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이 날렸던 시절 언론계에는 유명한 '김영삼 장학생'이 있었다.
김영삼에게서 용돈이나 받아쓰면서, 혹은 김영삼이 집권할 경우 한자리 얻어 걸치겠다는
권력지향적 언론인들로 이뤄진 언론계 쓰레기들이었다.
기자가 특정한 인물을 전담해서 취재하게 되면, 혹은 특정정당을 오래 출입하게 되면,
그 정치인이나 출입정당에 대해 우호적으로 바뀌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런저런 속사정에 훤해지고, 다른 무엇보다 그 정치인이나 특정정당의 사람들과
친해지지 않을 수 없으니 객관성을 고집한다고 완전히 안면 몰수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김영삼 장학생은 경우가 달랐다.
일종의 '이너서클' 형식으로 정기적으로 교류까지 가지면서
김영삼에게 우호적인 기사를 양산하는 것은 물론, 자신이 몸담고 있는 언론이
김영삼에게 우호적인 논조를 가지도록 앞장서기까지 했으니,
언론인이란 기준에서 보면 쓰레기라 아니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언론의 각종 요직에 광범위하게 포진했던 이 '쓰레기'들이 김영삼이 집권한 후
높은 자리를 꿰찬 경우가 많았으니, 역시 역사에서 정의가 승리하기란 어려운 일인 모양이다.
김영삼이 야당 총재시절부터 공들여 만들어 놓은 언론계의 '김영삼 장학생'들은
여러 번에 걸쳐 김영삼의 정치적 위기를 구출해주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었다.
특히 김영삼이 훼절해 광주학살의 주역 전두환-노태우의 민정당과 3당 야합을 한 이후
이들의 활약은 두드러졌다.
내 기억으로 김영삼 장학생이 최고로 활약했던 때는 아마도 3당 야합 이후
정국을 혼란 속으로 몰아넣었던 이른바 내각제 합의각서 파동이 아닌가 싶다.
김영삼은 여소야대의 13대 국회에서 제1야당 평민당의 DJ에게 계속 밀리자
제3야당 신민주공화당의 JP와 힘을 합쳐 노태우의 민정당과 합당하는 역사적 '만행'을 저지른다.
이때 김영삼은 노태우의 대리인인 당시 민정당 대표 박태준과 JP 등과 함께
내각제 합의각서란 밀약을 맺는다.
3당 합당한 뒤 내각제로 개헌하겠다는 약속을 서면으로 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내각제 합의각서다.
문제는 절대로 공개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함께 작성된 이 내각제 합의각서가
언론에 의해 유출돼버린 것이다. 나와 함께 한때 야당을 출입했던 중앙일보의 모 선배가
희대의 특종을 터뜨린 것이었다. 김영삼은 당시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으로서,
포스트 노태우를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었던 때였으므로,
권력구조를 대통령제에서 내각제로 바꾼다는 이 합의각서는
사실 그의 정치생명에 치명타를 가할 문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때 김영삼은 적반하장 전술을 선택했다.
자기 손으로 3당 합당 후 내각제로 개헌하겠다고 합의하는 문건에 도장을 찍어놓고서는,
이게 공개됐다고 무효라고 주장하고 나섰던 것이다. 뿐인가. 이 문건이 공개된 것은
자신을 정치적으로 매장시키려는 음모의 일환이며,
따라서 공작정치라고 오히려 '방귀 뀐 X이 버럭 화를 내는' 전술로 대응했다는 얘기다.
다 아시겠지만 이 적반하장 전술은 성공했다. 왜 성공했겠는가?
김영삼이 반생에 걸쳐 구축했던 언론계의 '김영삼 장학생'들이 이와 같은 적반하장에
맞장구를 쳐줬기 때문이었다.
물론 DJ가 차기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영남패권주의적 정서도 한몫했을 것이고,
대세는 김영삼이란 당시의 추세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몇몇 언론이 앞장서서 김영삼의 적반하장을 적극 옹호하지 않았다면,
김영삼은 그 합의각서 하나만으로도 끝장났을 개연성은 있었다고 하겠다.
강산이 한번 반 변하고도 남을 세월이 흐른 2007년 오늘날,
조선일보를 비롯한 기성언론들은 과거 김영삼 장학생들을 찜쪄먹을 정도로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를 옹호하는데 전력투구하고 있다.
아니 이건 단순히 장학생 수준이라고 볼 수만도 없다.
이명박 후보의 후견인이자 방패막이로서, 지록위마(指鹿爲馬)의 고사를 낳았던
진나라 2세 황제 호해 시절 승상 조고를 방불케 하고 있다.
이명박 후보가 자신의 소유 부동산을 국세청에서 조회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업무목적으로 조회했다는 국세청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이를 사찰이니 공작이니 몰아붙이는 건 그야말로 지록위마와 적반하장에 불과하다.
검찰이 무혐의로 결론을 내린 사건도 제보에 의해 엄청난 의혹이 있는 것처럼 몰아붙이는
언론들이 이명박 후보에 관한 것이면 입을 다무는 정도를 넘어,
나이 50에 처음 본 늦둥이 외아들 다루듯 역성을 들고 나서는 이 현실은 도대체
어디에서 기인하고 있는 것인지 답답한 노릇이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자신의 소유부동산에 대한 조회사실에 대해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라고 밝히는 이명박 후보의 현실인식이다.
막대한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으면 그 재원이 어디에서 난 것인지
국세청이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직무유기다.
재원을 밝혀야만 과세를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후보는 자신의 재산에 대해서는 변동상황에 대해서도
국세청이 손을 대서는 안 된다고 얘기하고 있고,
그런 일은 있어서 안 되는 일이라고 강변하는 셈이다.
현단계에서 차기대통령에 가장 근접하고 있는 공당의 후보가,
자신의 재산에 대한 조사는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있어서도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솔직히 섬뜩한 생각마저 든다.
그가 대통령이 되면 그의 재산 변동에 대해서 국세청이 과연 조사할 엄두라도
낼 수 있을 것인지...
이 정권이 이명박 후보를 매장시키기 위해 음모를 꾸민다는 주장은
솔직히 설득력 제로(0)다.
그런 정도의 음모를 꾸밀 실력을 이 정권이 갖고 있다고는
한나라당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음모론을 내놓는 이유는 명백하다.
내가 누누이 말했지만 이명박 후보를 둘러싼 환경이나 추세 등을 보면
더할 나위 없이 '막강한' 대통령후보이지만,
월급쟁이에서 출발해 천문학적인 숫자의 재산을 축적한 '인간 이명박'은
더할 나위 없이 취약한 후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언제 어디에서 재산축적과 관련된 추문이 터져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미리 쐐기를 박자는 의도가 바로 음모론 주장의 근거인 셈이다.
아마도 한나라당에서 지금 걱정하는 것은 여권의 후보가 누가 되느냐는 것보다는
오히려 이명박 후보의 예측할 수 없는 개인사 가운데 악덕들이 터져나와
자멸하는 경우를 맞는 것 아닐까 싶다.
과세를 위해 정상적으로 접근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발끈하면서
음모론으로 몰아붙이는 이유는 바로 이런 불안감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명박 후보로서야 자위의 수단으로 이런저런 주장을 한다고 치자.
하지만, 이명박의 나팔수 노릇을 충실하다 못해 이명박 진영이 바라볼 때도
어쩌면 부담스러울 수준까지 역성을 들고 나서는 언론들은
스스로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할 것이다.