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된장부인들의 하루 >
- 해당화 지음 -





제3부 / 우리 모두는 사기꾼이다
희경의 오빠는 흥분한 채 말을 계속하였다. 오빠는 국회의원 선거를 다섯 번 치르면서 부친의 재산을 거의 다 없애버렸다. 그러자 희경 세 자매가 들고 일어나 자신들의 몫을 요구하여 부친으로부터 가평에 있는 땅을 받아 내기에 이르렀다.
헌데 물려받은 가평 땅은 오빠가 이미 땅을 은행에 담보로 잡히고 8억을 대출해 간 후였다. 그러나 어디 만만히 물러날 딸들인가! 희경 세 자매는 오빠와 담판을 짓다시피 하여 8억에 대한 차용증을 받아 내었고, 이 모든 일을 진두지휘한 둘째 언니는 오빠의 집을 가압류 해 버린 것이었다.
“니네들 정말 이럴꺼야 ! 가압류부터 말소해! 알았어?”
희경은 큰 오빠를 원래부터 어려워했다. 그래서 기가 죽은 소리로
“오빠... 난... 잘 몰라... 둘째언니 말레이시아에서 오면 그때 얘기해... 언니가 다 한 일이야...”
“숙경이는 말레이시아에 왜 갔어?”
“골프여행 갔대나 봐... 한 달간 있을거래”
“한 달간씩이나 골프여행? 잘들 놀아. 니네들 똑바로 들어. 그렇게 나오면 가평 땅 모두 국가에 헌납한다. 그리 알아!”
오빠가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자 희경은
“아이고... 나 참 웃기시네. 국가에 헌납? 자기는 아버지 재산 다 털어 먹고 우리 몫까지 넘봐. 어째서 여동생들이 재산분배 요구하면 그런 말을 해. 모두 아버지 땅인데...”
그랬다. 희경의 오빠는 선거를 다섯 번 치르면서 재산은 다 없어졌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시절만 해도 희경네가 소유하고 있던 G시의 땅은 돈으로 치면 엄청났다.
아~~ 그 돈이 든 상자들... 희경은 친정집 안방에 쌓여있던 라면박스가 생각났다. 선거기간 내내 자금관리를 맡았던 올케는 매일 아침이면 라면상자를 들고 안방에서 나왔다. 그 속에는 만 원짜리 지폐가 가득했다.
둘째 형부는 강도를 걱정하여 부친을 졸라 공기총을 사들이고 나중에는 안방 문을 철제문으로 바꾸었다. 생각만 해도 지겨운 오빠의 선거. 그리고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자 오빠는 낙선했고, 막상 낙선하자 친정 식구들은 모두 공황상태에 한동안 빠져 있었다. 그들은 노무현 정부가 끔찍했다.
“오년을 어떻게 보내... 꼴 뵈기 싫어서...”
기나긴 세월을 지켜 주던 권력이라는 수호천사가 갑자기 사라짐을 느꼈다. 그래도 G 신문이 날이면 날마다 노무현 정부를 까대니 거기서 위로를 얻었고 카타르시스를 얻었다. G신문은 그들의 기쁨조인 셈이다.
희경은 아무도 없는 집 소파에 앉아, 오빠가 틀림없이 다음번 선거에 출마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파출부는 다녀갔는지 어둠속에서도 집안은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진숙은 등을 돌리고 벌써 코를 골며 잠에 떨어진 강승일이 오늘 따라 고맙게 느껴졌다. 내일 설악산에 갈 옷, 가방 등은 이미 챙겨 두었다. 그들은 섹스리스 부부였다. 남편과의 관계가 언제였는지 기억조차도 가물가물하다.
몸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했던가. 대화가 끊긴지도 오래되었다. 한번 말을 하지 않으면 석 달 이고 넉 달이고 대화가 없었다. 부부동반 모임이 있으면 그때는 그저 형식적이고 건조한 대화만 주고받을 뿐.
