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게 집이 어디냐고 물으면 대나무가 많이 나는 담양이라고 말한다. 전남 담양군 대전면 대치리. 아직도 내 이력서나 신원조회에 어김없이 따라 붙는 본적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이곳을 떠나 거의 45년 동안 객지를 떠돌았다.

물리적인 시간만 따진다면 이제 기억 속에서 사라질 법도 하지만 내 잠재의식 속에는 여전히 내 집으로 남아있다. 꼭 부모님이 살고 계셔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신작로에서 얼마를 걸어 들어가 현관문 대신 대문을 밀고 마당을 지나 툇마루를 통해 방으로 들어가는 구조 때문 만도 아니다.
집이라면 헛간도 있고 우물도 있고 장독대도 있고 돌담도 있고 지붕도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 만도 아니다.
뒷뜰에 병풍처럼 둘러 쳐있는 대나무 숲하며 여름 밤 하늘 평상으로 쏟아지는 별빛들, 풀벌레 소리, 대나무 숲을 흔들어 깨우는 새소리. 토방 밑에서 졸음믈 견디지 못하고 퍼질러 앉아있던 누렁이. 손 만 내밀면 언제라도 따 먹을 수 있었던 앵두며, 살구, 단감, 무화과들이 온전하게 네 DNA 속에 녹아 있었기 때문이다.
집도 살아 있는 생명체다. 아무리 성성한 집도 사람이 살지 않으면 금방 허물어지고 만다. 제 품에 품고 있었던 사람들이 떠나면 집도 외로움을 어찌하지 못하고 몸 져 눕고 만다.

10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시골집은 꿋꿋하다. 고조 할아버지,증조 할아버지, 할아버지에 이어 아직도 부모님의 체온을 가슴에 품고있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하루가 멀다하고 주위 어르신들의 부음소식을 듣는다. 나에게도 팔순이 넘은 부모님이 계시다. 친구 부모님들의 부음을 접하고서야 안부전화라도 올려야겠다고 마음을 먹는 걸 보면 나는 불효자식임에 틀림없다.
전화기를 들고 조금이라도 죄송함을 덜어보기 위해 멋진 말을 떠 올려 보지만 나는 유시민 이야기를 꺼내고 만다.
"마실 가시지 말고 오늘도 집에 계세요."
세상에 나같은 불효자식이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