경쟁우위론을 일단 손학규 이전 경기도지사 2명 시절의 통계치와 비교하며 쨉을 날린 후에 중언부언의 변명을 다 들어주고는 결정타를 먹인다.
한나라당에 있을 때도 지금 주장하는 비교우위를 여전히 가지고 있었음에도 이명박 후보의 1/5수준의 지지율밖에 기록하지 못한게 사실 아닌가. 우리 진영으로 넘어왔다고 해서 경쟁력을 제고할만한 새로운 논거가 있지도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이명박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요지로 말이다.
그 정도에서 그치려던 유후보를 손학규는 또 한번 자극하는 우를 범한다. 딴에는 무언가 반전꺼리를 찾는다는 마음이었겠지만 이전보다 더 센 카운터 펀치에 찌그러지고 만다.
무슨 발언인고 하니, “제가 열린우리당으로 왔습니까? 저는 모든걸 희생하고 결단해서 새로운 정치를 하고자 하는 세력을 모아 대통합 민주신당을 만든 것입니다” 뭐 이런 정도의 내용이었는데.
“손학규 후보님이 열린우리당을 만만하게 봤기 때문에 온 겁니다. 한나라당에서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온 겁니다. 우리 진영에서 쉽게 후보가 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온거 아닙니까? 진짜 문제는 손학규 후보가 이명박 후보를 못 이긴다는 점입니다. 손 후보가 이길 수 있다면, 제가 캠프에 가서 돕겠습니다” (손학규 분위기 파악못하고 유머로 대응한답시고 “제가 초청하겠..” 우물우물)
대략 손학규를 그로기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멍들게 해준 논객 유시민의 화살은 탄력을 받아 여지 없이 정동영에게로 향했다. 나름대로 그전까지 손학규가 당하는 모습을 즐겁게 지켜보며 어부지리를 취하고 있던 정동영에게 일명 ‘곶감항아리 아전인수식으로 빼먹기’ 비유 신공이 갑작스레 시전된다.
동시에 정치선배이며 한때 정동영을 알게 모르게 아껴왔다는 한명숙 후보의 젊잖으면서도 무게있는 ‘신의를 지키기 위해 손해볼 줄 아는 지도자가 되었으면 한다 ’는 조언이 더해지자 표정관리의 대가인 그 역시 당황한 기색과 함께 반박할 논리를 찾지 못한데서 오는 썩소가 만면에 살포시 피어난다.
손학규와 마찬가지로 약간의 시간을 통해 전열을 가다듬어 어줍짢은 반격(“정동영이 대통합을 위해 모든걸 걸고 노력할 때 유후보 당신을 포함한 열린우리당 사수파는 뭘 했습니까?”)을 날려봤지만 기다렸다는 듯 터져 나오는 유 후보의 논리적인 일갈에 스스로의 치부를 드러내는 망신을 당한다.
“국민은 정치인에게 정권 재창출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행복하게 해 줄 것을 기대합니다. 그러므로 세력 통합식의 정치인의 모임을 크게 환영하지 않습니다. 예비경선을 시작하고 나서 지지율이 조금씩 오르고 있지만 대통합민주신당 창당시점에 낮은 지지율을 기록한 이유가 거기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정동영 후보가 대통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출마하지 않겠다고 발언했었는데, 지금 대통합이 완성되지도 않았는데 왜 출마를 하셨는지요. 제가 전당대회의 결의를 존중해서 지금 신당에 와 있지만, 이 속에서도 구태 정치와 낡은 정치 문화를 바꾸고자 노력할 겁니다. 그러니 지금 대통합 했다고 해서 공이 많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논객 유시민의 활약은 토론이 종료되는 순간까지도 이어졌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마지막 발언기회가 유시민 후보에게 주어지자 정동영은 또 한번의 필살기를 변명도 못해 보고 정통으로 얻어 맞는다.
내심 여론조사 반영을 반대하는 자신의 논리에 동조하리라 믿었던 그 유시민이 ‘구글 해찬’ 얘기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손학규의 주장이 부분적으로 일리가 있다며 다음과 같은 뜻밖의 강펀치를 날린다.
“지금 예비 경선의 결과를 보면 동원선거의 징후가 있습니다. 예비 경선인단 중에서 어느 도에서는 경선인단이 전체 인구비율의 4% 정도 되는 곳에서 11% 정도가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민의를 심각하게 왜곡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선거인단에서 30%가 유령 선거인단으로 나타났습니다.”
“무조건 모른다고만 하지 마시고 캠프쪽을 점검해 보십시오. 정동영 후보께서도 이 점을 아셔야 하고, 단지 경선 1등만 하실 생각 하지 마시고 경선 이후에 모든 후보들이 당선자를 진심으로 도울 수 있도록 공정한 경선이 되도록 신경써야 합니다. 그래야 국민들도 좋아하십니다.”
(본 글 중 유시민 후보의 이번 토론회 발언내용은 sns님이 정리하신 발언록을 상당부분 참고했음을 밝힙니다. 기억력의 한계를 보완해 주신 sns님에게 감사 드립니다)
둥글게 유시민이 논객으로 귀환한 이유는?
유시민 후보가 토론회에 나서기전에 서프 대문에 오른 피오나 님의 글을 읽은건 확실해 보인다. 특히 이 대목을 말이다. “무엇보다 유시민 후보의 자세전환이 필요하다. 찔러야할 때 안 찌르는 게 예의바른 모습이 아니고, 찔러야할 때 과감히 찔러줘야 하는 게 경선의 기본 예의이다. 예전 유시민이 그랬듯이 말이다. 유시민의 최대의 장점은 이해찬/한명숙보다 날카로운 논리적 찌르기였지, 점잖게 에둘러서 싸우는 면이 아니지 않은가.”- 피오나님 대문글 중에서 -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동영이나 손학규에 대한 몇 가지 추가적인 공세는 계획했던 것이기 보다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들 스스로가 자초한 측면이 더 커보이는게 사실이다. 또한 몇몇 분들이 지적한 것처럼 유시민의 가슴속에 내재되어 있는 순수한 노여움의 역린을 건드렸다고나 할까.