“문제가 있으면 치료를 받든지 아니면 상담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냐! 그 남자는 겨우 애 둘 만들어 놓은 거 밖에 없어”
진숙은 희경을 붙들고 이렇게 말하곤 하였다.
“집에는 꼬박꼬박 7시 땡이면 들어 와서 말이야!”
진숙이 이런 말을 할 때면 희경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무슨 말을 해줄 것인가. 남의 댁내 사정을 말이다. 강승일은 인물도 훤칠하고 동네에서 평이 좋았다. 진숙의 성격이 워낙 암팡지고 신랄한 어투에 한번 사람을 볶아 대면 아주 끝장을 보는 성격이라 강 승일로서는 진숙이 버거운 존재였으리라고 희경은 짐작하였다.
그러다 결국 진숙은 다른 남자에게 빠져 들었다. 사람이 의식주만 해결되면 다 되는 건 아닌 모양이다. 돈이 많은 사람들에겐 성생활이 아주 중요한 부분인가. 그래도 프라이드만 턱 없이 높은 진숙은 남편의 직업이 의사인 것을 최대한 이용하였다.
몇 년 전 골프를 치기에 앞서 동네에서 테니스를 쳤다. 토요일 오후에는 부부동반으로 테니스를 하였는데, 신촌에서 낙지볶음을 하는 재현이 아빠랑 강 승일이 시합을 하다 강 승일이 승리하였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진숙은 “ 흐흥, 장사꾼이 의사를 이길 수 있어?”
이 말은 들은 재현이 엄마는 격분하여 테니스 라켓을 내 팽개치고 돌진하여 진숙과 한바탕 머리채를 뜯고 싸웠다.
깊은 잠에 빠진 강 승일 옆에서 진숙은 좀체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로부터 며칠 동안 진숙은 통 연락이 없었다.
혜주의 작은 딸 유나는 퍼스트 학원 상담교사에게 마침내 사실을 털어 놓고 책상위에 얼굴을 파묻고 울고 있었다. 상담교사는 유나의 말을 듣고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도대체 유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유나는 퍼스트 학원 수학 담당교사를 무척 따랐다. 고 2인 유나가 가장 자신 있는 과목이 수학이었고 자연스레 수학 교사 주형근과 친하게 지냈다.
어느 날 수학 수업이 끝난 후 , 주형근은 유나에게 남으라는 말을 하였다. 밖은 어둠이 깔리고 있었고 교실에는 단 둘만 남았다. 주형근은 유나를 가만히 쳐다보더니 말을 하였다.
“유나는 얼굴도 참 이쁘고 집안도 좋고... 할 수만 있다면 너에게 결혼신청을 하고 싶어.”
유나는 놀랐지만 속으로 ‘아~~ 선생님이 나를 좋아하는구나...’ 생각하니 아주 기뻤다.
“선생님은 몇 살이에요?”
“응, 유나 보다 아홉 살 위야. 아홉 살 위면 괜찮지?”
그러더니 주형근은 또 다시 유나를 한참 보다 말했다.
“유나야, 우리 교실 불 끄고 있자. 우리 둘이서 조용히 있고 싶어”
유나는 얼굴이 발갛게 달아 오른 채 눈만 내리 깔고 있었다. 주형근이 전기 스위치를 껐다. 그리고 유나에게로 다가 왔다.
다음 날, 주형근은 교실 보다는 옥상이 좋겠다며 수업이 끝나자 유나를 옥상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일주일 후 주형근은 갑자기 퍼스트 학원에 사직서를 제출하였다. 주형근은 강남에 있는 보습학원으로 스카웃이 되어 가게 되었다면서 학원 옥상에서 유나에게 말하였다.
“유나야, 나 강남으로 가서 연락할게. 선생님이 좋은 학원으로 가니 너도 축하해줘. 월급이 천오백만원이야...”
유나는 말 할 수 없이 섭섭하였지만 주형근이 강남으로 스카웃이 되었다니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주형근이 강남으로 간 후 유나는 계속 전화를 기다렸으나 그로부터 아무 소식이 없었다. 기다리다 문자를 보내도 답이 없었다. 그렇게 한 일 주일을 보내고 유나는 괴로운 마음에 전부터 친하게 지내던 상담교사를 찾았다.
“저... 선생님... 주형근 선생님 연락처가 바뀌었어요?”
“글쎄다. 주선생이 떠난 후 전화 할 일이 있어야지... 그런데 유나야 왜 그래?”
한참을 망설이다 유나는 상담교사에게 주선생 집이 어디냐고 물었다. 상담교사는 뭔가가 이상하다는 낌새를 채고 유나에게 무슨 일이 있느냐고 털어 놓으라 하였다. 유나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은 상담교사는 엄청 놀랐다.
그리고는 이런 사실이 절대로 퍼스트 학원 원장 귀에 들어가면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렇지만 원장에게 말을 하여 CCTV는 설치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상담교사에게 주형근과의 일을 털어 놓은 유나는 밖으로 나와 어둠이 내리는 길을 걷고 또 걸었다. 마치 스펀지를 밟고 걷는 것 같이 느껴진다.
혜주는 유나가 집으로 돌아 올 시간이 지났는데도 오지 않자 안절부절 이다.
‘어떻게 된 일이야... 전화도... 문자도 답이 없고...’
그녀는 이제 2학기가 되면 학원은 관두고 본격적인 과외를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두 딸을 E여대.S여대를 성공적으로 진입시킨 진숙의 조언에 따라 강남 족집게 과외선생을 붙여 주기로 마음먹었다.
“돈만 있으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어. 이제부터 강남 족집게 선생에게 맡겨. 우리 애들처럼”
진숙은 혜주에게 이미 검증된 선생을 소개 시켜 주겠다고 말하였다.
‘과목당 150만원이라... 지금 M동 아파트는 최고가 110만원선인데... 그렇다면 화학이 150만원, 생물 150만원, 영어, 수학이 각각 150만원... 합계가 600만원이군... 뭐 그정도야... 좋은 대학에 들어 가준다면야...’
혜주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아파트 베란다에서 아래를 내다보면 유나를 기다렸다.
아~앗싸르비아 사르비아 비야! 스피커를 타고 트로트가 흐르는 가운데 한국 백화점 문화교실에서 희경과 김태성이 열심히 볼륨댄스를 추고 있다. 매 주 토요일 오후에 그들은 춤을 배운다.
검정색 셔츠를 입고 깃에는 모조 사파이어가 박힌 드레스셔츠를 입은 김태성과 스팡크가 정신없이 달린 오렌지색 드레스를 입은 희경이다. 조금 전 ‘카스바의 여인’에 맞춰 춤을 출 때부터 기분이 상한 희경. 김태성이 몇 번이고 발을 아프게 밟은 데다 회전할 때 거칠게 잡아 당겼기 때문이다.
지르박의 묘미는 우아한 회전에 있고 남자의 리더가 중요하다. 볼륨댄스의 멋은 뭐니 뭐니 해도 돌고 도는 회전 아닌가.
‘아~앗싸르비아 사르비아 비야...’
김태성이 세게 앞으로 당겼다. 그러자 드디어 희경은 참을 수가 없던지
“아니, 뭐야 당신 ! 왜 이렇게 세게 당겨! 당신 나한테 유감 있어? 감정있냐구?”
김태성은 주변을 훍어 보면서
“이 사람이 왜 이래! 어디서 큰 소리야, 창피하게. 조용히 해!”
“아까 카스바의 여인이 나올 때도 세게 밀어서 거울에 부딪칠 뻔 했잖아.”
“뭐가... 내가 뭐 어쨌다구... 돌릴 때마다 힘들어 죽겠구먼. 이거야 원 뱃살에 부딪혀서...”
이 말을 듣자 희경은 더욱 화가 나서
“당신 말 다했어? 그래 전선생과 춤 췄다면 이런 말을 했을까?”
“갑자기 여기서 전선생 말은 왜 나와?”