모든게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오늘 토론에서 보여준 논객 유시민의 모습은 적극적 지지자들을 속 시원하게 해준게 분명하지만 한편으로는 외연을 확대하거나 겸손하고 국민을 섬기는 지도자로 자리매김하고자 했던 그간의 이미지 전환노력 관점에서는 마이너스 요인도 있는게 사실이다.
어쩌면 당초 이해찬 후보가 총대를 멜 것으로 예상했던 손.정 화장발 벗기기 역할을 스스로 짊어짐으로써 예상되는 마이너스 요인을 감수하기로 한 결정일지도 모른다. 단기적으로는 단일화국면에서 불리한 영향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짝퉁 한나라당 후보들의 정체를 제대로 알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자신만의 정세판단이 작용하지는 않았을까.
구글 해찬과 행복한 한명숙 토론 촌평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유후보의 공세적 토론이 전개되면서 자연스럽게 이해찬 후보는 부드러운 토론을 진행할 수 있었고, 한명숙 후보는 안정된 이미지를 시종일관 유지하면서 가끔씩 한방씩 지원사격을 날려주기도 하고 유시민 후보에게도 가벼운 쨉을 던지는 여유를 보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다만 이후보의 경우 자신의 유일한 약점이 될 수 있는 '이해찬세대 피해론’과 '골프파문'에 대한 시민논객의 질문에 설득력 있게 대응하지 못한 점은 시간적 제약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아쉬운 점이다. 앞으로의 토론회에서 계속 제기될 문제이기 때문에 캠프 차원에서 반드시 해명논리를 확실하게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를 꼭 해주고 싶다.
한명숙 후보도 전체적으로 무리가 없었지만 보다 자신만의 경쟁력을 어필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창의적인 홍보전략을 개발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특히나 시민논객의 대리모와 관련된 구체적인 질문을 아이들 입양과 착각하여 방송사고 수준의 동문서답(해명글을 읽어보니 UCC 동영상으로 인한 착각에 기인한 것으로 판명됨)을 한 것은 유일한 여성후보로서의 포지션을 감안해 보면 매우 아쉬운 대목이다.
손학규와 정동영의 드러난 밑천
손학규는 확실히‘구글 해찬 공포증’이 생긴게 분명하다. 지난번 예비경선 토론회 때 출산율 관련 망신을 당한 이후에 생긴 것으로 보이는데 대응책이라고 기껏 준비한 것이 ‘아무리 페이지가 많아도 어떻게 인용하거나 참고할지도 모르는 엉뚱한 통계지표 다발’과 ‘구글 해찬 때문에 겁나 죽겠어요~ 통계귀신인거 인정할테니 한번만 봐주세요 정도의 대놓고 비굴모드’인걸 보면 그래도 명색이 지지율 1위에 대세론 주인공인데 민망함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유시민 후보의 전략적 감싸기 속내도 모르고 자신한테 유리한 내용이 있으면 체면불구하고 갖다 쓰는 모습과 정동영과 완전한 적도 완전한 동지도 될 수 없는 어정쩡한 상황속에서 좌충우돌하는 모습이 상대적으로 가장 어눌한 언변과 합쳐지면서 그동안 곱게 단장해 온 지지율 1위 후보의 화장발이 본격적으로 벗겨지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정동영이 이번 토론을 통해서 5년 동안 조직력을 확실히 다진 후보라는 점을 확인시킨 것 외에 얻은 것이라고는 참여정부라는 곶감 항아리에서 곶감만 빼먹고는 항아리가 깨졌다고 말하는 ‘신의없는 정치인’, 모두가 조직적 동원경선 의혹의 영순위로 자신을 거론하고 있음에도 무조건 사실이 아니라고 우기는 ‘신뢰할 수 없는 구태정치인’이라는 불명예 딱지뿐이니 안쓰럽기 그지없다.
손학규를 제외한 이,유,한 어느 누구에게도 자신있게 말할 논리가 변변치 않음을 이번 토론회를 통해서 실감했을 것이고 불똥이 자신에게 향하지 않도록 몸을 최대한 사리는 길만이 피해를 최소화 할 수 길임을 확인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앵커출신의 그 입에서 ‘유시민 후보를 어떻게 제가 말로 이기겠습니까’라는 비굴모드가 부지불식간에 터져 나온 것을.
본경선 흥행가능성 높다
오늘 분위기로 보면 단일화 이전에라도 손정의 양강 구도는 생각보다 쉽게 무너질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물론 한꺼번에 손정의 지지율이 폭락하는 일은 없겠지만(그래서도 흥행에 문제가 있고) 의미있는 균열과 하락세가 지속적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는 대다수의 예상을 깨는 결과로서 국민들의 관심을 끌어모으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런 분위기라면 단일화를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어 보인다. 물론 사표비중이 10%이상을 넘어서는 안되겠지만 말이다. 남은 경선과정에서도 이번 토론회에서처럼 본경선 최대 쟁점이 될 ‘이명박과의 본선경쟁력’에서 누가 제일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가 다양한 각도로 조명되어야 한다. 덧붙여 오늘처럼 삼각편대가 손정의 화장발을 하나하나 시원스레 벗겨내는 장면을 오랫동안 볼 수 있기까지 기대한다면 지나친 욕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