사교 댄스를 추다가 갑자기 그들은 난투극이라도 벌일 태세였다. 주변사람들은 음악소리에 각자 스텝을 밟느라고 열심히라 이 부부의 소동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춘천호반을 드라이브 중인 진숙, 차 안은 오래된 샹송 '아다모'의 '사랑은 당신처럼'이 흐르고 있다.
"우리 다음 주엔 용평골프장 어때?, 골프 치고 난 뒤에 오대산도 구경하구."
진숙의 그 남자가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만족한 듯
" 어머 좋지~ 용평골프장! 내가 젤 좋아하는 골프장인걸."
그들은 차를 세우고 춘천 호반 언저리를 붉게 물들이는 저녁 노을을 바라 보았다.
진숙을 그윽한 눈길로 바라보던 남자가 말했다.
"자기... M동에 있는 하이페라리온 아파트 말야. 그거 누구 명의로 되어 있어?"
"당연히 내 이름으로 되어 있지. 그건 왜 물어?"
진숙이 대답하자 남자는 어깨를 으슥하고는
"아냐~~ 그냥 한번 물어 본 것 뿐이야~"
남자는 고개를 차창 밖으로 돌린채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희경과 김태성이 댄스교실에서 작은 소동을 벌이고 있는 동안 희경의 딸 명주는 남자 친구 준호를 집으로불러 들여 소파에 누운채 그의 다리를 베개삼아 옥수수를 먹고 있다.
아래 층 경비 최씨는 명주가 디밀어 준 옥수수를 먹으며
"음... 저 놈이 아마 일곱번째 놈이지... 이번에는 얼마나 갈지... 꼭 집으로 불러 들인다니까..."
대형평수의 아파트라 가구수가 많지 않아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훤히 알고 있었고 누가 들고 나는지 손바닥 보듯 하였다.
거실의 대형 벽걸이 TV에서는 동물의 왕국이 방영되고 있었다. 얼룩말 한 쌍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갑자기 한 마리가 달리기 시작했다. 얼룩말이 초원을 질주하는 모습이 화면에서 금방이라도 튀어 나올 듯 어지럽고 실감난다고 준호는 느꼈다.
준호가 담배를 꺼내 물었다.
"오빠! 안 돼. 거실에서 피우면 담배 냄새가 배여! 내 방으로 가서 피워."
준호가 방으로 들어가자 그녀는 얼른 부엌으로 가 냉장고를 열었다. 우유팩을 한 개 꺼내 우유를 싱크대에 부어 버리고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딸깍하며 방문을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집으로 돌아 온 희경과 김태성은 계속 말다툼을 벌였다.
'전선생이 어쩌구...' 명주의 방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준호는
"왜 그러시니 너의 부모님?"
"오빠 신경 쓸거 없어 별일도 아니야."
명주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희경 부부는 이제 잠이 들었는지 집안은 고요했다. 준호가 살며시 빠져 나간 후 명주는 담배꽁초가 든 우유팩을 가지고 나와 부엌 쓰레기통에 넣었다. 그리고 옆에 있던 광고지로 우유팩을 덮어서 누른 다음 쓰레기통을 닫았다.
경비 최씨는 꼬박꼬박 졸다 어렴풋이 준호가 계단으로 내려 가는 것을 보았다. 습관적으로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4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때, 희경네 부엌 쪽에서 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오르고 있었다. 하얗게 퍼지던 연기는 차츰 회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회색 연기가 발목 정도의 높이로 차오르자 쓰레기통 옆에 있던 김치냉장고 뒷쪽에서 불꽃이 튀었다.
그러더니 부엌에서 갑자기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
- 끝 -
2006년 8월 / 해당화
"다음 사실을 알아 두라. 이 드라마는 허구도 아니고 꾸며낸 얘기도 아니다. <모든 것이 사실이다> 이 드라마는 너무도 사실과 일치하기 때문에 누구든지 자기 집에서나 자기 마음속에서 이 드라마의 요소들을 인정 할게다."
-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